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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니콜-들불 속의 연약카테고리 없음 2020. 10. 22. 21:42
https://919mhz.postype.com/post/4948311
(원문 시나리오)
아주 영혼을 갈아넣은 세션카드...
대충 보시면 티가 나겠지만 들불연은 제 존버시나리오였답니다
너무 궁금했고, kpc로던 pc로던 꼭 가고 싶어서 작년부터 존버 했는데 역시 갈 날이 오는군요...
이 시날은 오리지널 캐릭터로 즐기고 싶어서 길 가던 닭발님에게 함가세션수준으로 다짜고짜 갈겼지만..
감사하게도 흔쾌히 응해주셔서 둘 다 오리캐를 짜서 가게 되었습니다.
백스토리 설정도 열심히 하고 완전 씹뜯맛즐 다 하고 왔네요 고마워 닭발...
오리지널 캐릭터인 만큼 설명도 추가해 놓습니다...
KPC-이브 샤를로테 (황후)
PC- 니콜 지슐러 (호위기사)↓백스토리 설정 (굉장히 길어서 조정중 나눴던 대화로 정리합니다...)
드래그 하시면 더보기로 보입니당
※이 밑으로는 시나리오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치 않으시는 분들은 주의해주시길 바랍니다.※
-------------------------[들불 속의 연약]-------------------------늦은 밤, 풀벌레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황궁입니다.모두 잠든 시각이라 드문드문 순찰하는 근위병들, 늦게까지 일하는 주방 하인 등을 제외하면 사람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렵죠.그녀와 당신은 궁내 성당 근처를 거닐고 있었습니다.최근 황후는 잠들었다가도 소리를 지르며 깨어나고, 종일토록 불안해하거나 공식 석상에 나가기를 거절하는 등 굉장히 날카로운 상태였습니다.그럴 법도 하죠.이 구중에 갇혀 무시당한 것도 벌써 몇 년, 황후로서 연회 등에 나서더라도 벽의 꽃보다 못한 취급을 받은지 오래입니다.황제조차 그녀를 무시하며 폭언하기 일쑤죠. 누구라도 쉽게 견디기 어려운 일일 겁니다.적막만이 감돌고 잠잠한 발소리만으로 이루어진 공간, 드물게 그녀가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먼저 입을 엽니다.이브 샤를로테:".....경과 산책하는건 오랜만인 것 같네요, 그렇지 않나요?"니콜 지슐러:"...공석 등으로 제법 바빴으니까요. 근래에는 괜찮으신지요, 이브."이브 샤를로테:(밤 바람이 쌀쌀한 듯 몸을 조금 움츠렸다가 익숙한 호칭에 고개를 들어올렸다. 눈을 두어번 깜빡이곤 알겠다는 듯 작게 웃어보였다.) "...정확히는 제가 아니라 경이 바쁘셨지요. 제가 이 황후궁을 나갈 일이 있었습니까? ....오히려 궁의 위치를 잘 아는 것은 너일지도 모르겠어, 니콜."니콜 지슐러:(불쌍한 여자. 조곤조곤 흘러드는 목소리를 곱씹다보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과 말이었다. 물론 소리로 뱉어내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지. 그저 나긋하게 눈꺼풀을 접고 웃어 보일뿐.) "제가 할 일이라곤 그저 이브, 당신을 보필하는 것뿐이지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걸음하고 싶은 곳이라도 있습니까? 모처럼이니까요."이브 샤를로테:(시간은 헛으로 쌓이는 것이 아니었다. 이 새장같은 황후궁에 들어앉아 무료하게 서책을 뒤적거리는 시간에도 후원의 장미는 시들어갔고 원하지 않아도 소문과 예의 그 황후로서의 지식은 쌓였다. 그러니 너는 어떻겠는가.니콜 지슐러 본인은 알고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녀의 저를 향한 미소는 언제나 반 박자 정도 느렸다. 아주 어릴때부터.)"모처럼이라니, 우스운 말을 하는군요 경."(네가 먼저 그리운 호칭으로 물꼬를 틀었으니 같잖은 장난질은 그만두기로 하였다. 느릿하게 걸음을 맞춰오는 것에 부러 빠르게 발을 움직이다 뒤를 돌았다.)"난 언제나, 어디던 갈 수 있어 니콜. 황후궁이 존재하는 이 곳에서는." (사실 딱히 가고 싶은 곳은 없었다. 그녀와 밤길을 걷는 것 만으로도 꽤 만족스러웠기에. 그러나 공연히 예민함을 숨기지도 않고 뱉어냈다. 익숙할테니까.)이브 샤를로테:".....농담좀 해 봤어. 요즘은 유독 몸이 약해 너무 멀리 나가기는 힘들거든, 네 탓이야. 남의 무른 부분을 건드렸잖니."니콜 지슐러:(그다지 눈여겨 보지 않았기에 나 또한 행위 전반에 의미를 두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마음에 두지 않았다. 나의 미소가 어떠했든, 너의 반응이 어떠했든. 한 가지 구태여 곱씹는 게 있다면 네가 나의 무엇을 원하는지다. 그리하여 비로소 내가 원하는 것을 추려낼 수 있었기에. 만개했던 과거에도, 시들어버린 지금도. 