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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나루시-마녀의 고해
    카테고리 없음 2020. 9. 13. 07:14






    무슨 티알을 반년에 한번씩 분기별로 가는 것 같지만

    그것은 착각이 아닙니다

    낡고지친 회사원과 웹작의 후레 세션....


    오랜만에 안나루시로 다녀 왔어용

    세션카드겸 인장도 넘 오랜만에 진심으로 맞췄다 넘 이쁘지 않나요 디자인은.....늘 그렇듯 날로 먹지만


    마녀의 고해는 제가 새끼커뮤오타쿠때부터 존버하던 시날인데요

    드디어 다녀오게 됐네요 존버 오타쿠쉑

    사실 밤그림자 이후로 키퍼링이 너무 오랜만이라 ㅜㅜ ㅋㅋㅋㅋ 실수가 좀.. 잦...긴 했지만...

    여튼..... 좋은엔딩을 보고 왔습니다

    플레이 시간 10시간... 이 이상 주말을 할애할 수 없다는 의지의 멈추지 않는 풀세션.. 




    *밑은 플레이 로그로 마녀의 고해 COC시나리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마녀의 고해]
    과거에는 화려한 축제가 벌어졌을 이곳은 퀴퀴한 냄새만을 풍기는 시커먼 마을로 돌변한 지가 오래입니다.
    성당에는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습니다.
    절박한 인간은 신에게 매달립니다.
    이 무너져가는 세상은 당장 내일 멸망할까요, 오늘 멸망할까요.
    알 수 없습니다.
    당신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근래에는 묘한 꿈을 꾸고 있습니다.
    모든 이들이 당신의 옷자락을 붙잡고 살려달라 곡소리를 내는 꿈입니다.
    한 발자국만 잘못 디뎌도 무저갱에 떨어질 것만 같은 모습.
    사람들은 점차 시체처럼 썩어들어가는, 요컨대 악몽이 지속적으로 당신의 밤을 두드린지 벌써 몇 달 째입니다.
    정확히 꿈이 시작된 시점을 짚어보라면 분명, 그래요,
    그 날부터일 것입니다.
    그가 이 마을에 나타난 일이요.
    성당의 신부님이 전염병으로 죽고 그 빈 자리를 대신하러 온 이였습니다.
    처음 본 순간부터 기묘한 꺼림칙함을 느꼈었는데, 어째서인가 두 사람의 관계와는 별개의 감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자의와는 전혀 상관 없는 이질감.
    이를 테면 생리적인 거부감.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강요라도 당하는 것마냥 그를 향한 거부감은 욕지기처럼 간혹 치밀어오르곤 했습니다.
    세상이 흉흉해서일까요. 이유는 오리무중입니다.
    하지만 악몽과도, 그에게 든 기묘한 거부감과도 별개로 당신은 오늘도 성당으로 향합니다.
    세계를 구해달라는 기도, 그래도 해야지요. 모든 이들이 하고 있습니다.
    말세에 필멸자는 대체로 절대적인 존재를 찾기 마련입니다.
    무의미하다 한들 말입니다.
    성당 안쪽은 고요합니다.
    오르간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다만 십자가 아래에서 기도를 하는 자의 인영이 보입니다.
    아… 그입니다.
    사제복을 입고 있는 그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립니다.
    그가 익숙한 듯 묻습니다. 기도를 하러 왔냐고.
    루시 스타인:...오셨어요? 오늘은 좀 일찍 오셨네요.
    안나 로즈빌:.....그렇죠, 뭐. 점점 할 일이 없어지니까요. (사람들이 약사를 찾는 일도 희망이 남아있을때나였다. 지금은 신을 찾지 약을 찾지는 않았다.)
    루시 스타인:....말씀은 그렇게 하셔도, 그런 상황에서 매번 발걸음 하시는 분들이야말로 정말 드문걸요, ....신실하시네요, 자매님.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을 가리키는 말에 내색않고는 웃어보이며 제 눈가를 어루만졌다.)
    안나 로즈빌:......... 신실하다는 건 좋은 점이잖아요? (그리고 혼자 사는 여자 약사에게는 좋은 점이 많을수록 좋지. 신실한 모습을 보이는 건 평판에 아주 효과적이고.)
    루시 스타인:....물론 그렇죠, 저도 좋은 의미로 드린 말씀이니까.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고는 제 손에 감겨있던 묵주를 다시 목에 걸며 말을 이었다.)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오늘 기도하러 오실 분은 자매님이 마지막일거란 생각이 드네요,
    ....점점 오시는 분들이 정말로, 줄어들고 있으니까요. (머리카락이 이러저리 널부러진 목 언저리를 정리하듯 매만지고는 중얼거렸다. 눈가가 붉게 충혈이 되기라도 한 것인지 미약한 권태감을 느꼈다.)
    안나 로즈빌:마을에 단 하나뿐인 신부님이 이렇게 빨리 희망을 버리셔야 되겠나요. (말의 끝마디가 퍽 건조하다고. 스스로도 느꼈지만 이미 내뱉은 말을 되돌릴 방법 같은 건 없다. 늘 이 사람은 어딘지 불편했다.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행동이라고는 하나도 하지 않는 점마저. 성당의 변화라서일지도 모른다. 저는 변화를 좋아하지 않으니까. 하필이면 그 변화가 병의 정점에 찾아와서일지도 모르고... 그래, 별 것 없는 이유를 사람들은 종종 이유가 없다고 칭한다.) .....피곤하신가 봐요. (건조했던 말을 무마하기라도 할 듯 덧붙였다.)
    루시 스타인:......아, 아뇨. 그냥...
    ...요즘 잠을 잘 자는 사람이 있을까요, 티를 낼 생각은 없었는데.(건조한 첫마디를 흘려듣기라도 한 것인지 뒤따른 문장에만 뜸을 들이다 무던히 대꾸했다.)
    으음... 곧 익숙해질 일이니까, (이어서 화재를 돌리려는 듯 버석하게 마른 눈가를 휘어 접고는 물었다.)
    자매님은 잘 주무시고 계신가요? 아무래도 새벽기도를 나오시는 분들 중에선 잠을 많이 설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였던지라...
    안나 로즈빌:(잘 잤느냐고. 매일 눈을 감을 때마다 찾아오는 악몽을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늘 스스로가 무감한 편이라 생각했으나 그런 꿈이 지속되는데도 잠을 푹 잘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던 모양이지. 밤마저 평온하지 못하던 시작이 언제부터였는가 하면...... 눈 앞의 젊은 신부를 물끄러미 보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괜찮아요. 저는 원래 잠이 별로 없어요, 신부님. (짧은 대답만을 남겼다. 거짓을 고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살가운 걱정을 들을 만한 여지를 남기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고.)
    루시 스타인:(잘 잤다는건 아니구나, 내색하나 않고 흘러가듯 자연스레 포장된 말 중에서 알맹이를 찾아내는 일은 쉬웠다.
    이 곳에 오래 머무른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들어온 말들이, 사연이 적다고는 할 수 없었기에. 어느샌가 익숙한 특기가 되었으리라.)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그래도 누적된 피로는 좋지 않은게 사실이니 내일부턴 좀 늦은 시간에 오시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숨은 것을 구태여 파고들지 않는 이유 또한 단순했다. 거리감을 보는 것 역시 제 특기중 하나이니까. 물끄러미 보는 시선에 저도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곤 정적이 이어졌다. 눈가의 뻐근함이 영 가시질 않았다.)
    .....오늘도 기도 이후의 일정은 없으신가요?
    안나 로즈빌:이 마을에 매일의 일정이 남은 사람은 많지 않다는 걸 아시면서요. (가게는 텅 빈 진열장을 둔 채로 문을 닫았고, 밭에는 시든 곡식이 남았다. 남은 이들은 다들 바삐 돌아다니지 않는다.)
    ......비가 오지 않는다면요. (그렇다면 제가 여전히 약초를 준비하고 약을 달이는 연유는 무엇 때문인가. 삶을 무너트리지 않기 위한 습관이겠지만........ .... 비만 맞지 않는다면 약재들은 저 혼자 알아서 마를 터였다.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그는 오랫동안 잠을 자지 못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눈밑이 퀭한 것이, 상태가 영 별로입니다.
    그는 빤히 보는 시선을 멈추기라도 하듯 푸석한 눈가를 어루만지며 뜸을 들이고는, 작은 끄덕임을 보곤 나직히 묻습니다.
    루시 스타인:...아, 다른게 아니고 휴게실에 새로운 찻잎이 들어왔는데. 한 번 드셔보시겠어요 자매님?
    말씀 드렸듯이, 오늘 찾아와주신 분은 자매님이 마지막 일 것 같고… 향이 무척 좋답니다. 약초만큼은 아니겠지만요. (굳이 비 이야기를 꺼낸 이유를 알고 있다는듯 살풋 웃어보였다.)
    안나 로즈빌:....요즘도 새 찻잎이 들어오는군요. (모든 것이 죽어가고 있으나 전부 죽으란 법은 없었다. 새 찻잎이 들어오고 늦은 여름 과일과 이른 가을 과일이 열린다. 그 미약한 희망이 사람을 맹목적으로 만들지. 다시 한 번 꿈을 생각한다. 이 신부가 등장하고부터 시작된 꿈을.)
    ...차 좋죠. 아직 아침 차를 못 마셨거든요. 제 보기엔 약초는 신부님께 필요할 것 같고요. (퀭한 눈 밑을 어루만지는 가늘고 흰 손가락에 시선을 두었다.)
    루시 스타인:....따라오시죠, 또 제가 제법 차를 잘 우린답니다. (쫓아오는 시선에 언제 그랬냐는 듯 손을 내리곤 마른 목소리를 부러 가볍게 올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휴게실
    휴게실 안쪽은 피로를 풀 수 있는 찻잎과 간식이 놓여 있습니다.
    휴게실 내부를 살피며 은밀 행동 롤이 가능합니다.
    안나 로즈빌:

    Stealth

    안나 로즈빌

    보통

    성공
    42vs.70
    오래되었는지 결이 갈라진 탁자, 그 옆에 덩그라니 놓인 의자 아래에 떨어진 종이 조각을 발견합니다.
    자연스레 종이를 펼쳐보니...
    저주? 전염? 성당에 있기에 적합한 내용은 아니군요.
    안나 로즈빌:....? (이단?)
    루시 스타인:...? 자매님? 뭐 문제라도... (저 끝에서 차를 우리는지 달그락 소리를 내다 얼굴을 보였다.)
    안나 로즈빌:.............. .. ... 아니예요. (종이 조각을 접어 손에 꼭 쥐었다.) ....여기도 사람들이 자주 찾지는 않겠어요, 이제?
    루시 스타인:그렇죠, 말씀 드렸듯이... 이 곳에 처음 왔을 때 보다, 그때보다 더... 점점 방문하시는 분들이 줄어들어서. (은쟁반 위에 찻잔 두어개를 올려두곤 다가가며 말을 이었다.)
    성당에 몸 담고 계신 분들도 음... .......마찬가지라서 말이죠, 그래서 휴게실이 답지 않게 조용하네요, 제가 청소를 한다고 하긴 하는데도... 하하. (썩 정갈하진 않은 공간이 멋쩍은 듯 쟁반을 내려두곤 손가락으로 먼지를 흝어보였다.)
    안나 로즈빌:(찾은 종이 조각을 치마 주름 사이에 숨기고는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청소하실 때가 된 것 같기는 하네요. (무심히 대답하고는 턱을 두어 번 두드린다. 생각할 때의 습관이었다. 이 곳을 더이상 사람들이 찾지 않는다면 이 신부의 것일까?)
    당신이 생각에 잠긴 와중에도 그는 선뜻 웃으며 적당히 식어가는 차를 내밉니다.
    제 몫의 찻잔 역시 들어올리곤 손가락을 두어번 두드리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는군요,
    역병의 치료법이 도통 나오지 않는다는 푸념입니다.
    루시 스타인:.....그나저나 이대로 가다간 이 곳 뿐만이 아니라 마을 전체가...... (불행한 상황에 굳이 말을 얹지는 못하겠다는 듯 점점 목소리가 줄어갔다.) 삭막함이 일상이 되는게 재앙이 아니라면 무얼까요, 하루 빨리 .... ....나아질 수 있다면 좋을텐데요. ....정말로요.
    안나 로즈빌:(약사 앞에서 치료법 푸념을 하는 거 들으라고 하는 소리 같네... 하지만 일이 이 지경이 될 동안 도통 모르겠는 것도 사실이니까.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신다. 과연 향이 나쁘지 않았다.) 그러게 말이에요. (이 마을은 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언제나 시끄럽고 북적거리던 곳에 더 이상 사람을 찾을 수다 없다.) ...이 역시 신의 뜻일까요? 신부님은 어찌 생각하세요.
    루시 스타인:저는....... (저에게로 돌아온 질문에 찻잔을 미약하게 두드리던 손가락이 툭 하니 멈췄다. 시선을 빤히 마주보곤 입술을 달싹이려던 움직임은 눈치 챌 틈도 없이 사그라들었다.) ......제가 이 상황에 무슨 말을 얹겠나요, 그저 믿을 뿐이랍니다. 신의 뜻이라면... 아버지께선 기약 없는 고통만을 주시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이 역병은 그 분의 뜻이...(나긋하게 이어지던 목소리에 잠깐의 틈이 생기고, 역시나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정적이 흘렀다.)
    .....아니, 나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아질거라고... .....이 또한 아버지의 뜻이라 여기고 기도를 드리는 것이지요, 자매께서 그러하듯이.
    (끝맺음이 툭 끊긴 실타래처럼 어색하기 짝이 없었으나 예의 그 웃음으로 지워보였다.)
    자매님께서는 그리 생각하지 않으신건가요?
    안나 로즈빌:그 분의 집에서 그 분을 섬기는 분을 앞에 두고 그렇지 않다는 대답을 했다가는 단죄받는 죄인은 제가 될 것 같은데요. (그 분의 뜻이 아니리라고? 문장의 끝은 그리 구성되어야 자연스러웠다. 명백하게 끊긴 말을 속으로 되새겨 본다.) ....그 분이 주시는 고통에는 이유가 있고, 끝이 있다면. 이 고통에는 어떤 이유가 있는지만을 궁금해할 따름이랍니다.
    루시 스타인:단죄라니요, 자매님처럼 신실하신 분을 설마요. 농담에 취미가 있으신걸 오늘 처음 알았네요. (이젠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을 정도로 미적지근해진 찻잔 안에서 둥글게 맴돌며 찰랑이는 찻물을 바라보았다. 속으로 무슨 생각을 그리 곱씹었는지 꽤나 길게 이어진 침묵에도 반응이 늦었다. 시선을 왼쪽으로 조금 굴리며 미소지었다.)
    질문도 이리 많으신지 처음 알았고요. 제가 얹는 말이 자매님께 의미있는 대답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
    저희는 그분의 이유를 온전히 헤아리지 못한답니다.
    그렇기에 간절해 지는 것이지요, 이해할 수 없는 이유엔 반드시 끝이라도 있으리라고... 모든것은 끝이 나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이 것을 저주나 재앙따위가 아닌 시련이라고 부른답니다 우리는. 끝이 있어야 하니까요. (제가 말 재주가 없는 것 역시 오늘 처음 알았군요, 농담조로 끝맺는 와중에 입꼬리가 유독 어색하게 올라갔다.)
    안나 로즈빌:말재주 없는 신부님이라니...... 제가 농담에 취미가 있다는 것만큼이나 말이 안 되는 소리 같은데요. (점점 온기를 잃어가는 찻물을 눈에 담았다. 차를 따르며 딸려 들어갔을 얇은 찻잎 몇 개를 본다.)
    사람이 절반도 넘게 죽어나간 후에도 저는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하겠답니다. 부끄러운 일이겠지요. (발견하지 못한 치료법을 푸념한 소리를 뒤늦게 받아주며 눈썹이 가볍게 올라갔다 떨어진다.) 받는 이가 이해할 수 없는 시련을 내려주시는 이유는 또 뭘까요.... (눈 앞의 신부에게 묻는 말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모두가 죽어 끝나기 전에, 이 시련이 끝나리라고 믿으세요? (그러나 이번 질문은 신부에게 하는 말이었다. 이 불편한 이에게 계속 말을 이어가는 이유가 뭘까. 스스로 물어도 이유 모를 거부처럼 뾰족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 어찌되었거나, 이런 이야기를 할 사람이 오로지 이 사람뿐이라서일지도 모른다.)
    루시 스타인:(끝나리라고 믿으세요? 무심히 던져진 질문에 곧장 나와야 할 것은 그럼요, 그러니 기도합시다 라거나. 믿음이 계속된다면, 따위의 타성에 젖은 대답이 맞을 것이다. 이 작은 마을 속 큰 성당에 홀로 자리한 자라면 더욱 그럴 것이고, 제 목 언저리에 자리한 십자가의 주인이라면 말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야지요,
    (제 입에서 나오는 대답은 앞서 말한 자리에 위치한 사람의 말 치고는 모호하고 형편없기 짝이 없었다. 긍정속 부정에 가까운, 교묘하게 빗겨나간 긍정...아니, 바램에 가까웠다. 저 질문이 향한 것이 자신이란 것을 실감할 때마다 그리 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그 분이 아니니까, 이해할 수 없는 시련을 내리는 이유를 헤아리지 못하는 수많은 이들 중 하나니까. 그러니 기도나마 드려야지. 짧은 대답을 끝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 푸른 눈이 새벽녘부터 자신을 집요하게 뜯는다는 느낌이 들어서.)
    안나 로즈빌:(수단을 입은 젊은 신부도 인생을 바친 믿음을 잃는 날이 올까. 사실은 이미 온 걸까. 만약 그렇다면 조금 후련할지도 모른다고, 그런 생각을 한다. 어디나 비슷하겠지만 특히 이런 작은 마을에서는 성당에 나가지 않는 삶은 생각할 수 없다. 신부는 언제나 사랑받고 모두에게 우선적으로 생각되어지는 마을의 또 다른 지도자가 되기 마련이다....
    저는 신을 믿지 않았다. 신이 있다면 내가 혼자가 되었을 리 없다고. 혼자 세상에 던져져 살아남아야 했을 리 없다고.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이유를 알 수 없는 시련 같은 것은 의미가 없다고.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사람이 또 생긴다면. 그게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이라면. 희망이 희미해진 세계에는 민낯의 감정만이 남는다.
    늦게 나온 짧은 대답을 곱씹는다. '그래야지요' 는 '그럴 거예요' 와는 다르다. 전자에는 믿음이 없다. 찻잔 가장자리를 만지던 손가락을 떼고는 살풋 웃었다.)
    ...차 감사해요. 남이 끓여준 차를 마시는 것도 오랜만이었네요. 더 늦기 전에 기도를 드려야겠어요.
    루시 스타인:(제 대답이 무언가 확신이라도 된걸까, 그렇다면 그 확신은 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다시-) ....그런가요, 종종 오신다면 차 한 잔 끓여드리는거야 어렵지 않으니까요. 아....
    (제 잡념을 갈무리하는 신호탄이라도 되듯 일어나는 기색에 맞추어 저도 몸을 일으켰다. 거의 다 비어버린 찻잔 하나와, 식어버린 채 손도 대지 않은 찻잔 하나. 물끄러미 시선을 두다 이내 고개를 돌려 눈짓했다.) 벌써 해가 다 떠서 제법 밝아졌군요, 기도실은 어느쪽인지 아시지요? 저는....
    .....아무래도 잠이 부족하긴 한 것 같네요, 안내해드리진 못할 것 같은데, 죄송스럽게도.... (눈을 마주칠 새도 없이 살풋 웃으며 드문 양해를 구해왔다.)
    안나 로즈빌:....애초에 미사를 드리러 온 것은 아니니 제게 죄송하실 필요 없지요. 들어가세요. (눈웃음이 예쁜 이였다. 그가 처음 이 성당에 왔을 때만 하더라도 일일히 눈을 맞추고 웃어주는 얼굴에 설레하는 어린애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저 역시 그 웃음이 예쁘다고 생각했으며 태도 역시 상냥하다 생각했으나... 사람은 겉보기가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 역시 안다.)
    어쩐일 일까요, 아침부터 피곤해보이긴 했으니까.
    그 후 당신은 드물게도 홀로 기도를 드리곤 예배당을 빠져나오게 됩니다.
    지능 판정
    안나 로즈빌:

    Intelligence

    안나 로즈빌

    보통

    실패
    93vs.65
    돌아가는 길, 자연스레 피어나는 의미없는 사실들.
    예배당 역시 사람이 줄어 관리가 잘 되어가지 않는건지 평소보다 정돈되어있지 않았습니다.
    휴게실 역시 그러했고, 영문모를 종이 조각이 굴러다닐 뿐더러….아, 종이.
    그러고보니… 종이가 흘러나올 곳이라면? 한군데밖에 없을게 분명하잖아요.
    천천히 걸음을 옮기다 당신은 문득 이 성당엔 서재가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립니다.
    그렇다면 성당 내부에 이와 관련된 책이 있다는 것일까요?
    그는 대화 내내 누가 보아도 눈치를 살피고 있었습니다. 거짓말이 그렇게 티가 나니 신부 일을 하고 있는것인지.
    드물게 성당에서 홀로, 물을 상대도 없는 상황의 떠오른 정답.
    아무래도 이대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당신은 그 몰래 뒷문을 통해 성당 지하에 있는 서재로 향합니다.
    서재
    서재 안은 허전합니다.
    몇 개의 책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꽤 이질적으로 다가오는 모습입니다.
    당신이 올 때면 언제나 이곳은 책들로 가득했으니까요.
    비어버린 서재에 관찰 판정
    안나 로즈빌:

    Spot Hidden

    안나 로즈빌

    보통

    서재 안을 살피던 당신은 문득 몇 가지 책들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한 열이 통째로 비어 있습니다.
    자료 조사 롤
    안나 로즈빌:

    Library Use

    안나 로즈빌

    보통

    실패
    88vs.75
    비어버린 책장의 한 구석, 틈 사이에 끼워진 또 다른 페이지를 발견합니다.
    페이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필기체로 적힌 글자를 보아하니 이건 책에 인쇄된 것이 아닌 타인이 직접 쓴 문장 같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일까요?
    안나 로즈빌:마녀...?
    지능판정- 어려움 성공 이상
    안나 로즈빌:

    Intelligence

    안나 로즈빌

    보통

    성공
    63vs.65
    아무리 생각해도 영문을 알 수 없는 글귀입니다. 성당에 어울리지도 않는군요.
    이후 시선을 돌린 당신은, 공책 여러권이 어지럽게 놓인, 또 다른 탁자 위에 놓인 편지의 일부를 발견합니다.
    읽으면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안나 로즈빌:(.......뭔가 굉장히 알면 피곤할 일을 알아버린 것 같은데...)
    (편지 근처의 공책을 읽어볼 수 있을까?)
    의구심에 공책을 살펴보았으나, 공책 역시 알아볼 수 없는 글귀들만이 가득할 뿐입니다.
    그 때, 지하실의 계단 위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립니다.
    숨어야 할까요?.이곳에 올 사람은 그 말곤 없을텐데요..
    안나 로즈빌:(숨어야지. 이런 외진 곳에서 구린 걸 발견했다 들킨 사람이 맞는 결말은 뻔하잖아!)
    그런데 뭔가 이상합니다.
    누군가와의 대화 소리가 함께 섞입니다.
    ??:“일의 진척이 너무 느려. 언제까지 질질 끌 생각인 건가?”
    루시 스타인:...말씀 드렸잖아요, 방해물이 있어 어쩔 수 없었어요.
    ??:“도대체 그 방해물이 무엇인데?”
    늙은 남자의 목소리와, 너무나도 선명한 그의 목소리.
    그는 서재에 들어와 탁자 위에 있던 공책중 하나를 집어듭니다.
    그가 말합니다.
    루시 스타인:...여기에 제가 한 모든 게 적혀 있으니 상황을 확인해보세요.
    문이 닫히고 두 사람이 사라집니다.
    빛이 사라진 서재 안은 당신의 호흡으로만 가득찬 적막이 이어집니다.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 하루가 저물어갑니다.
    마을
    온갖 감정을 갈무리 한 뒤, 뒤늦게성당에서 빠져나와 마주한 마을은 휑하기만 합니다.
    버석버석한 땅과 동물의 시체, 다른 곳에서 온 의사들은 죽은 전염병 환자들을 병원으로 옮깁니다.
    고딕 건물들의 벽에는 생기를 잃은 담쟁이 덩굴들이 툭, 툭, 떨어져 나가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이제 햇볕을 받는 스테인드 글라스로 무장된 성당만이 가장 아름다운 존재로 남았습니다.
    죽은 자들이 있는 병원이나 생존자들이 모인 마을 회관으로 가볼 수 있습니다.
    안나 로즈빌:(오랜만에 병원으로 간다. 여전히 바쁘려나...)
    병원
    삭막한 병원은 환자들의 곡소리만 간간히 들릴 뿐 생명의 숨소리는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분주하게 곳곳을 소독하고 있습니다.
    입구를 기웃거리는 당신을 발견한 간호사가 다가와 이 이상 들어오면 안 된다고 경고 합니다.
    간호사:전염성 있는건 잘 아시죠? 아무리 로즈빌씨여도 안돼요.
    안나 로즈빌:알아요. 저도 능동적으로 죽을 생각은 없어요. .....아직도 별 차도는 없나 보네요.
    간호사:...아무래도 그렇죠, 이 와중에 과로사까지 하게 생겼어요 전부. ...어어, 그 약 그 환자한테 가는거 아니에요!!
    정신 없는 듯 간호사는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급하게 자리를 뜹니다.
    나가기 전, 시체에 대고 관찰 판정이 가능합니다.
    안나 로즈빌:(난리도 아니군. 이 정도면 곧 다시 처방전이 내려올지도 모르겠는데. 제조한 약을 한 보따리 보낸게 아주 오래되지도 않았는데. 마음이 심란해서 왔는데 어째 더 심란해진다. 돌아가기 전에 미처 치우지 못한 시체에 눈길을 준다.)