그 뿌리가 검게 썩을 때까지도.) "이런, 모처럼이 아니었나요.""경외하는 황후. ...이브, 당신과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는 건 제법 오랜만이라 생각했는데. 매일 지겹도록 걸음하는 공간이라도 지금만큼은 꼭 부는 바람의 온도가 다를 줄 알았습니다."(마음에도 없는 말을 쉬이도 내뱉는다 싶었다. 저도 악다구니로만 이를 악물던 아이에서 꽤 자랐다지.) "무리하실 필요는 없지요, 이브. 걸음이 어디에서 다하던, 당신 곁에 머물 것은 변함 없습니다."이브 샤를로테:(꽤나 속이 검은 짐승으로 자랐어 너는. 그런건 누가 가르쳐 준거니? 기름칠이라도 한 듯 부드럽게 나오는 말들에 속으로 실례일 생각을 내뱉으며 저보다 한뼘은 큰 것의 옆으로 다가갔다. 앙상한 손을 들어 뺨을 어루만졌다. 시선을 피하지 않고 바라만 봤다. 아닌가, 원래부터 검었던가 너는.)"...말이라도 고맙군요."(창백할 정도로 흰 피부를 느릿하게 쓰다듬으며 입을 다물었다. 두어번 숨을 내쉬고는 곱게 웃어보였다.)"나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경과 걸으면 꼭... 겨울이 온 것 같았거든요, 내가 공작가의 흰 정원을 좋아했던건 알고 있겠지요?"(그렇게 생각했다. 그랬었다. 눈을 또렷이 뜨고는 되물었다.)이브 샤를로테:"다를줄 알았다고 했던가요, 지금은 어떤가요 니콜? 그대도 이 곳이 공작가의 정원처럼 느껴지나요? 지금, 기쁜가요? ....왜 자주 오지 않았어? 이 곳의 밤은 길고, 외롭다고 했잖아."(느릿한 선율을 타듯 움직이던 손길은 볼가를 힘없이 틀어쥐었다.)".... 경외라, 그렇다면 더 자주 나를 봤어야지, 이 곳에서 내가 누구에게 기대겠어? 요즘 상태가 안좋아.내일이라도 나는 콱 죽어버릴 것 만 같다고."니콜 지슐러:"...어디 말뿐일까요." (말뿐이지. 스스로에게 비아냥거렸다. 살이 떨리고 뼈가 아플 자충수는 아니었다. 알고 있기에, 인지하고 있기에 당연토록 흘려뱉을 수 있는 조소였다. 네가 지척에 와 닿을 무렵까지도 잠자코 몸을 세워 침묵을 유지했다. 미동하지 않았다. 시선을 비스듬히 굴려 떨어뜨려 온전히 네게 내어주었다. 불쌍한 여자. 재차 되뇌며.)"좋아하셨죠. 때 묻지 않은 눈부신 광경이었어요. 글쎄요, 지금이라..." (방금은 나른하게 울리는 소리에 원망이 배었을까. 눈을 더욱 구석으로 굴려 손길을 쫓았다. 당신은 나를 원망해? 틈 없이 당신의 곁에 머무르지 않은 나를 원망해? 말뿐인 나를 저주할까?)(결국 답은 고요한 미소다. 그 즈음 눈살을 다소 어그러뜨려 퍽 너를 가엾게 바라보았다. 그게 한편으로는 미안한 시늉쯤 되었을까. 삐걱거리는 팔을 들어 올려 네 다소곳한 손등 위로 투박한 저를 얹어 쥐었다.) "꽃 한 송이 아름답지 못한 궁에 당신을 홀로 내버려둔 까닭입니까? 이런... 부디 시들지 말아주세요, 이브.저는 당신의 끝을 보러 함께 걸음한 게 아닌 걸요. 당신을 지키기 위해 왔으니까요. 그렇기에 함께 하고자 했으니까요....부디 그런 말은 삼켜주세요, 이브."(네가 죽으면 될 것도 안 돼. 곤란하게 하지 마.)이브 샤를로테:(손 위에 쥐여진 것을 움켜쥐었다, 다시 풀어내기를 반복했다. 서너번을 하고 나니 파도가 치듯 불안했던 감정도 갈무리 되었다.)"경은 참... ....좋은 어른으로 자랐어요."(꽤 뜬금없는 말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틀린 말도 아니지.너를 표현해 낼 문장이라곤 그것 하나 뿐이다. 공작가의 여식으로 태어나 나비며 벌이며 온갖 해충이 모여드는 이 곳 황궁에서도 진절머리 나게 봐온 것들. 나같은 이들.말뿐인 것 들. 그녀는 좋은 어른이다, 속내를 내보이는 법이 없으니까.)이브 샤를로테:"...칭찬이랍니다. 제가 장난이 과했군요." (나 역시 '좋은' 어른이지, 그와 동시에 나쁜 아이 이기도 했다. 네 앞에선 그러기로 했다, 어른의 앞에선 아이의 모습이 편하지 않은가?)"...경, 잠시 손을 다시 내밀어 보겠어요?" (할 말이 많았으나 전부 눌러내었다. 가식적인 말에 굳이 농을 칠 필요를 못느꼈으니까. 하나는 진짜겠지만, 내가 죽으면 네가 지을 표정이야 훤하지 않겠어? 빠르게 속으로 되뇌이며 품 안에서 청록의 브로치 하나를 꺼냈다. 붉은 머리칼과는 어울리지 않았던 색.)"받아요, 네거니까 니콜." (습관적으로 눈을 흝었다. 혹시나 웃고있을까 싶어서.)니콜 지슐러:"그런가요."(퍽 건조한 대답. 이후로는 눈꺼풀을 느리게 깜빡이는 데에만 신경을 쏟았다. 풀벌레 소리가 쏟아든다. 싫지 않았다. 적어도 신경질적으로 속풀이를 해야만, 그 가끔의 발악만이 호흡이 되는 너를 가엾게 구경하는 것보다는 훨 나았지. 원래 망중한의 때가 더욱 아름다운 법이라고.)(그리고 재차 생각했다. 그게 내가 살아가는 법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이런 세상에서, 이런 땅에서, 여성인 내가 두 발 당당히 디딘 채 원하는 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래서 웃었다. 지금은 조금 더 다정히. 제법 즐거운 듯이. 꾸밈새는 아니었다. 숱한 역함을 등 뒤로 내버리고 겨우 황후의 자리에 앉은 네 곁으로 온 나를 돌아보자니 비실비실 웃음이 샐 뿐이다.) "...손, 말입니까?"니콜 지슐러:(천천히 네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곧 위로 얹히는 청록의 브로치를 저도 모르게 얼빠진 표정으로 멀뚱멀뚱 내려다본다. 어쩌면 네게는 신선한 낯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즈음 네게서 무언가를 받을 거라곤 상상하지 않았다.) "언제 이런 걸..."이브 샤를로테:"마음에 들어?"(이건 꽤 신선한 낯이네. 살풋 웃어보이고는 고아한 척 손으로 입을 가렸다. 눈을 깜빡이며 손 위에 놓인 흔하디 흔한 것을 진귀한 것이라도 받은 양 바라보는 꼴이 우습기도 하고, 아니, 사실 조금 속이 쓰린것도 같다. ....생각을 그만두고 흘러 내리는 제 머리칼을 꼬았다. 황후의 몸가짐으로는 영 아니긴 했으나, 누가 뭐라 할 것인가. 이 곳에서, 네 앞에서, 내 앞에서도.)"...준비한 것이 아니랍니다. 선물치곤 너무 초라하고 빈약한가요? 하지만... ...주고 싶었어요, 나도 모르겠어, 밤중에 오랜만에 본 경의 눈이 그 보석과 닮은 탓이라고 생각해주시길." (초라하고 빈약한. 티나지 않게 힘을 주어 문장을 강조하고는 가늘게 눈을 뜨고 바라보았다. 그 브로치는 황제가 내게 준 것이다. 그의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곤 온통 싸구려였지만 네게는 아니겠지. 꼴에 황제라고 저 보석은 아마 평생 구경도 못할 만큼의 금화와 무게가 같을 것이다. 그러니까, 진귀하면서도 초라한. 그러니.)"경의 말마따나 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이에게 보답이랍니다. 공작가의 흰 정원에서부터, 가을의 장미정원까지. 경은 내게 과분한 이니까. ....어울리네요." (나를 봐, 더 주의깊게 바라보고, 시선을 돌리지마. 같잖은 동정심이라도 좋아. 네 유일한 길이라고, 앞으로도.)니콜 지슐러:"... ..." (막연히 입을 다물었다. 어쩐지 네 앞으로 내민 손이 점차 무겁게 가라앉는 듯하다. 비단 브로치를 장식한 보석의 값어치 때문은 아닐 테다. 한동안 그것을 멀뚱히 내려다 보았다. 저가 품고 있어도 좋았을 걸 구태여 내게 건넨 의미를 모르진 않았다. 거듭 되뇌지만 나는 알고 있었고, 여태 그 감정을 이용해오지 않았나. 다만.)"...이브. 당신이 보잘것없는 제게 주는 선물에 감히 초라함과 빈약함의 정도가 있을까요. ...부디 빈말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려주었으면 좋겠군요."(그마저도 가여워보였다. 누구에게 무엇을 받던 마음도, 의미도 없이 붕 떠버리는 이질적인 것들. 결국 세속적 물질로 내게 되돌아오기까지의 경위를 제멋대로 곱씹다보면 감상은 매번 같았다. 가여운 것. 불쌍한 것. 그리고 다시 브로치다. 정녕 이런 장신구 따위를 제 몸에 걸쳐본 적이 없어 한참이나 브로치를 낯선 물건인 양 쳐다만 볼 수밖에 없었다.)"무려 황후의 곁에 멋대로 머무는 충견도 있지 않습니까. 제가 듣기에는 마냥 속 쓰린 비아냥만 같습니다, 이브. ...참."니콜 지슐러:(이런 걸 원해? 조용히 브로치를 네 앞으로 돌려준다.)"어디에,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모르겠군요. 애석하게도. ...그대가 알려주시겠습니까?"이브 샤를로테:"이런, 나는 경을 꽤 주의깊게 살핀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보죠?" (조심스레 이어지는 손짓과 눈 앞에서 땅이 꺼져도 그대로일 담담한 말씨에 속이 다시 비틀렸다. 그 비틀림 마저도 익숙한 혐오라 저 역시 잠자코 손가락으로 브로치를 집어드는 것으로 대신했다.)"기억력이 이리 나빠서야. 내가 어릴적 그대를 조금 더 귀찮게 할 걸 그랬나봐요." (브로치를 든 손은 상대의 무감함에 맞추어 가듯 얇은 회색결의 머리칼을 쓸었다. 남은 손가락들은 귀한 것이라도 만지듯 초가을 추위에 붉어지기 시작하는 귀를 어루만지고, 이내 머리칼을 뒤로 넘기며 사라졌다.)"이리 자주 장식하지 않았던가요, 정원의 꽃이 참 예뻤잖아요, 보석이라고 무에 다르겠나요."(비죽이며 정말 답지도 않게 어린 아이라도 된 듯 웃음이 샜다. 마음에 안들어. 다시 무감하게 돌아간 표정도, 그 어색함과 감탄과, 사랑스러운 동정조차 마음에 들지 않아 미칠 것 같았다. 손은 다시 제복 위의 가슴께를 타고, 단추 옆 적절한 구석에 자리 잡았다. 브로치의 핀이 둔탁한 소리를 내고는 저도 이 절절 끓는 교만을 끊어내기로 하였다.)이브 샤를로테:"하지만 지금의 그대에겐 이 곳이 어울리겠지요. 명색이 황후의 충견 아닙니까, 누가 그대를 비웃기라도 하면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할테니까요. ...날이 춥고 질리지도 않게 몸이 상하는 것 같군요. 