    Spot Hidden

    안나 로즈빌

    보통

    어려움 성공
    34vs.80
    그러고보니… 발걸음을 옮기던 중 어쩐지 시체들이 기괴한 표정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꼭, 저주 받은 것처럼요.
    광기에 미쳐버린 얼굴들입니다. 전염병 특유의 반점이나 괴사는 없으나, 모두 충격적인 걸 본 듯한 분위기였습니다.
    SAN (0/1)
    안나 로즈빌:

    Sanity

    안나 로즈빌

    보통

    실패
    89vs.55
    이성-1
    병원 입구에 나오면 벽에 붙은 전단지들과 익숙한 수도복의 옷자락을 발견합니다.
    분명… 그입니다.
    의사와 대화를 하는 모습은 유려하기만 합니다.
    낮에 피곤한 얼굴은 어디로 갔는지, 진심으로 병세를 걱정하는 듯한 모습이, 어쩐지…
    정신력 판정
    안나 로즈빌:

    Power

    안나 로즈빌

    보통

    어려움 성공
    31vs.65
    그에게서 공포가 느껴집니다.
    어디에서부터 흘러나온 공포인지는 모르겠으나, 마치 그의 주머니에 리볼버나 칼이 있을 것만 같은 기묘한 감정이 등줄기를 훑습니다.
    왜일까요. 저 검은 수단이 유독 시커멓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가... 마치 악마처럼 보입니다.
    공포에서 시선을 돌려 전단지를 보거나, 혹은 계속해서 그를 관찰할 수 있습니다.
    안나 로즈빌:(거의 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성당의 신부에게 드는 거부감에는 공포심은 없었다. 이 생경한 감정은 오늘 그런 일이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쨌거나 그가 수상하다는 건 사실 아냐? 마녀며 악마며 저주라니. 바티칸의 넓은 도서관도 아니고 이런 작은 성당 서재에 있을 이야기는 아니지. 여전히 눈을 떼지 못하고 얼굴을 찌푸린 채 신부를 본다.)
    어쩐지 소름이 돋는 긴장감에 잠식된 채 그를 관찰하고 있으면 문득, 그와 눈이 마주칩니다.
    당신을 발견한 그의 표정이 오묘해지더니, 이내 당신에게 가까이 다가옵니다.
    루시 스타인:....자매님, 이런 곳에서 또 뵙네요. 기도 이후에 일정이 없으셨던걸로 아는데, 어쩐 일로...?
    안나 로즈빌:일정이 없다는 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소리 아니겠어요. 제가 병원에 오는 게 이상한 일도 아니죠. (목소리에 든 경계심을 알아차린다 해도 할 말이 없었다. 애초에 감정을 숨기는 건 제가 잘 하는 일이 아니었다. 괜찮지 않을까. 저는 누구에게나 좀 까칠한 편이고..... 평소에는 다정함으로만 가득 차 있는 연녹색 눈동자에 든 감정이 뭔지 지금은 잘 모르겠다. 눈을 내리깔았다.) ...신부님이야말로 몸이 안 좋으신 것 같았는데요. 좀 더 주무시지 않고.
    루시 스타인:아... 그랬지요, 오늘은 비도 오지 않을 모양이니 여러모로 다시 바쁘실것 같긴 하네요. (아침과는 달리 끝까지 마주하지 못하고 내리깔아지는 시선이 의문스러운 듯 평소보다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그 눈이 한번 가늘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그대로 휘어 접혔다. 익숙한 모양새로.)
    잠은 충분히 잤답니다, 자매님께서 기도를 마치시고 돌아가신줄도 몰랐는걸요... 배웅해드리지 못해 죄송스럽네요, 그 이후 계속 눈을 붙였으니까... 아, (무언가 떠오른 듯 예의 그 익숙한 높낮이로 읊조렸다.)
    그러고보니 자매님은 저희 성당의 서재 단골이셨지요? 요즘은 어쩐지 뜸하셨던 것 같지만... 자매님이 찾으실만한 책을 몇권 빌려둘까 하는데, 이리 마주친 김에 혹시 말씀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안나 로즈빌:(평소처럼 휘어지는 눈과 마주친다. 그 눈이 조금 소름이 끼친다고.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생각을 한다.) .....계속 주무셨다고요. 손님이 없으셨던 모양이예요. (서재 안에서 들은 대화를 기억한다. 당신이 해야 하는 일이 뭘까. 이 죽어가는 마을에서 대체 무엇을 해야 해서.) 글쎄요..... 이제는 추천을 한 번 받아 볼까요? 신부님은 제가 어떤 책을 읽으면 좋으시겠어요? 예를 들면.. 요즘 신부님이 가장 관심 두고 있는 것이요.
    루시 스타인:자매님이 정말 마지막 방문객이셨지요, 슬프게도... (휘어진 눈과 상반되듯 눈썹을 아래로 늘어트리곤 말했다. 거짓을 고하는 이라고는 생각될 수 없을 만큼.)
    ....으음, 아침에 이은 질문인가요? (역시 질문이 많으시네요, 저도 농담을 던지듯 가볍게 이어지는 말 뒤로 돌아오는 것이 없었다. 휘어진 눈은 다시 가늘게, 무언가를 생각하듯 움직였고 흔한 버릇들이 그러하듯 그 역시 제 손가락을 입가에 가져다 대곤 침묵을 유지했다.)
    ....저는 언제나 무언가를 권하는 것에는 익숙치 않은 모양입니다, 자매님께서 좋아하시던걸 읽는게 가장 좋을거라고 생각하는데... (질문의 중심을 교묘히 피해가듯 사람좋은 웃음만을 지었다. 가장 관심두고 있는 것, 답 없는 질문에 대신 대꾸하듯 목에 자리한 묵주가 잘그락 소리를 냈다.)
    안나 로즈빌:(거짓을 말하는 이를 신뢰할 수는 없다. 아무리 상냥하고 꿀 바른 듯 행동해도 그 감정에 진심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저는 언제나 보답을 원하지 않는 행동을 믿지 않았다. 그를 보면 느껴지는 생리적 불편함에도 주일 미사를 보는 신도와 신부 이상의 교류를 이어간 것은 그가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었으리라. 원하는 욕망이 없는 다정함. 종교가 표방하기에 그가 마음에 담았을 것. 이어진 대답에 확연히 차가워진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회피 좋지요. (짧게 웃고는 말았다. 남의 행동에 관여하지 않는 것은 관계에 대한 회피나 다름없다. 제가 잘 하기에 아는 일이다. 묵주가 잘그락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이 성당을 책임지는 자리이기에 가슴에 걸 수 있는 상징을. 거짓도 회피도 어울리지 않는 상징을.)
    저는 성당 서재의 책들은 읽을 만큼 읽었다고 자부하는 편인데... 그러니까 신부님이 제게 추천하고 싶은 책을 발견하기 전까지 책 대여는 좀 미뤄둘까요. 사실 어려운 일은 아니잖아요. (가슴에 달린 십자가에 대고 말했다.)
    루시 스타인:(시선을 좇으니 제 가슴께에 자리한 십자가의 한복판이였다. 눈을 내리깐것이 없던일이라도 되는듯, 이제는 제법 매섭게 뚫어보는 푸른 눈을 오랜 시간 바라봤다.)
    ...제가 자매님께 어떤 거짓을 고하겠나요, 그저....
    (말을 뱉으면서도 제 입 안이 꽤 쓰다고 느꼈다. 거짓과 위선의 상징인 선악과는 그리 달다고 하건만, 꼭 그런 것도 아닌 모양이지. 입을 한번 꾹 다물고는 시선이 끈덕지게 붙은 십자가를 안으로 집어 넣는다. 자연스레 그제서야 닿는 시선에는....) ......신중이라고 하겠지요.
    (아, 역시 입 안이 꽤나 쓰다. 하지만 이는 거짓도 아닐텐데, 대체 단 것은 무얼 가리킨단 말인가? 오래 마주하던 푸른 빛에서 이번에는 저가 눈길을 돌렸다. 티나지 않을 만큼.)
    안나 로즈빌:....저는 거짓이라 한 적이 없답니다, 신부님. 제게 거짓을 말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부는 바람에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넘기고는 묻는다. 머리칼에 가렸던 시야가 돌아온다. 쓴 것을 먹은 표정이 되어 있는 얼굴을 보자니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분명 부정적이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부정적이라 결론내리자니 어딘가 걸리는 구석이 있는.)
    루시 스타인:....회피라 하셨으니까요, 회피는 주로 진실에서 멀어지고 싶을때, 마주하지 않을때 쓰는 말이 아니던가요. (한마디 한마디가 스스로를 억누르는 꼴이였다. 역풍이 불었다, 이리저리 흔들리던 머리칼이 이제는 제 시야를 방해한다. 무언가를 흐트려놓으려는 것 처럼, 머리 한쪽을 귀 뒤로 쓸어 넘기며 질문에 답한다.)
    제가 자매님께 어떤 거짓을 고하겠나요.
    .....없습니다. (목소리는 꽤 흔들리지 않고 차분했다고 생각한다. 아침의 대화를 떠올려본다. 역시 거짓은 없었다, 온통 진실뿐이다.)
    ...자매님, 제가 괜히 말을 걸었나 봅니다. 어쩐지...피곤해 보이시네요. ....이만 들어가봐도 될까요? (그래서, 이것은 분명한 회피였다.)
    안나 로즈빌:(하지만 당신은 이미 거짓을 고했지. 손님 없이 부족한 잠을 잤다는 소리는 서재에서 들은 말과는 정확히 반대되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렇게까지 가까운 사이도 아니니까. 남에게 말하고 싶지 않은 손님이야 있을 수 있으나, 그 책과 대화와 쪽지가 이건 그 정도의 거짓이 아니라는 직감을 줄 뿐이었다.) 이곳은 성당도 아닌데 제게 축객령을 내리시다니요. 아니, 성당에서도 사람을 거부하지는 않는 법일 텐데요. 찾아온 이가 악마가 아니고서야. ...하지만, 이만 들어가시는 것은 신부님의 자유이시죠. (수긍의 말을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지는 않았다.)
    루시 스타인:(아래를 향할 일 없다는 듯 빳빳하게 치켜든 채 미동 하나 없는 고개와, 수긍 속 날이 잔뜩 선 말투는 저와는 상관 없었다, 그저 발걸음을 옮기면 되는 일이다. 그저...)
    .....아니, ....그래요,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자매께서도 좋은 오후 되시길. (그러면 되는 일인데. 그깟 단어 하나가 돌덩이 하나를 던져 놓아 파도가 되어 일렁였다. 울컥 치솟는 것도 잠시, 고개를 돌리니 잘그락거리는 묵주의 소리와 변함 없는 시선, 그리고 다시 마주한 회피. 입술을 깨문것도 잠시 다시 나직하게 말을 이어가곤 미소를 남기며 발걸음을 옮긴다. 그러면 되는 일이였다.)
    낮의 미심쩍은 글귀와 미심쩍은 그의 태도가 자꾸 당신의 신경을 긁습니다.
    그가 떠난 자리에 짜증과 혼란과 잔여물처럼 남은 긴장감이 뒤섞인 와중,
    주위 간호사와 의사들이 말하는 게 들립니다.
    듣기 판정
    안나 로즈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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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나 로즈빌