날 이제 침실로 데려다 주겠어요 경?"니콜 지슐러:"워낙 다사다난했다 둘러댄다면 용서해주시겠습니까? 어쩌면 그저 당신의 손길 한 번이나 은연중에 탈 수 있는 기회를 주제도 모르고 넘봤을 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스스로 말하기에는 다소 부끄럽지만요."(묵묵히 네 손길에 저를 내었다. 한 번은 살그마니 고개를 기울여 네 손아귀에 차게 식어가는 뺨을 부벼도 볼까 했지만 내키지 않아 그만두기로 했다. 송장만 같은 손길이 못내 신경 쓰여 이따금 감아내린 눈꺼풀을 잘게 떨었다. 동정, 그 너머에는 소량의 불쾌가 배었을 지도 모른다. 무엇이 너를 죽여가는지 안다. 허나 겁도 없이 그것의 목을 베어내 네 손을 잡고 도망칠 멋드러진 로맨스는 없다. 그렇기에 방관했다. 네가 죽어봐야 좋을 것 하나 없음에도 그랬다. 곤란하지. 너를 있는 힘껏 사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쥘 수 없는 내 처지가 되려 너보다 곱절은 불쌍할 때가 있다. 가여운 나. 불쌍한 여자!)"모든 게 낯설기만 한 아이에 불과했죠. 당신과 시선을 반듯하게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꼭 죄 지은 사람처럼 어린 몸이 곱아들어서."(고개를 숙여야 했나 고민하던 찰나 손이 미끄러짐과 동시에 허리춤을 꼿꼿하게 세웠다. 턱을 조금만 안으로 당기면 곧잘 시선에 닿는 위치였다. 나쁘지 않다. 아니, 어쩌면 지독하게 나쁠지도 모른다. 괜히 황제의 눈에 잘못 들었다가는 단순히 눈총으로 끝날 일인가. 당장은 그런 것들까지 고뇌하진 않았다만.)"제 걱정은 거두세요, 이브. 매일 같이 끈질기게 당신을 등한시하는 목소리들이 앞다투어 쏟아지는 곳임을 알지 않습니까. 상할 속도 남지 않았습니다. 몇 밤을 편히 누웠는지 모르겠군요. ...그런 당신이 제 존재로 위로받을 수 있다면야."니콜 지슐러:"그러도록 하죠. 모시겠습니다."이브 샤를로테:"....익숙함은 때로는 독이라지만, 독 역시 오래 되면 약이 되어준다는 말이 있지요." (굳이 그걸 입 밖으로 꺼내는구나. 훤히 보이는 네 길이 문드러지는걸 보고있자니 어떻든? 가여운 이, 불쌍한 사람, 멍청한 니콜! 아마 이것은 너에게 건내는 처음이자 마지막 조롱일것이다. 속으로 몇 번은 곱씹고는 살이 다 떨어져 나가 앙상한 나뭇가지 같은 손을 얌전히 올리고는 걸었다.)"....다음에 다시 보도록 해요, 니콜."(침실의 촛불이 건조한 숨결에 쉽게도 날아갔다. 문을 닫는 순간까지 시선을 마주했다. 독을 들이킨 이의 마지막처럼.)풀벌레 소리마저 가라앉아갈 새벽, 당신은 다시 예민해진 황후를 침실로 올려보내며 밖으로 걸음했습니다.바스러진 장미향만이 가득한 황후궁에도 고요한 밤이 이어집니다. 해조차 뜰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황후 전하께서 승하하셨습니다!”첫머리부터 ‘폭풍우 치는 밤 비에 젖은 시종이 달려들어와 외치는’ 희곡을 보면 누구나 웃을 것입니다.그러나 비극의 성질은 본래 뻔한 것이어서-벼락이 궁성 그늘을 날카롭게 밝히던 밤, 꼭 무슨 사건이라도 터질 것 같다는 하녀들의 수군거림 속에 기어코 그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습니다.현장에 있었던 시종이 즉시 혼이 빠진듯 황제에게로 달려왔고, 시간이 시간인 만큼 사람들로 가득 찬 회의실 같은 곳을 혼란에 빠트리지는 않게 되었습니다.그러나 그가 붐비는 저녁 무도회장으로 이 소식을 가져왔다고 달라질 것이 있었을까요?황제는 잠자리에 들기 전 책을 읽고 있었고, 당신은 황제궁 근위대장에게 보고할 내용이 있어 잠시 들른 차였습니다.황후를 마지막으로 만난 것이 바로 조금 전인데요. 갑자기 승하라니요?이 경악할 소식에 황제는 건조할 정도로 짧게 탄식했을 뿐입니다.귀찮은 일을 맞닥뜨린 사람 같은 태도였고 실제로도 그랬습니다.황후의 안위에 대해서는 별반 관심이 없었지만, 적어도 지금 죽는 것은 조금 곤란했기 때문이겠지요.당신이 전부 파악하진 못했어도 황후의 친정에서 끌어 온 자금으로 새로운 일 몇 가지를 벌이려 한다는 소문 역시 이미 퍼진 내용이니까요.어쨌든, 사람이 죽었다니 어떻게 된 것인지 가서 보기는 해야 할 것입니다.황제가 몸을 일으켰고, 당신도 급히 그를 따라 황후궁으로 움직였습니다.[사건 첫날, 황후궁]들어설 때부터 어수선한 분위기가 느껴집니다.제국의 안주인이 기거하는 곳이라기엔 수가 적은 사용인들이 저마다 공포에 질려 허둥거리고 있었습니다.황제가 도착하자 모두 황급히 머리를 조아립니다.그는 가로막는 사람 하나 없이 황후의 침실로 직행합니다.당신 역시 마음이 급하겠지만 황제보다 앞서갈 수는 없는 노릇이죠. 그 뒤로 그나마 침착한 시녀장인 백작 부인과 하녀들이 뒤따릅니다.침실 문은 열려 있었습니다. 들어서던 황제가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립니다.끔찍한, 아주 끔찍한…….그 여자,남국 바다를 그대로 떼어 가둔 유리 온실에서 자라난 듯한 여자, 숨죽여 아름다운 그 아가씨…찐득찐득한 피가 엉겨붙은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진 그것이 도저히 생전의 황후라고 여겨지지 않습니다.팔과 다리는 기이한 각도로 꺾였고, 눈, 코, 입, 귀, 부위를 가리지 않고 온몸의 구멍에서 혈액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혼탁한 눈을 홉뜬 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는 얼굴은 역할 정도로 희게 질려 비위가 약한 사용인 몇은 입을 틀어막으며 뒤로 물러날 지경이었습니다.목욕 직후에 변이 발생했는지 엉망인 바닥과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붉게 타오르 듯 젖은 머리카락이 정돈되지 않은 채 풀어헤쳐졌고, 차림새 역시 가벼운 나이트가운이었습니다.벗겨진 슬리퍼가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었습니다.이성치 판정 1/1D4니콜 지슐러:SAN Roll 기준치: 55/27/11 굴림: 6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산전수전 다 겪어온 세월은 무시할 것이 못되는지, 당신은 가까스로 정신을 붙잡습니다.탄식 속에서 황제와 시녀장의 대화가 이어집니다.황제: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시녀장-코르네드 백작 부인: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목욕하신 직후 앉아서 시중을 받으시다 갑작스레… 갑작스럽게 피를 토하며 쓰러지셨습니다. 자작이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자작이라면 황궁 전담 의사인 월도프 자작을 이르는 것입니다.과연 시체 곁에 시립한 그가 난처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입니다.황제는 제 미간을 손으로 짚으며 빠르게 질문을 퍼붓습니다.황제:갑작스러운 것도 정도가 있지, 끝까지 속을 썩이는군, 무엇이든 좋으니 변명이라도 해보란 소리네만, 내 말이 말 같지 않던가?시녀장-코르네드 백작 부인:....하오나, 정말 말씀 드릴 것이 없습니다. 입이 두어개는 더 붙는다 하여도 다를 것이 없겠지요. 저 역시 당혹스러울 따름입니다. (벌벌 떠는 어린 하녀들을 뒤로 세운 채 심호흡을 하고는 재차 읊조렸다.)시녀장, 시녀 하나, 하녀 둘, 이렇게 도합 네 명이 황후의 목욕 시중을 들었습니다. 그때까지는 별 문제가 없었고, 황후께서는 물에 몸을 담근 채 잠시 잠드셨지요. 한 시간 정도 목욕을 한 후 침실로 돌아와 황후께서 의자에 앉으셨습니다.황후의 머리카락을 말리기 위해 타올을 든 순간 갑자기 온몸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지셨습니다. 이에 어린 하녀 하나가 급히 월도프 자작을 부르러 갔고, 5분도 되지 않아 그가 도착했으나 황후께서는 이미... ....절명한 상태셨습니다.제국의 태양 앞에서 어찌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공연히 자작을 책망하실까 늙은 부인의 노파심에서 감히 덧붙이자면,최근 황후께서는 특별한 질병 역시 없으셨습니다.황제가 이후 그녀에게 몇 가지 더 질문했지만 답변으로 미루어 알 만한 단서는 없었습니다.동석했던 시녀들과 하녀들은 겁에 질려 떨면서도 시녀장의 증언이 사실이라고 대답합니다.황제는 짜증스럽게 침실 안을 한 바퀴 둘러본 후, 새벽 동안 철저히 조사하여 진상을 가려내라 명했습니다.그러나 그 어조는 갑작스럽게 횡액을 당한 반려의 사망을 밝혀내겠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것에 가까웠죠.‘이 급사急死가 황실의 책임이 아님을 밝혀라.’신 앞에서 평생 함께 걸을 것을 맹세한 아내가 비참하게 죽은 사건을 두고 지시할 만한 일은 아니죠.그녀의 취급이 늘 이랬습니다.딱히 가지고 싶진 않지만 내버려두기엔 그녀를 둘러싼 배경이 아까운, 그래서 못난 취급을 하며 도망치지 못하도록 가두고 필요할 때에 새장에서 꺼내어 쓰기는 해야 하는.애초에 황제가 그녀를 ‘고른’ 이유부터가 그러했으니 이제와 놀랄 까닭도 없지요.황제는 비탄도 없이 몸을 돌려 자리를 벗어났습니다.잠시 후 시신을 수습할 의사와 보조인이 두 명 더 왔고, 시녀장은 휘하 사람들의 입단속을 하기 시작합니다.당신은 침실을 둘러보며 간단한 면담과 조사를 할 수 있습니다.니콜 지슐러:"... ..."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시늉을 할 틈이 필요했다. 아니. 어쩌면.. 이쯤 되어보니 웬일로 뜨겁게 타는 목덜미를 기어오르는 연민이 전부 거짓은 아니었더라. 당신은 어쩌다. 너는 어째서. 꼭 죽음마저도 이리 비참했어야 할까. 마치 너답게, 혹은 취급답게 조용히 잿가루처럼 사라질 줄만 알았다. 