    보통

    성공
    79vs.80
    당신은 이내 그것이 그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간호사:“정말 착한 분이시지, 매일 와서 환자를 위해 기도하고…”
    의사:“요즘 항상 밤을 새는 것 같으시더라고. 어쩐지 수척한 기색이던데, 바쁜 일이 생긴 걸까?”
    간호사와 의사들에게 말을 걸어볼 수 있습니다.
    안나 로즈빌:스타인 신부님 이야기하는 거예요? (인사는 적당히 고개를 까닥이는 정도로 생략했다. 늘 그랬으니까.)
    의사:아, 로즈빌씨. 오랜만이네요? (생략된 인사가 익숙한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분 말고 그럼 누가 있겠어요? 사람 죽으라는 법은 없는 모양인지... 이 마을에서 그럴 사람은 신부님 뿐이시죠.
    간호사:고마울 따름이죠.... 로즈빌씨는 요즘 뜸해서 잘 모를만도 하지만. 병동 막내 간호사들 과로로 쓰러지기 전에 두 팔 걷고 도와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그런사람 없어요 정말. 일손 부족한데 살았다구요.
    안나 로즈빌:그럼 좀 부르시던지요. 진통제 주문만 하지 말고. (픽 웃고는 말았다.) ....네, 뭐. 그런 사람 또 없기는 하죠.
    간호사:어휴, 사정 뻔히 알면서 그런 얄궂은 말을 해요? (손사레를 치고는 이내 수긍했다.)
    의사:그래, 이게 보통 전염병이 아닌걸 요즘 모르는 사람이 있나? 옮으면 큰일이라고 저잣거리에서 개나소나 다 떠드는 그 병인데! 어떻게 사람을 오라가라 해요, 큰일날 소리...
    로즈빌씨 이 병 증세 자세히는 잘 모르죠? 설명이 워낙 없었으니...
    안나 로즈빌:그래서 병에 걸려 죽는다면 신부님보단 제가 낫지 않아요? (으레 하는 고약하단 소리나 들을 농담이다. 하지만 그들에겐 아주 틀린 말도 아니지 않나? 마을 일에 발벗고 나서는 신부와 혼자 사는 약사. 목숨의 무게를 재면 어느 쪽이 무거울지는 자명하다.) ...모르죠. 소문만 점점 커지잖아요. 저야 원체 밖에 안 나다니고... 병 걸린 당사자는 약 사러 못 나오니까.
    의사:....그런 소리를 막 한다니까? (그러나 딱히 예상이 틀린 것은 아닌지, 이어지는 말은 없었다. 고개를 두어번 젓고는 예의 그 증세 이야기로 흘러갔다.)
    좀 특이하더라고. 보통 전염병이면... 알죠? 막, 흉하잖아. 근데 이건 크게 두드러지는 증세가 없어요. 몸뚱이는 말이야....
    간호사:몸뚱이만 없겠죠. 그러니까 사람들이 걸려도 걸린지 모르고 지내다가.... 저꼴이 났다니까? (시체더미 위를 슬금 가리켰다.) 참 무서워, 글쎄... 몸이 아니라 뇌에 이상이 생기나봐요.
    막 밝혀진건 아니지만 증세로 봐선 확실해. 사람 하나를 죽도록 미워하더라구요 하나같이. 차라리 그 대상이 하나면 그 사람한테 뭐라도 있나 하겠는데 그런것도 아니고...
    거의 저주 수준이던데요? 환자 둘 셋 보다가 소름 돋았잖아. 그렇게 죽도록 미워하다가...미쳐버리더라고.
    의사:왜... 머리가 병들면 몸도 병든다고들 하잖아? 그 말이 맞나봐, 미치고 나선 독약이라도 들이킨듯이 갑자기 온 몸이 아프다는거야. 그러다가 끝.
    미치고 팔짝 뛰겠다니까요, 뭘 해줄 새도 없어요, 그런데 그런 병이라고 소문이 파다한 와중에 매일같이 봉사 와주시는 신부님이 있으니 얼마나 감사해, 안그래요? (소재가 떨어지자 다시 예의 그 '찬양'으로 대화가 반복됐다.)
    안나 로즈빌:몸은 멀쩡하다고요? (그러고 보니 시체의 피부가 제법 깨끗했던 것도 같았다. 표정에 눈길이 먼저 가 중요하게 생각지 않았는데.....) 뭐. 정신 문제도 전염이 되나요? 그거 참 성격 나쁜 사람이면 걸린지도 모르겠네..... (동네 신부를 찬양하는 말에 별로 맞장구를 치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다. 평소라면 몇 마디쯤 얹었겠으나 오늘 같은 날에는..) 하여간, 병원에서 진정제만 주구줄창 주문하는 이유가 따로 있었네요.
    간호사:그렇죠, 뭐 할 수 있는게 없으니까... 솔직히 지금 병동 사람 몇명은 진작 짐싸서 나갔어요. 뭘 하겠어요 우리가? 이렇게 하나 둘 없어지니 일손은 계속 부족하고- 아, 이해가 안가는건 아니지만. 그래서 신부님이 계셔서 참 다행이고- (같은 맥락의 대화가 반복될 기미만 가득했다.)
    안나 로즈빌:(같은 이야기를 또 듣게 생겼다. 별로 듣고 싶지도 않은 이야기를. 너무 성의없어 보이지 않을 정도로만 고개를 끄덕이다 적당한 시기를 맞춰 입을 열었다.) ....아, 바쁜데 그만 방해해야겠다. 약 부족해지면 주문서 넣어주세요. (말을 걸 때와 마찬가지로 가벼운 고갯짓으로 인사를 마치고 병원 입구를 나섰다.)
    괜한 소리들을 들은 이후라 기분이 썩 좋지 않습니다. 당신은 애써 시선을 돌려 잿빛의 벽면에 자리한 전단지를 살핍니다.
    전단지를 자세히 보면 광고물이 아닌 성서의 구절을 따온 종이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관찰판정
    안나 로즈빌:

    Spot Hidden

    안나 로즈빌

    보통

    어려움 성공
    38vs.80
    전단지의 뒷편을 살피니 다른 구절이 이어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안나 로즈빌:(바쁘기도 하겠네. 성경 구절이니 성당에서 만든 거겠지. 뒷면을 돌려보고는 눈을 찌푸린다. .....이것도?)
    찜찜한 전단을 뒤로한 채 걸음을 옮깁니다. 날이 점점 저물어갑니다.
    마을 회관
    마을 회관에 있는 사람들은 정말 그 수가 손에 꼽을 만큼 적습니다.
    듣자하니, 그들은 마을을 버리고 떠날 것에 대해 열띤 논의를 벌이는 중입니다.
    한구석에는 꼬마 아이들이 두어 명 웅크린 상태입니다.
    논의를 벌이는 어른들에게 가보거나, 아이들에게 가볼 수 있습니다.
    안나 로즈빌:(발길을 돌려 아이들한테 먼저 향했다. 어른 없이 있는 애들은 어디서나 눈에 밟힌다. 어쩔 수 없이.)
    아이들에게 다가가면 아이들은 조용히 구슬로 저들끼리 놀고 있습니다.
    가만히 다가온 당신을 발견한 듯 곧 한 아이가 울먹이며 묻습니다.
    아이들:“...누나, 우리 죽어요? 우리 죄다 죽어요?”
    아이들은 무어라 무어라 이야기를 떠들지만 울음 소리에 뭉개져 제대로 알아듣기가 어렵습니다.
    말재주나 설득 등 대인 기능 롤을 사용해 진정시키는 것이 가능합니다.
    안나 로즈빌:

    Persuade

    안나 로즈빌

    보통

    어려움 성공
    8vs.20
    겨우겨우 울음을 그친 한 아이가 중얼거립니다.
    아이들:“저희 말이에요, 매일 기도하러 갔어요. 성당에 밤마다 갔어요. 우리를 구해달라고 신한테 기도하러 갔어요.”
    “신부님이 우리한테 전부 괜찮아질 거래요. 그리고 자꾸 미안하대요. 왜 미안하다 그랬을까요? 모르겠어요.”
    안나 로즈빌:밤에 위험하게 어른들도 없이 밖에 나다녔단 말이야? 언제 어디서 병이 옮을지도 모르는데 조심해야지. (가벼운 질책이 먼저였다. ...그러게 왜 미안하다고 했을까. 뭐가 미안할까. 이어지는 이야기에 저절로 인상을 찌푸렸다.) ...원래 어른들은 애들한테 미안한 게 많은 거야.
    아이들:....하지만 신부님은 그러면 안되잖아요, 괜찮다고 해주셔야 하는거 아녜요? 기도하면... 기도하면 괜찮아진다고 했는데, 우리 엄마가....
    그런데 우리 엄마는 안괜찮아 졌어요, 그러면서 미안하대요. ......
    안나 로즈빌:....괜찮아질 거라고도 해 주셨다면서? 그런데 아직은 아니니까. 그게 미안하신 거겠지. 어른들은 너네한테 그게 미안한 거야. 신부님도 어른이잖아. (저는 이제 성당의 신부를 온전히 믿기 어렵지만 아직 애들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 품에서 꺼낸 손수건으로 눈물로 꼬질해진 얼굴을 한 번 훔쳐 주고는 대답한다. 그 사람처럼 다정하고 곱게 달래는 법은 몰라도. 이게 저의 최선이니까.) 그래도 여전히 밤길은 위험하니까, 밤에 성당에 가는 건 그만하자.
    아이들:.....알았어요, 신부님이 너무 귀찮겠죠...? ........새벽에도 갔는데... ...요즘은 안열어주시길래...
    한 아이가 말을 이어가다 울음을 다시 터뜨리자, 개중 가장 큰 아이가 어깨를 도닥이며 자리를 서둘러 뜹니다.
    당신의 손수건을 돌려줄 새도 없이, 힐끗힐끗 바라만 보다 사라집니다.
    안나 로즈빌:(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사람들에게로 발걸음을 옮긴다.)
    당신은 그 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들은 당신이 온 것도 눈치 채지 못하고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이곳을 당장 떠나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어디로? 다른 곳으로 도망쳐봤자 전염병은 이 나라 전역에 퍼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문득, 귓가에 들어오는 소리.
    ??:“그거 들었어요? 뱀의 저주라고. 그 저주가 한 번 퍼지면 사람들을 다 죽이고, 마을을 멸망시킬 수가 있대요.”
    “악마야. 분명 악마가 이곳에 들어온 게야. 악마가 저주를 퍼트린 거야.”
    악마.
    정신력 판정
    안나 로즈빌:

    Power

    안나 로즈빌

    보통

    실패
    88vs.65
    문득 검은 수도복의 그가 떠오릅니다.
    악마.
    어쩐지 그가, 당신을 죽이러 올 것만 같은 기시감과 공포감이 듭니다. 또다시.
    왜?
    불안감에 회관을 나서면 구석에 앉아 중얼중얼 알 수 없는 내용의 기도를 흘리는 늙은 비쩍 마른 사내가 보입니다.
    그는 당신을 발견하자마자 대뜸 외칩니다.
    악마가 왔어, 여기에 악마가 왔어!
    악마가 저주를 퍼부은 게야, 그래서 우리가 다 이 모양이 된 거라고!
    공포에 경직된 근육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시야에 담깁니다.
    당혹감에 물들어 악마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사내는 정신이 나간 것처럼 당신의 두 팔을 붙잡고 악을 씁니다.
    악마를 죽여야 해! 악마를 죽여야 해! 성서를 읊고 칼을 들어. 그를 코앞에 두고 죽이겠다 알려야해
    그것이 인간의 사명이다. 이름을 부르고 사형을 선고해야만 한다.
    회관에서 사람들이 뛰쳐나옵니다.
    저 인간 또 저러는군, 탄식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장정이 나타나 사내를 억지로 당신에게서 떨어트리려는 순간,
    너무나도 또렷한, 너무나도 선명한, 너무나도 굳건한 목소리의 속삭임이 귓가에 내려앉습니다.
    바로 이 공포에 사로잡힌 사내의 것이었습니다.
    저주가 사라질 방법은 주체를 죽이는 것뿐이라고, 친구...
    왜 자꾸,
    왜,
    자꾸,
    그가 생각나는 걸까요?
    안나 로즈빌:.............
    조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안나 로즈빌:(창백해진 얼굴로 저를 도와준 마을 주민들에게 대충 인사를 마무리하고는 집으로 향한다. 평판 좋은 신부에 대한 말이나 해 보았자 같은 소리나 들을 텐데. 뭘 더 물어보고 싶은 기분도 들지 않았다.)
    당신은 집으로 돌아갑니다. 어쩐지 많이 피로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집앞에 누군가의 그림자가 보입니다.
    그입니다. 오늘따라 당신의 주변에 많이 등장하네요.
    당장 낮에 당신을 쫓아낸 사람은 그가 아니었던가요.
    그는 머쓱한 웃음을 짓고는 당신에게 말했던 새로운 책을 건네주러 왔다고 방문한 이유를 댑니다.
    하지만...어쩐지 핑계처럼 들립니다.
    루시 스타인:.....음, 너무 시간이 늦었나 싶지만, ......내일은 바쁠 것 같아서요. 책을 부탁하셨잖아요 자매님.
    안나 로즈빌:아침에도 말씀드렸듯이 저는 잠이 별로 없어요. (책을 빌려주고 받는 일은 좋은 핑계지. 다음 날은 바쁘다는 것도.) ...어려우시다면서 빨리 결정하셨네요.
    루시 스타인:....제가 취미라고 해 봤자 여러가지 씩이나 있을까요? 너무 뻔할까 걱정이 되었어서 드린 말씀이였죠. (자매님이 꽃을 돌보는 것에 관심이 있는지도 잘 모르는걸요. 실 없는 소리를 덧붙이곤 성경 두어권을 건냈다.)
    동네 아이들은 그래도 재미있게 읽던걸요, ....아, 아까 병원에서는 ....기분이 상하신 것 같던데, 제가 무례라도 범했을까 걱정입니다 자매님. (눈치를 살피듯 고개를 살짝 기울여 조심스레 거리를 좁혔다.)
    안나 로즈빌:허브를 조금 키우긴 하는데 그런 건 잘 못해서.... 꽃 가꾸는 취미가 있으셨나요? (책을 받는다. 성경이라니.. 누가 책을 추천하는데 성경을 준단 말이야?) 아... 병원이요. 방금 더한 소리도 듣고 온 지라 별 것 아닌듯 여겨집니다. 괜찮아요. 실제로도 별 일은 아니었잖아요, 신부님. (영 피곤했다. 눈이 따가워 감았더니 눈두덩 안쪽에 열이 오르는 듯했다. 손에 쥔 책이 적당히 무거웠다. 성경이라니. 정말로 신부가 건넬 만한 책이지. 정말 우습게도.)
    루시 스타인:허브요? 아, 약초를 다루시니 그런것도... (말을 무던히 이어가다 질끈 감긴 눈과, 이 전의 문장들이 신경이 쓰이는지 무심코 손을 뻗었다. 약간 미지근하고 어쩌면 차가울정도의 온도가 뜨거운 눈두덩에 닿았다가, 금새 파드득 떨어졌다.)
    ....아, .......표정이, 너무 안좋아 보이시길래.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그러고보니 병원에도 먼저 와 계셨었죠.
    저는 그냥 걱정이 되네요 새삼스레... (당혹스러움이 채 감춰지지도 않은 말투로 두서없이 늘어놓다 시선을 힐끗 들어올려 읊조렸다. 피차 피곤해보이는 눈가는 그새 더 건조해지기라도 한것인지 젖어들어갔다.)
    역병이 심하게 돌지 않습니까 자매님.
    그래서 몸이 좋지 않으신건가 해서 찾아뵌것도 있고요...
    루시 스타인:더한 소리라니, 그것도- (눈치를 살피며 몇발자국 다가가던 걸음은, 보이지 않는 선을 알아채기라도 한 것인지 다시 머뭇거렸다. 이어 슬며시 다시 뒷걸음질 쳤다.)
    안나 로즈빌:...신부님, 제 집은 직업상 손님이 들곤 합니다. 젊은 신부가 혼자 사는 젊은 여인의 얼굴에 손을 대는 것은 누구 눈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신부님께도 그리 좋지 못할 거예요. (직업과 나이와 성별 같은 요소를 읊는 것은 완곡한 거절로는 아주 좋은 핑계였다. 저는 이제 그가 아주 불편했고 이리 가까이 다가오는 것도 좋지 않았다. 그래도 말로 뱉은 이유가 아주 거짓인 것만은 또 아니라서. 명확히 결정하지 못한 마음에 한숨을 쉬었다. 신을 절실히 믿지 않는데 악마를 절실히 믿을 연유가 무엇이 있는가. 다만 그의 진실성을 의심할 뿐이었다.)
    .....마을에 악마가 들었다더군요. 악마의 이름을 부르고 죽여야 한다고. 그래야 우리가 산다고. (회관에 갔다가 들었어요. 짧게 덧붙이고는 고개를 숙인다. 수단 아래의 검은 구두코를 응시한다. 아무리 다정한 신부님이라 해도 이 늦은 밤까지 책 몇 권을 빌려주고자 모두를 찾아오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필 왜 나한테? 뭉개져 반쯤 남은 발자국을 보며 속으로 물었다.)
    루시 스타인:(완곡한 거절에 제 성급함과 아집이 부끄러워져 손을 뒤로 감췄다. 뒤 이어지는 마을에 도는 소문은 저가 물어놓고도 영 귀에 들어오질 않았다. 그보단 제 구두코를 잠자코 내려다 보는 시선이 신경이 쓰였다. 매번 그랬다, 난 항상 부질없을 것들에 시선이 가곤 했으니까. 그러니까 지금도 그러하다. 이것 저것 뒤엉켜 엉망이 되어가는 감정을 여러번 갈무리했다.)
    악마가 들었다고 하던가요, .....역병이 도니 아무래도 많이 혼란스럽겠지요. 으레 사람의 마음이...(언제나 평온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어져야할 말은 저만치 밑으로 떨어져 나오지 않았다. 몇번인지 모를 굳게 닫힌 입을 열어도 나오는건 다시 한숨이였다.)
    ...... 제가, 자매님이 유독 걱정이 된다면 그것 역시 역병이 돌기 때문일까요? (한숨의 끝은 날것이였다. 입에 쓴맛이 영 가시질 않아 더 물고 있기가 힘들었다. 뒤로 숨긴 손을 저 홀로 맞잡았다.)
    안나 로즈빌:........신부님의 감정을 제게 물으시나요? (당황스럽게 들릴 여지가 충분한 말이었다. 그 물음을 던진 이가 입고 있는 옷이 검은 사제복이 아니라면 동네 청년의 어설픈 고백으로 넘겼으리라 생각될 정도로. 등 뒤로 감춘 손을 본다. 긴장하고 불안한 것 같은 자세도. 이건 이상하다. 착각일 거예요. 미안한데 전 별 생각 없어서요. 평범한 상황이라면야 그런 대답을 했겠지만 이건 전혀 평범하지 않으니까. 오늘의 모든 일이 평범하지 않아서.) 저를 걱정해주시는 것은 감사하지만 ....사람들 마음을 좀 다독여 주셔야겠어요. 이 동네에 악마가 있다는 소문이 생각보다 놀랍지 않으신가 봐요. (말을 돌린 것은 그래서였다. 당신은 뭐 하러 여기에 왔어? 당신은 대체 누구야? 차마 직접적으로 물을 수 없는 질문 대신.)
    루시 스타인:(날것으로 뱉은 말은 그에 맞게 짙이기고 씹혀 사라졌다.
    차라리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한숨은 영 꺼질 생각을 안했다. 속 안이 온통 숨으로 가득 차서, 덥다못해 뜨거운 열기에 녹아 사라질것 같은 망상이 들었다. 고개를 들어 예의 그 파란 눈과 마주한다. 오늘 어쩐지 좀 자주 보는 것 같지. 그래서 참 싫었다.)
    ...그래야죠, 마음이 소란스러우면 누구나... ....누구나 잘못된 곳에 발을 들이지 않겠어요, 충고인가요 자매님?
    (이 동네에 악마가 있다. 그것이 그리 놀랍지 않다. 그렇다면 당신은 여기 뭐하러 왔어? 당신은 대체 누구야? 당신은- 어쩐지 말 한마디 하지 않았음에도 이어진 질문을 예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기에 숨이 턱 막혔다.
    저 파란 눈이 참 싫어. 모든걸 꿰뚫는 냥 마주하는 시선이 싫고, 그 앞에 제 발로 서는 자신이 싫고, 아...)
    ....마을에 악마가 있다면 그도 ....그저 잘못된 곳에 발을 들인 자가 아니겠어요. 자매님이 말하는, 그들이 말하는 악마는 만들어진 자를 말하지 않습니까.
    루시 스타인:(헛소리를 되는대로 내뱉었다. 저가 걸친 검은 사제복이 차라리 이 자리에서 몸을 감싸 조르기라도 하면 좋을텐데. 십자가가 아닌 파란 아래 선 제 구둣발을 내려다 보았다. 차마 바로 볼 수는 없었다.)
    안나 로즈빌:걱정이지요, 신부님. (한숨이 많았다. 한겨울밤처럼 입김이 나오지 않을까 싶게. 그 속이 절절 끓고 있구나 싶었다. 왜 그리 속이 끓는지는 모른다. 왜 그런 서책이 놓였는지. 서재에 찾아온 그 사람은 누구였는지. 죽어가는 마을에서 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저는 이 신부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까.) 그저 들은 소리이니 저는 잘 모른답니다. 하지만 신부님이 그리 말씀하신다면.......... 만들어진 자겠지요. (만들어진 악마란 무엇을 뜻하나. 악마로 만들어지기 전에는 무엇이었나. 루시퍼 역시 죄를 짓기 전에는 천사였듯이, 지금의 악마 역시 그러한가.)
    한숨이 많으십니다. 신부님의 마음도 소란스러우신가 다시 한 번 걱정이 되네요. 잠을 잘 못 주무신다면서요. (그리고 그게 정말 당신일까? 제 발만 내려다보는 사람을 바라본다. 분홍색 머리카락은 밤에도 꽃처럼 어슴푸레 밝았다.)
    루시 스타인:(내려앉는 걱정에 온기라곤 없다 싶었다. 그냥 어쩐지 그런 생각이 들곤 했다. 그리고...)
    ...한숨이 원체 많은 편은 아닙니다만, 지금은...
    (그리 생각한것은 대부분 맞았다. 그렇다면 지금은 알면서도 이리 하는 것인가. 스스로 질문을 하고 답을 내리는 행위에 지쳐갔다. 모든것이 우습다, 지금 이 순간까지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것도, 저 허술하게 숨긴 질문도.)
    .....아무래도 제가 어느 한 곳에 머무르는 것이, 많이 죄스러운가 봅니다 자매님. (눈가가 메말라 젖어든다고 생각했는데. 속 안의 열기가 정말 터지기라도 한건지. 마주치지도 못한 눈가에서 나온 죄악은 애꿎은 제 구두를 적셨다. 목소리만은 또렷했다.)
    안나 로즈빌:가셔야 할 다른 곳이 있나요? (이 역시 영문을 알 수 없는 답이었다. 이 신부는 온통 모호한 말만 한다. 종교란 것이 그러하다고, 그런 생각을 하고는 했지만.. 이는 보다 세속의 모호함에 가깝지 않은가. 다시 피곤해져 이만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 조금 이상했다. 목소리가 또렷해도 어딘가 이상한 부분은 쉽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신발 코에 동그랗게 떨어진 얼룩을 발견한 것은 그 다음이었다.) ...신부님? (놀라 팔을 잡아도 고집스럽게도 얼굴은 숙인 그대로였다. 정말 난리도 아니다 싶었다. 더운 한숨을 쉰다. 꼭 그처럼.)
    .........구태여 저를 찾아오셔서..... 제게 이러시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스타인 신부님. (결국은 날것의 말을 하고야 만다. 저는 누군가가 의지할 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고민을 털어놓기에도 좋지 않고 부탁을 하기에는 더더욱 적합하지 않았다. 골목 끝 작은 집에 사는 약사보다는 병원의 의사며 마을의 장로처럼 더 좋은 이들이 많을 텐데... 이 사람은 정말로 왜 이럴까.)
    ...왜 그러세요? (내가 질문하지 않는 만큼 당신이 대답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잖아. 새까만 옷을 잡는다. 까만 밤에 녹아든 짙은 옷은 참 불길하게도 보였다. 불경스럽기 그지없는 감상이겠지만.)
    루시 스타인:(붙잡힌 팔을 달리 밀쳐내지도 않았다. 고개를 들 마음도 들지 않았다. 왜 그러세요? 그러게요, 저는 왜 그럴까요?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걸까요? 속으로 수백번을 빠르게 되물어도 돌아올 답은 진작 저 밑으로 묻혔기에 그 질문에 대꾸할 말 역시 없었다. 고개를 느리게 들었다, 아주 천천히, 시선이 맞을때까지. 나는 여전히 이 눈이 참 싫다 싶었다. 내가 너무 잘 비춰지는 점이 그랬다. 숨을 한번 고르고, 기나긴 정적이 이어졌다.)
    한참 뒤에 그는 당신에게 말합니다.
    루시 스타인:...이런 말, 뜬금없게 들리겠지만 자매님. 신부인 저는 사람들의 고해를 들어주지만, 정작 제 고해를 들어줄 사람은 신밖에 없어요.
    어쩐지 그 말은 꽤 서글픈 느낌이 났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에 관한 고해인 걸까요?
    다시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문득 그가 묻습니다.
    루시 스타인:만약 당신은 당신의 ...친구라 생각한 사람이 자신을 해치려 든다면, 어떤 기분이 들 것 같나요?
    안나 로즈빌:..... 신부님들은 신께서 들어주시면 충분한 분들인 줄 알았는데요. 제가 모르는 게 많네요. (그래, 종교에 몸을 의탁한 이들도 외로울 수 있겠지. 어쨌거나 하늘 높이 계신 분은 하늘 높이 계시지 제 옆에 있어주는 게 아니다. 짧은 정적 끝에 뜬금없이 이어진 질문에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이 마을에서 저는 완벽하게 혼자여서 뚜렷한 적도 없으나 친밀감을 느껴 친구라 이름붙일 사람도 몇 없었다.)
    그렇다면... 제가 사람을 잘못 본 거겠지요. 나를 해치는 사람이 친구인가요? (간단한 대답 끝에 조용히 눈을 마주친다. 물기가 일렁이는 연두색 눈동자를. 어딘지 속 안 쪽이 울렁거리는 것 같다. 영 불편한 기분이 들어 마른 웃음을 띄웠다.) 뭔가 사정이 있겠지 하고 이해할 만큼 좋은 사람은 못 되는 모양이에요. 사정이 무엇인가에 따라 조금 달라질지는 몰라도... 글쎄, 대단한 사정이 있다 해도 넘어갈 수 있을까요. 역시 잘 모르겠어요. 실망하셨을까요?
    루시 스타인:...제가 자매님께 실망할 일이 무엇이 있겠나요, ....신실하신 분이시잖아요. (메마른 미소를 따라 저도 입꼬리 한쭉을 비죽 올려보였다. 축축하게 젖은 눈가는 밤바람에 버석하게 말라 비틀어져 따끔한 통증만이 남았다. 나를 해치는 사람이 친구인가요? 답은 헛웃음이 나올만큼 명료했다. 그러니 실망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저 진실을 마주했을 뿐이고, 회피는 끝낼때가 되었단 소리였다.)
    그렇죠? 사정이 모든 이유가 되어주진 않고, 자비는... 언제나 늦더군요. ...자매님께 과한 추태를 부렸네요, 밤도 많이 깊었고... 아. (말이 끊어지듯 느릿하게 이어가다 눈을 다 마주했다. 푸른 눈에 비춰진 것을 이번엔 부러 떼지 않고 바라보았다. 익숙함이 비춰졌다, 늘 그렇듯 휘어지는 눈가가 보였다.)
    ....그러니까, ....오늘 잘 주무셨으면 좋겠네요 자매님. 가보겠습니다. (이내 무언가를 결심한 듯 다시 뒷걸음질 치곤 고개를 돌렸다. 멀어지는 걸음에 안정을 느껴야만 했다, 그래야한다.)
    안나 로즈빌:주무세요, 신부님. ...내일 아침에 뵈어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 자욱이 선명한 얼굴에도 더 말하지 않는다. 마음을 진정시키도록 차라도 한 잔 드시겠느냐고 잡지 않는다. 이 이상의 거리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 이하의 거리는? 멀어지는 등을 보며 복잡한 숨을 내쉬었다. 우리 곁에 있다는 악마는?)
    집에 돌아와 침대에 몸을 뉘여도 마을에서의 일이 떠나가질 않습니다.
    그의 모습 또한.
    악마, 저주, 주체.
    그의 수상쩍은 행동들.
    주체를 죽여라. 악마를 죽여라. 그러면 무슨 일이 일어나련지요.
    그러면 이 모든 끔찍한 저주가 사라지기라도 하나?
    ….그렇다면, 정말.
    만약에...아니, 이젠 확신으로 가득찬, 그가 어쩌면 이 일의 원흉일지도 모른다 이야기 하는 당신을 믿어줄 이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병원에서 보았듯이 그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신뢰는 두텁기 그지 없었습니다. 분명 당신은 이단자로 몰릴 것입니다.
    즉, 이 일의 결정권은 오롯이 당신에게만 있습니다.
    잠이 몰려옵니다. 아, 모르겠습니다.
    뭐가 어떻게 되어가는 건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그래요, 아침에 눈을 뜨면 다시 그를 찾아가봅시다.
    얼굴을 봐야 무엇이든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듭니다.
    꿈을 꾸었습니다.
    무언가 당신의 목덜미를 부드러이 감싸쥐더니, 당신의 손에 칼을 쥐여줍니다.
    눈앞에는 그가 있습니다. 분명 눈물을 흘리는 그입니다.
    그의 심장에 칼을 찔러넣습니다.
    아, 이것으로 당신은 오롯이 자유가 됩니다. 자유가…
    …….
    ….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습니다.
    문득 탄내가 당신의 코를 찌릅니다.
    어렴풋이 눈꺼풀을 들어올리니 방안이 매캐한 연기로 가득 차고 공기 중에 열기가 떠다닙니다.
    불이야!
    날카로운 외침이 들려봤자 이곳에 화재를 진압할 인원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마을의 몇 안 되는 생존자가 양동이로 물을 퍼 창밖에서 당신의 집에 난 불을 끄려는 얄팍한 시도를 하는 게 보입니다.
    하지만 턱 없이 적은 수입니다.
    탈출할 수 있을까. 시도라도 해볼까요.
    발버둥이 무색하게 도망치려 하면 점점 시야가 감깁니다.
    턱 끝까지 숨이 찹니다. 점점 공기가 빠져나가는 듯한 쇳소리만이 귓가에 맴돕니다.
    흔들리는 시야의 끝, 뛰쳐나간 방 바깥은 화마가 지배했습니다. 이대로 죽는 건가 싶습니다.
    고통에 바닥을 깁니다.
    그 때 누군가 당신을 끌어안고 창밖으로 뛰쳐나갑니다.
    신선한 산소가 폐부에 차고 나서야 죽을 듯이 기침을 내뱉었습니다.
    여전히 불에 타오르는 집이 보이지만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앞에는 그가 있었습니다.
    재에 그을린 모습으로 어쩐지 복잡한 표정입니다.
    루시 스타인:......괜찮아요? 아니, ...괜찮습니까? (저도 숨이 차는 듯 몇번이고 숨을 고르다 마주한 시선에 표정을 굳힌다. 평소보다 잠잠한 목소리로 상황과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담담히 물었다.)
    안나 로즈빌:신부님....? (눈물이 나고 목구멍이 따가웠다. 머리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렸다.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이상한 꿈을 꿨는데. 하필이면 또 눈 앞에 있는게 그야. 불이 났고.. 이건 꿈이 아니지? 꿈이라면 목이 이렇게 아플 리가 없지. 목구멍이 찢어지는 것 같다. 헛손질을 몇 번 해서 땅을 짚었다. 눈 앞이 핑 돈다.)
    루시 스타인:(휘저어지는 손길에 눈썹이 잘게 떨리는 듯 하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볼 것을 다 보았다는 듯 상투적으로 등을 감싸 몸을 바로 세웠다.)
    ....잘 주무시라는 말이 참 우습군요 자매님. (이내 한마디를 내뱉더니 찡그리듯 눈가가 움직였다. 머뭇거리던 손은 제 의사가 아니였다는 듯 마찬가지로 도로 감춰지고, 한발짝 떨어져 다시 물었다.) 이제 좀... ....움직이실 수 있겠나요?
    안나 로즈빌:아니, 불을 제가 냈나요? (다소 억울한 마음이 들어 툭 내뱉었다. 곧이어 구해 준 사람에게 할 말은 아니지 싶었지만, 찡그린 눈을 보니 어쩐지 철회할 마음도 들지 않아서. 답지않게 어물거리고 있으니 대답할 질문이 돌아왔다. 그 점에 조금 안도를 느낀다.)
    ....네, 네. 괜찮을 것 같아요. (여전히 목이 아팠지만 연기를 마신 참이니 금방 나을 것은 아니었다. 어지러움도 마찬가지였고. 자꾸 가물거리는 눈을 꾹 감았다 힘주어 뜬다.)
    루시 스타인:(괜찮다는 말에 몸을 일으켰다. 재가 묻고 이리저리 그을린 장갑과 수단을 털고는, 가물거리는 눈이며 아직 힘겹게 깜빡이는 모양새를 보지 않으려는 듯 뒤돌았다.) ...괜찮을것 같아요가 아니라... ......괜찮다는 걸로 알겠습니다. ....사람이 몰렸으니 누구든 도와줄겁니다 자매님. (뒤이어 답지도 않게 구두 소리를 내며 다 타들어간 문짝을 열고는 걸음했다.)
    안나 로즈빌:(방금 불길을 뚫고 구해준 사람이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불퉁하고 차가운 태도로 사라지는 뒤를 멀뚱히 바라본다. 오늘 벌써 두 번째 보는 등에 그저 숨을 내쉴 뿐이었다. 제가 살고 있는 집은 주택가에서 떨어져 있으면서도 성당도 가깝지 않은 곳. 혼자 거리를 둔 집이었다. 성당이 가까운 집이 아닌데, 어떻게? 사람들이 데리고 온 것이 아니라면.....)
    관찰 판정
    안나 로즈빌:

    Spot Hidden

    안나 로즈빌

    보통

    성공
    68vs.80
    당신은 그가 떠난 자리에 다 탄 성냥과 기름이 떨어져 있음을 알아차립니다.
    지능 판정
    안나 로즈빌:

    Intelligence

    안나 로즈빌

    보통

    실패
    83vs.65
    ...불을 지른 사람은 그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SAN (1/1d2)
    안나 로즈빌:

    Sanity

    안나 로즈빌

    보통

    실패
    68vs.55
    rolling 1d2
    (
    1
    )
    =
    1
    이성-1
    그렇다면 왜?
    기껏 죽이려 해놓고, 도대체 왜?
    아, 하지만 이것으로 당신은 정신이 또렷해집니다.
    저 자는 악마야.
    루시 스타인은, 악마야.
    당신을 죽이려 했습니다. 당신이 종이를 보아서? 당신이 무언가를 알아차린 것 같아서?
    문득 당신은 불에 의해 쓰러진 집의 나뭇더미 아래에 어떤 물건이 떨어진 걸 발견합니다.
    칼입니다. 식칼.
    품에 숨길 수 있을 만한 크기와 누군가의 명치에 찔러 넣으면 단박에 숨통을 끊을 만한 날카로움.
    점점 이성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당신의 목숨을 위협당했다는 사실이 정신을 흐트러 놓습니다.
    …...
    머리 속에 안개라도 낀 듯 희뿌연 와중, 불타버린 집을 뒤로 하고 마을 회관으로 이동합니다.
    여분의 이불과 베개를 받았지만 잠이 올 턱이 없습니다.
    정말로 그가? 정말로 당신을 해치려는 목적으로?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회관에 누우면 몇 개 전부 불타지 않은 당신의 물품을 마을 사람이 가져다줍니다.
    위로와 응원을 약하게나마 전달도 하네요.
    문득 짐을 바라보면 처음 보는 것이 있습니다.
    굉장히 오래된 책입니다.
    공책일까요? 수기? 마을 사람에게 책에 대해 물으면 오히려 어리둥절한 낯을 짓습니다.
    ??:“네 것 아니야? 화재로 무너진 집의 박살난 책장 밑에 깔려 있었어.”
    수기를 펼쳐 읽으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지능 판정
    안나 로즈빌:

    Intelligence

    안나 로즈빌

    보통

    성공
    58vs.65
    당신은 이 마을에 전염병이 돌기 시작한 때가 그가 성당에 도착한 날과 동일함을 떠올립니다.
    소름 끼칠 정도로 기막힌 타이밍이었죠.
    ....
    새벽이 무르익지만 잠은 여전히 오지 않습니다.
    애써 눈을 감은 당신의 곁에 인기척이 느껴집니다.
    누구지?
    떨리는 한숨 소리가 들립니다. 어쩐지 익숙합니다.
    수도복이 사락거리는 소리.
    그렇군요. 다시 그입니다.
    뭘 하려는 셈일까요. 가만히 지켜볼까, 싶어지는 순간입니다.
    루시 스타인:...네가 나를 방해해.
    어쩐지 울분에 찬 목소리가 귓가에 내려앉습니다.
    이어서, 당신의 목을 조르는 익숙한 손길.
    숨이 사라집니다.
    근력 롤
    안나 로즈빌:

    Strength

    안나 로즈빌

    보통

    실패
    92vs.50
    검고, 다시 희고, 다시 검은.
    점점 머리의 산소가 없어진다 싶을 즈음에야 손이 겨우 떨어집니다.
    암전된 방의 한구석, 미미한 흐느낌이 귀에 들어오나 싶을 무렵 인기척이 사라졌습니다.
    꿈이었을까요?
    하지만 목에 남아있는 감각만큼은 너무도 선명합니다.
    정말로, 나를, 죽이려 했어.
    끔찍한 기분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습니다.
    고해소
    파란에 물든 새벽이 지나, 날이 밝아 옵니다.
    마을 회관에서 겨우 이불을 덮고 잠에 들었다 언제 깨어났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정말로 말세라며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듯이 성당에 기도를 하러 사라졌습니다.
    집을 잃은 지금으로선 당신도 몸을 위탁할 곳이 회관과 성당밖에 없습니다.
    시간은 미사가 시작되기 30분 전입니다. 딱 이 시간부터 고해소에 그가 자리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와 얼굴을 보지 않고 대화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고해, 고해성사라.
    그렇다면 무엇에 관한?
    저주를 몰고 다니는 주체를 죽이라는 사내의 목소리가 떠오릅니다.
    악마를 죽이라는… 그를 위해 사형을 선고해야 한다던…….
    아,
    그를 죽일 거라는 고해?
    …...
    성당에 도착해 고해소로 향하면 작은 공간이 나옵니다.
    신자가 들어가는 장소에 몸을 욱여넣으니 닫힌 고해창 너머 그의 잠긴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루시 스타인:“고해 성사를 하러 오셨나요?”
    자, 말해보세요. 당신은 무엇을 고백하기로 했었나요?
    그래요,
    바로 그거예요.
    선고입니다. 악마와 마녀를 향한 선고입니다.
    단두대는 분명 당신의 손에 쥐여져 있습니다.
    고해를 위해 선언합니다. 선언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여도 좋습니다.
    안나 로즈빌:(이 마을의 신부는 하나뿐이라 작은 창 너머에 앉아있는 이 역시 오직 하나뿐이다. 닫힌 창 너머로 속삭인다.) ......저를 죽이려는 사람을 죽이려는 것은, 얼마나 큰 죄가 될까요? (마을에 퍼진 전염병 앞에는 하룻밤새 두 번이나 저 손에 오갔던 제 목숨이 있었다. 나는 그렇게 죽을 수 없어. 그리 죽고 싶지는 않아요.)
    루시 스타인:....다시는 돌이킬 수 없겠지요, 자비는 아버지 아래에선 개인의 몫입니다. (누군가가 했던 말을 읊조리듯 대꾸한다. 한참을 말이 없었다.)
    ...자매께서는, 무엇을 고하려 하십니까?
    안나 로즈빌:그렇다면 자비를 행하기에는 아직 제가 부족한 모양인가 보아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말을 이었다.)
    죄는 생각만으로도 죄가 된다 했던가요. 그러나, 제가 정말 행동으로 옮길 때에는 이 곳에 계시지 않을 것 같아서.... 미리 고해드려요, 신부님. (차분하게 말을 맺는다. 당신은 여전히 이유를 말하지 않을까. 답하지 않을까.)
    ........저는 오늘 신부님을 죽이러 왔어요. 신부님께서 어제 제게 행하셨듯이요.
    나는 오늘 당신을 죽일 겁니다.
    이어지는 정적, 고해창 너머에서 침묵만이 흐릅니다.
    그 어떤 대답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날까요.
    그 때, 저 밑까지 아득하게 깔린 목소리가 당신을 붙잡습니다.
    듣기 롤
    안나 로즈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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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나 로즈빌

    보통

    성공
    76vs.80

     당신은 기도문을 중얼거리는 그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Agnus Dei, qui tollis peccata mundi, miserere nobis.
    Agnus Dei, qui tollis peccata mundi, dona nobis pacem.
    외국어 롤
    안나 로즈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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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나 로즈빌

    보통

    성공
    42vs.80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사하시는 주여,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사하시는 주여, 저희에게 평화를 주소서.
    .....
    예배당
    고해소를 빠져나와 성당의 정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무도 없습니다.
    모든 신자석은 텅 빈 상태입니다.
    성당 내부를 살피면 단상 위 제대에 놓인 일기장이 보입니다.
    실수로 떨어트린 듯 구석에 아슬하고 어설프게 나동그라져 있습니다.
    홀린듯 손을 뻗으면,
    펼쳐든 일기장의 안은 그가 이곳에 처음 온 날부터의 기록이 담겨 있었습니다.
    일기장
    xx. xx.
    마녀를 죽여라.
    이것이 내게 부여된 사명이다.
    xx. xx
    뱀의 아버지의 미움을 받은 이들은 이 멸망의 주체로 작용된다.
    그들이 바란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세간은 그들을 ‘마녀’와 ‘악마’라 칭한다.
    xx. xx.
    찾았다. 마녀다. 저런 사람이 정말로 뱀의 저주를 받은 자란 말인가.
    말끔한 얼굴은 내 존재를 반가워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가짜 사제 노릇을 더 잘 해야 하나보다.
    친밀함을 쌓기 위해선 관계의 발전을 도모하고 조금 더 오랜 관찰이 필요할 것 같다.
    xx. xx.
    ‘마녀’란 무엇인가?
    뱀의 저주를 대대로 받은 집안은 그 저주를 받은 사람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한 마을을 궤멸시킬 수가 있다.
    그 사람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단 하나도 눈치 채지 못한 것 같다.
    이유도 모르고 내 손에 의해 죽게 된단 말인가?
    …당혹스러울 따름이다.
    xx. xx.
    어떡하지.
    갈수록 대의를 위해 마녀를 죽이는 일에 망설임이 깃든다.
    홀리기라도 한건지.
    xx. xx.
    정신차려, 루시 스타인.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이건 세상을 구하는 일이야.
    너만이 할 수 있어. 저 사람이 죽지 않으면 온 지구가 멸망할 지도 몰라.
    내 나약함과 잠깐의 동정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들이다.
    xx. xx.
    아, 신이시여.
    난 믿지도 않는 신을 찾는다.
    xx. xx.
    전 그 애를 죽일 수 없어요.
    xx. xx.
    전 그 애를 죽일 수 없어요.
    xx. xx.
    내 일기장을 본 박사님이 불같이 화를 냈다.
    나약한 소리만 할 거라면 무엇하러 이곳에 왔냐고. 신음하는 환자들이 보이지 않냐고.
    전염병에 쓰러진 시체가 보이지 않냐고.
    xx. xx.
    방해물이 뭐냐 물으셨습니까.
    그건 내 흔들림이다.
    xx. xx.
    오늘 그 애의 집에 불을 질렀다.
    견디지 못하고 결국 꺼내 오고 말았다.
    난 오늘도 믿지도 않는 신을 찾았다.
    xx. xx.
    그래.
    이젠 정말 해내야 한다. 이곳은 막다른 길이다.
    마을 사람들의 공포가 증폭되었다. 그 애를 내가 끝내지 않으면 이곳은 돌이킬 수 없게 된다.
    그 애가 마지막 저주를 받은 자니까, 그 애만 없으면,
    그 애가 없으면,
    그 애가 없다면…
    로즈빌, 안나...
    SAN (1d2/1d4+1)
    안나 로즈빌:r/ 1d4
    rolling 1d4
    (
    1
    )
    =
    1
    이성-2
    하느님의 어린 양,
    세상의 죄를 사하시는 주여,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하느님의 어린 양,
    세상의 죄를 사하시는 주여,
    저희에게 평화를 주소서.
    ......
    너무나도 확실한 단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강타합니다.
    내가 악마야.
    로즈빌, 안나, 바로 당신이 악마입니다.
    이 모든 전염병을 일으킨 장본인. 뱀의 저주를 받은 사람. 마을을 멸망시키는 자.
    아, 그래요,
    당신이 마녀입니다.
    제단 앞에 서 있는 당신이 등을 돌리면…
    스테인드 글라스의 빛과 성당 문 입구에서 뿜어져나오는 모든 빛을 온몸으로 받고 서 있는 그가 충격으로 점철된 눈으로 당신을 봅니다.
    당신과, 당신이 들고 있는 일기장을.
    관찰 판정
    안나 로즈빌:

    Spot Hidden

    안나 로즈빌

    보통

    성공
    58vs.80
    그의 손에 칼이 쥐여져 있음을 깨닫습니다.
    어떤가요? 자신이 죽어야 세상이 구원 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기분은?
    어떤가요. 눈앞에 떨어진 당신의 운명을 마주하게 된 기분은?
    모든 사실을 당신이 알았다는 것을 깨달은 그가 전부 내려놓은 얼굴로 웃습니다.
    어설프게 끝이 말린 미소로 당신에게 고해합니다. 사형 선고입니다.
    나는 오늘 당신을 죽일 것이라고.
    이제 단두대는 그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루시 스타인:고해실에서 이야기 한 것은 대부분 번복하지 않더군요, ....그렇죠? (주춤거리며 뒷걸음질 치는것도 잠시, 제단 위에 널부러진 일기장을 손으로 쓸었다. 어느새 조금 자욱해진 먼지가 흩날리는 것을 보며 입꼬리를 내렸다.) 자매님이 말씀하셨지요, 자비를 베풀만큼의 선택은 할 수 없다고. 그게 자매님의 고해였잖아요.
    ...번복하실 생각은 아니길 바랍니다.
    안나 로즈빌:가짜 신부에게 말한 고해도 고해로 치시나 보네요, 신부님은.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데. 울기라도 해야 해? 괴로워하기라도? 눈 앞에 칼을 든 인영을 마른 눈으로 본다. 저를 죽이지 못하겠다고 우는 소리를 잔뜩 써 놓은 일기장으로 시선을 옮긴다.)
    .......제가 번복하지 않기를 바라시나요? 신부님이 어제의 행동을 바꿀 생각이 없으시듯이?
    루시 스타인:...당신에게 말했던 내 고해는 진심이었는걸요. (일기장에 놓인 바싹 마른 시선을 본다. 네 눈동자는 다 해묵은 종이더미를 좇고 내 시선은 증오스럽다 못해 정이 들은 익숙한 갈색의 끝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미... 번복했어.
    (이제 와서 번복된 고해를 다시 할 만큼 용기가 가상한 편은 아니였다. 애초에 그럴 이라면 이 곳까지 떨어질 일도 없지 않을까. 날이 퍼렇게 물들어 빛나는 칼의 손잡이를 꾹 쥐었다. 목숨의 무게 치고는 언제나 가볍다고 생각해 왔다.)
    사정이 있더라도 이전처럼 되돌아갈 수 없을것 같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래서... (이 이상 말을 이어도 의미가 없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지막 질문은 침묵으로 이어졌다. 고해실의 적막한 공기처럼.) ....이건 당신거예요.
    (쥐고 있던 칼의 손잡이를 내밀었다. 예배당의 공기는 고해실보단 퍽 가볍지 싶었다.)
    안나 로즈빌:내가 당신을 죽였으면 해요? 겨우 그런 식으로 도망치고 싶어요? (내밀어진 칼의 손잡이를 잡지 않았다. 당신 뜻대로 놔두기엔 내 성정이 그리 유순하지도 곱지도 않다.) 냉정하게 말한다고 밉게 듣지 마세요, 신부님. 저한테는 딱히 당신과 돌아갈 예전은 없어요. 우리는 친구가 아니었잖아요. 그렇죠? (당신한테 내가 친구가 아니었듯이. 나에게 당신은.......)
    겨우 당신 하나를 죽인다고 끝나는 문제는 아닐 거잖아요. 나도 모르는 내 핏줄을 찾느라 얼마나 고생했을까. (웃었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주제에 하나 물려준다는 게 겨우 이딴 거다.)
    루시 스타인:알잖아요, 나 원래 도망 잘 치는거. 회피하지 말라면서? 원래부터 그랬어요, 아주 옛날부터... (그럼 뭐 숨기라도 할까. 마녀와 숨어봤자 그 끝엔 대체 뭐가 오겠어? 뭐가 남겠어?주인을 꼭 닮아 부질없는 망상들이다.)
    내가 당신을 죽이면, 그건 좋은 방법인가요?
    당신이 그걸 원하긴 하나요 로즈빌?
    애초에, ..... (빠르게 말을 이어가다 숨을 들이켰다. 익숙한 시큰함이 눈 언저리까지 올라와 성가셨다. 여태 참아온 열기를 전부 토해낼 기세이기라도 한건지, 상황에 맞추어 참 가증스럽기 짝이 없다고 생각하며 삼켜냈다.)
    내가, 당신을 어떻게 죽여요, 해봤잖아요, 전부 봤잖아요.
    나는 그게 전부라서 이제 못하겠다고.
    루시 스타인:나 하나를 죽인다고 끝날 문제는 아니죠, 하지만 적어도 며칠은, 아니.... 당신은 도망칠 수 있잖아요, 그냥 나 좀...
    .....도망갈 수 있게 해줘요 로즈빌. 나는 신부도 뭣도 아닌걸 알잖아요. (끝에 이르러서는 거의 무너지듯 하는 목소리를 억지로 단단히 굳혔다.)
    우리는 친구가 아니잖아요, 정말 당신한테 내가 뭐라고, 그냥... 그만하겠다는데.
    안나 로즈빌:생각이, 조금 바뀌었어요. 그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요. 당신 하나가 날 못 죽였다고 포기할 것 같지 않은걸. 어떻게든 찾아내서 어떻게든 죽이러 올 거 아녜요? 죽어야 하는 사람이니까. 이 모든게 내가 태어나서고, 나는 세상에 하등 도움이 될 게 없으니까. (무감하게 말을 잇는 눈이 조금 붉어진 것도 같았다. 눈 앞 가짜 신부의 눈가처럼. 마른 웃음을 터트린다.)
    정말 나를 사랑했어요? 어쩌다가? 왜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했어요.
    루시 스타인:(이어지는 말에 붉어지는 눈가는 제 것이 아닌데, 날붙이로 깊숙한 속을 후비다 못해 짙눌러 으깨놓는 말들이었다. 귓전을 때리는 웃음이 마르다 못해 부숴지는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착각일까. 연속되는 질문은 우습게도 명확했다. 몰라,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달싹이는 입술을 한번 깨물고는 대꾸했다.) ....누구나 실수를 해요.
    ....그리고 실수는 원해서 저지르지 않잖아. ...누구나.
    (마녀는 잔혹하기 짝이 없다던, 잠깐이나마 위선을 떨며 동네의 아이들에게 읽어주었던 동화 몇개가 스쳐갔다. 정말 그래, 잔혹하고 자비없기 짝이 없었다. 나는 멍청하고, 마녀의 꾀임에 넘어가는 이들이 전부 그렇듯이.)
    당신은 실수하지 않을거잖아요, 당신은 그런 바보같은 짓 할 일 없을테니까 괜찮잖아. 내가 그래도 당신은 아니니까, 이런 멍청한 짓 할 생각도 없어보이니까. 그러니까 그만하자고.
    안나 로즈빌:.....제가 아주 잔인한 사람이 된 기분이네요. (가련할 만큼 떨리는 몸과 잇자국이 날 만큼 깨물린 입술을 본다. 나를 사랑하게 된 일이 실수라는 말을 듣는다.)
    ...제 잘못은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에요. 태어난 것도 잘못인가요? 나도 모르는 어미가, 아니면 그 아비가. 그 핏줄이 오랜 저주를 받아서 전염병이 일어난 게 제 탓인가요? 제가 살아가는 일은 정당하지 못하고 당신이 나를 죽이는 일은 정당한가요? 당신이 나를 상처입힌 일은 대의를 위해서이고, 내가 당신을 상처입히는 일은 저주받은 마녀라서? 내가 여기서 당신을 죽인다고 해도 마녀니까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대답을 기다리는 듯 입을 다물었으나 돌아오는 말이 무엇일지는 알겠다. 그저 고집스럽게 그만하자는 말뿐이겠지. 나를 재단하고 도망하고 회피하는 말뿐이겠지. 무겁고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죽고 싶어하는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아요. 그저 회피하고 편해지고 싶어하는 사람을 편하게 해주고 싶지 않아요.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지 않아.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서 당신을 도망가게 해주고 싶지도 않고요. 당신이 뭘 잘했다고 내가 그런 상을 줘야 하나요. 어때요, 지금은. 이런 사람이라서 실망했나요?
    (그러나 나를 죽이려는 이 사람이 세상에서 나를 유일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겠지. 이 또한 우스운 일이다. 재난 앞에서 사람은 쉽게 비이성적이게 되고 쉬운 길을 찾는다. 연고 없는 여자 하나 죽여서 희망이 생긴다면 누가 주저하겠어. 제 손을 쓰지 않더라도 그 사실만 흘리면 사람들에게 돌로 맞아 죽을지도 모르는 마당에, 저를 죽이고서 도망치라고 말하는. 어젯밤 저를 태워 죽이고 목졸라 죽이려던 이를 본다. 나를 사랑해서 죽일 수가 없었노라 고해하는 사람을 본다.)
    그러니 신부님. 하셔야 하는 대로 저를 죽이시던지. (그렇다면 당신은 평생 나를 생각하겠지. 평화를 얻는 대신 평생 행복하지 못하겠지. 내 목숨값이 오롯한 당신 삶이라면 그도 꽤 무거운 것이 아닌가. 당신에게 그만한 낙인이 어디 있겠어.)
    .....세상을 죽이세요. (그만한 죄책감이 아니고서야.)
    루시 스타인:......당신은 잔인해요. (처음 내뱉을 수 있는 말은 그것 뿐이였다. 그리고? 두번째로 입을 열기까지엔 아주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더도 덜도 말고, 딱 제 손에 쥔 칼의 손잡이를 다시 돌릴만큼. 칼이 바닥에 형편없이 널부러질만큼.)
    ...나는 멍청하고. (날붙이가 대리석에 부딪히는 소리는 제 생각보다 훨씬 듣기 괴로웠다. 날카롭게 째지는 소리가 예배당에 울려퍼지고, 우스울 만큼 화려한 창의 빛이 산란하여 그 위를 비췄다. 지금 저 선택을 비웃기라도 하 듯이, 꼴을 좀 보란 듯이.)
    안타깝게도, 다들 그렇게 말해요. 내가 평생 배워온 것 들도 그렇게 말했어요. 당신은 마녀라 괜찮을거고, 난 욕심을 좀 부려도 된다고, ....쥐고 있는게 뭐든 버려도 된다고 말하더군요.
    ....그런데 난 버리는게 힘들어요. (어릴때부터 그랬어. 제가 손에 쥔것이 검던, 희던, 쥐어서 오롯이 가져 본 것이 손에 꼽는 이는 무언가를 쥐게되면, 얻게되면 놓는 법을 몰랐다. 저는 부질없는 것에 늘 관심이 갔다.
    루시 스타인:당신은 제 인생이, 남은 삶이 부질없다 말하는 이라, 그래서....) 당신이 괜찮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나일리는 없으니 당신이 뭘 하던 괜찮다고 말해주는 삶을 함께하는 이가 있었으면, 아니, 그냥 당신 자체가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됐으면 좋겠다고,
    (나는 부질없는 것들만 골라서 아끼게 되니까, 놓는 법을 모르니까. 그렇다면 차라리.)....그렇게 살아갔으면 해요 나는.
    (어떻게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전부 다 깎아내리는 이가 어떻게 눈에 들지 않을 수 있었을까. 저에게 실망했느냐고 묻는 질문에 어떻게 그렇노라고 답할 수 있을까? 잔혹하면서 간악하지는 못하는 이를, 어떻게.)
    ....내가, 어떻게 당신에게 실망하겠어요. 이렇게 신실한데. (그래, 이것은 신앙이다. 완벽에 머물지 못한 것들이 얼기설기 기워져 형태나마 갖추지 못한 부정의 산물이다. 묵주가 익숙한 잘그락 소리를 냈다. 미약한 힘을 주니 속절없이 뜯겨져 알갱이가 형편없이 바닥을 뒹군다.)
    루시 스타인:
    못해요 나는, ....가르쳐줘요, (정말 마녀와 떠나기라도 하란 소리인가. 마녀는 공주를 사랑하지도 않을텐데. 그 끝을 그리는 동화는 아무데도 없는데.)
    안나 로즈빌:나한테 뭘 하든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없어요.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거예요. 무의미한 희망을 갖지 마세요, 신부님. (하지만 살아줬으면 한다는 사람은 있네요. 어제까지 나를 죽이려던 사람이 내가 살아줬으면 한다고 하네요, 신부님. 곱씹을수록 제 안의 모든 것이 산산이 녹고 깨어져서 뭐가 뭔 지 알 수가 없다. 세상에서 가장 나쁜 꿈을 꾸고 있는 기분이었다. 깨어날 수 없는 꿈이라면 나는 이미 반쯤은 죽은 셈이지 않나.)
    .....다시 나를 죽일 수 없다면 나랑 떠날 수는 있겠어요? 그 잔인한 사람한테 끊임없이 상처받게 될 텐데? 내가 있는 곳마다 세상이 망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할 텐데? (악마의 본분은 사람을 홀리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나는 제 할일을 퍽 잘 해낸 셈이지. 그런데 그거 알아? 당신이 나를 악마로 만들었어. 나를 죽이지 못해서. 제 감정에 흔들리고, 그 흔들림에 어설프게 굴어서. 내 삶을 송두리째 잡아다 패대기쳐 놨다고.)
    그래서 결국 당신까지 죽게 된다면. (그렇다면. 말을 멈추고 뜯긴 묵주를 본다. 예배당 바닥을 흐르는 묵주알은 이제 그저 작은 구슬일 뿐이다. 남은 십자가는 더 이상 성스럽지 않다. 그러나 이렇게 맹목적인 흔들림이라면, 이것은 거의 신앙에 가깝지 않은가. 우리를 구하고자 십자가에 매달린 주님 앞에서 불경스러운 생각을 한다. 지금의 내게 가장 적합할 생각을.)
    ..............그때 가서 생각해 볼게요. 어떻게 하는 게 옳았을지. (팔을 잡는다. 손이 타고 올라가 볼을 감싼다. 선이 고운 얼굴은 피부도 딱 그만큼 부드러워서. 하루 종일 약품을 만지느라 딱딱해진 손끝으로 눈썹을 쓸고 조금 웃는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지. 하지만 당신에게 사랑받고 있을 수는 있어. 아무래도 마녀와 악마는 딱 그 정도의 자비를 갖추고 있나 봐.)
    딱 한 번만 다시 말할게요, 신부님. 하신다면 반항하지 않을 거예요. 저를 죽이고 세상을 구하시겠어요? (귓가에 대고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루시 스타인:(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잖아. 쓰디 쓴 말을 입으로 삼키니 그 끝이 달았다. 며칠 내내 머리 속을 맴돌던 고민은 이리 간단히 해답을 찾는다. 쓴것의 끝은 달다. 선악과의 껍질은 쓰되, 그 허물이 녹아내리고 담은 과실은 달다못해 문드러질만큼. 뱀은 이렇게 그녀를 꾀었나, 그녀는 뱀이 아닌, 처음 맛 본 달콤함을 놓지 못하는 미련한 이였나. 알알이 흩어져 흰 대리석의 위를 수놓는 묵주와 의미를 잃어버린 날이 선 출구 하나가 스테인드 글라스의 찬란한 빛을 받아 눈이 부셨다. 잘게 부숴져 퍼뜨려진 빛들은 형체를 잃고 결국 그 끝은 우리를, 불완전한 것들을 내려보는 십자가 밑의 그늘, 신이 있다면 바닥 저 깊은 곳에, 아주 낮은 곳에서부터 있으리라.)
    .....내가 그렇게 할게요, 당신이 날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할게요, 그러면 괜찮아요... 당신은 계속 괜찮을거예요. (저보다 조금은 축축한, 서늘하고 딱딱한 살결이 제 볼가를 흝는다. 눈썹을 덧그리고, 눈가를 지나, 달콤한 과실을 내민다. 뱀이 똬리를 틀 듯이, 숨이 막히게.)
    나는, .....도망치는것 하나는 잘 했으니까. (이는 두려움의 눈물이 아닌 탄성에 가까운 기쁨을 뜻하겠지. 다시 달아오르는 눈가를 막을 새도 없이 제 볼가에 자리한 손을 끌어 손등에 입을 맞추고, 묵주가 자리했을 흰 목에 스스로 감아주었다. 떠나간 그 곳은 그려지진 않지만, 그렇기에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분명한 신앙이겠지, 그러니 대답할 말은 하나이다. 부디-
    말을 이어가는 입꼬리가 말리고, 또다시 익숙하게 눈이 휘었다. 신이시여,)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
    ------------------------
    칼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 그것으로 직감합니다.
    그가 당신을 죽일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는 실패했습니다.
    세계보다 당신이 더 소중해서, 그래서.
    어쩔까요? 같이 죽을까요?
    같이 죽을 수나 있을까요?
    그가 당신을 봅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마치 그리 묻는 것만 같은 눈빛입니다.
    도망이라도 칠까?
    그가 묻습니다.
    아니면 같이 죽기라도 할까?
    질문의 무게가 너무 무겁습니다.
    그래, 아무렴 어떻겠어요. 어쩐지 허탈한 기분이 듭니다.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요, 이렇게 된 거.
    서로가 서로를 무너뜨리는 존재가 되었음을 자각하게 된 거.
    이대로 마을을 영영 떠나도 좋겠습니다. 정말로 세상을 멸망시킬 수도 있겠습니다.
    아니면 아예 사라지는 수도 있겠습니다. 운명을 함께하는 방법도 있겠습니다.
    색색의 유리 조각들이 통과시킨 빛이 시야를 어지럽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 아래에서도 똑바로 보이는 자는 단 한 명,
    루시 스타인. 루시.
    그가 당신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시선을 마주했던 것 같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그리고 이곳에 있는 것은 가짜 신의 사자와 칼, 제단,
    도망칠 길,
    그리고 악마.
    오, 나의 마녀.
    메리 배드 엔딩.
    END 5. 자비를 베푸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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