만일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그럴 줄만 알았다. 설마 이 제국의, 이 땅에 숨 붙여먹고 사는 것들에게 악을 내질러 고하듯이 또 보란듯이 끔찍한 최후를 맞이할 거라고는.)"... ...역시, ...역시 달리 앓고 있던 질병은 없으셨던 겁니까. 혹 외상이라도..." (시신의 곁에 머무르던 의사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나직이 되물었다.)의사-월도프 자작:....아, 분명 지슐러 경이였지. 아버지를 닮으셨소. (정신이 없는 와중에 제 위신을 챙길 틈은 있는지 익숙한 머리칼을 보고는 반색했다.)섭하군, 경마저 내 충심을 의심하는게요? 제국의 태양 앞에서 어찌 거짓을 고했겠나? 코르네드 백작부인은 이 궁에서 가장 진실된 사람일세....당신은 저런 병을 들어본 적이 있소? 의사인 나조차 들은 바가 없는 일이오. 저렇게 칠공에서 피를 쏟으실 정도라면, 갑자기 외부에서 큰 충격, 그러니까 공격 같은 것을 받아 내장이 크게 손상되는 급의 상처는 입어야 하오. 멀쩡하시던 분이 갑작스럽게 저렇게 되셨다는 말이 나 역시 이해가 되지 않는군.니콜 지슐러:"...제가 모를 리 없지요. 그저, ...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도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운 처참한 참상인지라." (말 그대로였다. 당장 직군을 의사로 삼는 이도 믿지 못할 광경을 어찌 지식도 없는 범인이 쉬이 납득이나 할까. 조용히 신신을 흐릿하게 흘기다 다시 고개를 돌렸다.) "...황제께서 물러가셨으니, 그밖에도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있을까요." (자작과 눈을 곧게 마주하며 심리학 갈겨봅니다.)심리학 롤니콜 지슐러:심리학 기준치: 55/27/11 굴림: 78 판정결과: 실패 (그냥 꼴아만 본 사람 됐음;)의사-월도프 자작:....사람도 참, 그리 불순한 시선을 황후께 내비춰 왔던 것은 아니겠지? 노인을 책망해도 무엇이 나오겠나? (니콜의 시선이 불쾌했는지 고개를 옅게 저었다. 다만, 천성이 악한 이는 못되는지 황후의 시체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정말 기묘한 일이라고 밖엔 뱉을 말이 없으니 나도 자신이 얼마나 한심하겠나. 내가 도착했을 땐 사망 직후라고 판단되는 시점이었소, 손을 쓸 새도 없었단 말이오.....더군다나 황후께선 칠공 이외엔 상처라고는 당장 검시한 바로는 없소. 지금으로써는 쉽게 원인이 무어라 말하기가 어렵군. 어느 의사를 불러다 놓아도 비슷하게 말할 거요. 이거 참…….니콜 지슐러:"...그렇군요." (그렇다면 직후에 도착한 자작보다는 역시 현장에 함께 머물렀던 시녀장이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을 게 분명하다. 생각에 잠겨 눈살을 가늘게 떴다. 여전히 시신을 바로 보진 못했다. 나 역시 그녀의 참상까지는 눈에 담고 싶어하지 않았던 이임은 분명하니.)"말씀 감사합니다. 이 늦은 밤에 이곳까지 바삐 달려오신데다 이런 모습까지 보게 되어 힘드실 줄은 압니다. ...부디 마지막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고개를 숙이는 일에 인색하지 않았다. 허리를 굽혀 인사를 남기면 천천히 몸을 돌려 너머의 시녀장의 곁까지 느리게 다가섰다.)"...괜찮으신지요." (형식적인 인삿말. 조금 침중하게 낮춘 목소리. 예의.)황후가 입궁할 때부터 함께 따라 들어와 수족처럼 그녀를 모시던 최측근 시녀장입니다.굉장히 창백하며 자세히 보면 손수건을 쥔 손을 떨고 있지만, 어떻게든 차분하게 상황을 정리하려 애쓴다는 느낌입니다.시녀장-코르네드 백작 부인:....아, 지슐러경. (손수건을 곱게 접어 언제 그랬냐는 듯 담담한 표정으로 마주했다. 과연 궁에서 잔 뼈가 굵은 이라 할만했다.).....괜찮지 않을 것은 또 무에 있겠소. 그저.... ....아니, 말이 너무 긴 것은 좋지 아니하지.시녀장 에게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니콜 지슐러:"...듣는 이가 적습니다, 부인. 저 역시 이브... 황후의 까닭 모를 횡액에 속이 상할 차, 아무리 곱씹어봐도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참상이기에 조금이라도 더 이야기를 듣고자 이렇게 찾아왔습니다."(황제가 명한 것과는 실로 다른 까닭이겠거니. 어떻게든 눈꼬리를 휘어뜨려 침울한 상을 내비치며 마른 침을 삼켰다.)"...부디 가감 없이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시녀장-코르네드 백작 부인:....그래, 자네 역시 속이 쓰리겠지. 어찌 성하겠는가? (불쑥 나온 황가의 이름에 깐깐한 노부인은 경을 칠만도 하건만, 어느새 울적함이 스며든 눈으로 니콜의 검 끝만을 바라보았다.)...늘 앓으시던 두통이나 체기 같은 걸 제외하면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네. 잔병치레가 잦으신 것도 문제는 문제지만 그건 만성적인 일이었으니까.....큰 외상 역시 자작에게 들었다면 알겠지만, 없으셨고. 애초 요 며칠 내내 황후궁에만 계시지 않으셨는가? 외출이라고는 궁내 도서관이나 예배당 정도였지. 가끔 밤 산책을 나가시긴 했지만….누구보다 자네가 가장 잘 알 것 아닌가?니콜 지슐러:(웬일로 날카롭게 쏟아지는 지적이 없다. 그럴만도 하다며 어깨를 잔뜩 짓누른 무겁고 텁텁한 공기를 느리게 들이삼켰다. 코끝이 얼얼하다. 아마 아직 이 방을 떠나지 못하고 벽지에 눌어붙은 날 것의 피비린내 탓일 테다. 고개를 숙였다.) "...만성적인 병세가 까닭이었더라면 더 시름시름 앓아 누우셨겠지요. 지금처럼 급작스럽게, 또... 저렇게 스러지진 않으셨을 겁니다. 애석하게도..."(목이 잠겼다. 무엇 때문인지를 가늠했다. 네가 준비도 없이 떠나 더는 내 몫으로 쥘 것이 없음에 비통한가. 거짓이 아님을 깨달아버린 너를 향한 연민이 차오른 탓인가.)"알고 있습니다. 산책을 나설 즈음에도 특별히 크게 편찮으신 기미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욱 납득할 수 없는 거겠지요..." (조용히 숨을 죽였다. 이번에도 부인에게 더 들을 것이 있지는 않은지, 천천히 눈을 맞췄다. 심리학 갈겨봅니다.)심리학 롤니콜 지슐러:심리학 기준치: 55/27/11 굴림: 73 판정결과: 실패 (내적 눈물 흘림.. 아 내 신세..)시녀장-코르네드 백작 부인:....그래, 더 물을 것은 없는가? (제 대답 이후 꽤나 길게 이어지는 정적에 몸을 추슬러 되물었다. 온통 가라앉은것들 뿐인 이 궁에서 저 만이라도 바삐 움직여야했다. 주인 잃은 궁은 썩기 마련 아닌가. 그럼에도 주인 잃은 개마냥, 눈썹을 늘어트린 모습과 그 끔찍한 황후의 모습이 겹쳐보여 노부인은 굳이 되물었다.)니콜 지슐러:"아..." (잠시 기억을 되짚느라 말꼬리를 늘렸다.)"황후의 목욕 시중을 들었다 하셨지요. 혹... 그 사이 황후께서 평소와는 다른 말씀을 읊조리진 않으셨을지요."(내일이라도 콱 죽어버릴 것 같다던 나직한, 그러나 제 귀에는 한편으로 단말마와도 같던 말들이 불쑥 떠오르더란다. 혹 그거라도..)시녀장-코르네드 백작 부인:(잠시 당시 상황을 떠올려 보는 듯이 생각에 잠겼다.)그러고 보니… 당시에는 나도 혼비백산해서 이상하다고 생각지 않았는데 이상한 점이 있었어.그러니까 목욕하실 때부터 차근차근 말해 보겠네. 저기 테이블에 있는 마들렌을 드시다 남기시고, 주무시기 전에 반신욕을 하고 싶으시다 하셔서 물을 준비했네. 욕실에는 1시간 반 정도 계셨던 것 같군. 원래 길게 목욕하시는 습관이 있으시네.욕실이라 해도 혼자 들어가시는 건 아니고, 곁에서 나와 시녀 아이들이 쭉 시중을 들었고. 중간에 와인을 한 잔 드시고 잠이 드셨는데, 손발이 좀 차신 듯해 물을 더 데우고 내가 마사지를 해드렸다네. 그러다 시간이 너무 길어지는 듯해 깨워 드려 침실로 모셨는데…내 기억엔 잠드셨다 깨신 후부터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군.그리고 저기에……. (목이 메는 것을 참았다.) 화장대 앞에 앉혀 드리고, 하녀가 수건을 가져왔지.시녀장-코르네드 백작 부인:막내 시녀 아이가 머리카락을 말려 드리려고 다가가는데 갑자기…… 일이 벌어졌다네.그때에는 너무 놀라서 무엇이 이상한 줄도 몰랐는데, 비명을…… 안 지르셨군.숨소리 하나 안 내셨어..... ...그 이외에 이상한 말 들이라면, ....아 이런, 실례좀 하겠네. 나이를 먹으니 주책이군. 추함을 용서하게. (말을 이으려다 결국 시큰한 눈가를 흝었다. 저보다 한참 어린 이에게 보이는 나약함이 퍽 자존심이 상하는듯 입을 쉽사리 열려 들지 않았다.)니콜 지슐러:"... ...부디 천천히 말씀해주시지요, 부인." (마들렌, 그리고 와인. 소량의 정보들을 놓치지 않고 곱씹으며 다시 경청했다.)시녀장-코르네드 백작 부인:.....전하께서 최근 급격히 용태가 나빠지시기는 했다네. 몸이 아프신 게 아니라 마음이…… 큰 소리가 나면 지나치게 놀라시거나… 사람 앞에 나서야 하는 행사를 피하시거나. (떠올릴 수록 심란한 듯 목소리가 점점 떨렸다.)식사도 자주 거르시고…….갑작스럽게 나빠지셨다기보단 쭉 좋지 않으셨던 거지만…… 그렇지, 자네도 들은 적 있지 않은가? 요즘… 모시는 아랫사람들에게 자꾸 선물 같은 걸 주고 그러지 않으셨는가.갓 들어온 시녀 아이가 갖기엔 과한 귀품을 내리시거나, 하녀에게 금화를 쥐어 주시거나…….그런 말씀도 하신 적이 있지.‘내가 이런 상태로 오래 살지는 못할 테지요. 언제고 나쁜 일이 생기면 부인들은 내 친정에 추천서를 부탁해 좋은 곳으로 옮겨 가도록 하세요. 그 정도는 도와주시지 않겠습니까…….’ 오, 이럴 수가.시녀장-코르네드 백작 부인:그때부터 주의를 했어야 했는데…….니콜 지슐러:"... ..." (혹여 눈 밖에 나기라도 할까, 그녀에게 받았던 브로치는 근위대장을 마주하러 가기 전에 진즉 빼 주머니에 고이 넣어두었다. 그렇기에 저도 모르게 손을 내려 제 주머니를 덮듯 어루만졌다. 온기가 죄 가시고 이제는 광물의 본질적인 냉기뿐이 남지 않은 것이 껄끄럽게 느껴진다.)"...마치 다가올 봉변을 알기라도 했다는 듯이... 참. 이건... 다소 조심스러운 이야기임을 저 역시 알고 있습니다만." (헛기침을 가볍게 놓고 말을 이었다.)"추후 시신에 대한 조사는 월도프 자작께서 해 주실 테지요. 허면... 혹 황후께서 드신 마들렌과 와인에 누군가가 독을 넣었을 가능성도... 있지 않겠습니까. 물론 부인과 시녀들을 의심하는 건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도 황후께서는..." (이곳의 눈엣가시가 아니었나. 찌푸린 눈살로 허공을 노리며 그리 물었다.)시녀장-코르네드 백작 부인:.....목소리를 낮추게. 암살이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 (여직 침울함에 잠겨있던 부인은 간데없고 어느새 반평생 궁에 몸을 담은 늙은 여우 하나가 고개를 엄하게 치켜들었다.)생각해 보게. 만일 이 사건이… 자네나 내가 생각하듯 '우연히' '운이 나빠서' 벌어진 일은 아니라 쳐도 말일세.사교계에든 황궁에든 전하를 시기하거나 음해하던 세력은 넘쳐난다네. 하지만, 바꿔 말하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도리어 전하께선 목숨만은 안전하셨던 게야. 어떤 집단이 한 사람을 겨냥하여 싫어하다 보면 그 자체로 일종의 결속력을 갖기 마련이지. 모두가 ‘쉽게 물고 뜯을’ 대상으로 전하를 남겨 놓은 것이 수 년째 이지 않은가?폐하마저도 전하를 크게 홀대하셨지만, 마음에서 멀어져 있는 것과 전하께서 그 자리에 계셔야 쓰임새가 있다는 것은 별개의 일이지.…지금까지의 상황이 그랬다는 것이고,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서 무슨 음모가 꾸며졌는지 모르니 무어라 다 말하기는 어렵겠지만.솔직하게 말해서 나도 무엇을 먼저 고려하고 움직여야 하는지 판단하기가 어렵구나.시녀장-코르네드 백작 부인:다만 원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전하께서 드시는 음식은 모두 몇 차례 기미를 거친다네. 독살이라면 시도가 쉽지는 않았겠군.주방에서 한 번, 식사 올리기 전 막내 시녀와 경력이 긴 하녀가 한 번씩.더 조사를 해봐야겠지만, ....독살은 아니라고 생각하네, 그래야만 해. 그렇지 않다면 그분이 너무... ......가엾지 않은가. (제 궁일 터인데 말이지. 어느새 다시 노부인으로 돌아간 여우는 말을 줄였다. 와인 역시 평소의 와인이라네, 라는 의미 없는 말을 덧붙이며.)니콜 지슐러:"...그렇겠지요. 괜히 부인의 속을 불편하게 한 것만 같아 죄송합니다. 누구보다 놀라셨을진데." (다시 허리를 깊이 숙였다. 기우뚱 누워 바닥과 수평을 이루는 머리로는 아직 음독의 가능성을 의심했다. 기미를 거쳤기에 안전성을 확보했다면 남은 건 그릇 내지는 와인 잔. 그것도 아니라면.. 그래, 그녀의 위치가 황제에게는 그 쓰임새가 충분한 가시받이였음은 인정한다. 그렇기에 당장 죽이기에도 아쉬웠을 테지. 더군다나 처리하고자 했다면 더욱 조용히, 이런 소란을 빚어가면서까지 애를 먹진 않았을 테다. 다시 허리를 폈다.)"잠시 침실을 더 둘러봐도 괜찮겠습니까. 황후를 마냥 가엾게만 보내고 싶지 않은 이의 고집임을 용서해주십시오."시녀장-코르네드 백작 부인:....내가 어찌 경을 막겠나, 볕이 들지 않을 때에라도 뜻대로 하시게.(정중한 인사에 저도 예를 갖춰 근엄히 대꾸했다. 그 속에는 비명횡사한 젊은 황후에게 향한 비통함과, 무서울 정도로 건조한 황제로 인한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다.)니콜 지슐러:"...감사합니다. 부디 이후로도 몸 조심하시길."(복합적인 의미였다. 그러니까, 그저 그런 예의인 셈이다. 가벼운 목례를 마지막으로 남기고 다시 주변을 훑는다. 가까운 곳으로 보는 게 낫겠거니. 여전히 입안에서 쓰게 울리는 착잡함을 떨치지 못하고 욕실로 가는 길까지 느리게 걸어 향했다.)욕실로 통하는 문. 문 앞에 발을 닦는 깔개가 놓여 있습니다.목욕을 끝내고 침실로 돌아오자마자 일이 생겼다는 것은 사실인 듯합니다.욕실에는 아직도 훈기와 습기가 있고, 욕조의 목욕물과 목욕 중 마신 듯한 와인마저 그대로입니다.니콜 지슐러:(짧게 와인을 노렸다. 분명 속에는 아무 이상도 없을 테지. 그랬더라면 시녀들이 먼저 피를 토하며 쓰러졌을 게 뻔하다. 욕실에서 완전히 멀어지기 전, 괜히 문을 몇 차례 삐걱거리며 주변을 살펴봤다. 깔개도 살그마니 들춰보고. 뭐 없나.. 뒤적뒤적..)핏자국이 꽤 멀리 튀었는지 깔개 밑에 작게 튄 혈흔을 발견합니다. 황후의 비참한 마지막만이 다시금 상기될 뿐입니다.니콜 지슐러:(다시 짧게 토막난 탄식을 흘리고 깔개를 가지런히 내려놓았다. 몸을 돌려 근처의 명화 앞으로 향했다.)개국 황제 부처의 유명한 일화를 담은 초상화입니다.관찰롤니콜 지슐러:관찰력 기준치: 70/35/14 굴림: 1 판정결과: 대성공 (갑자기 개안해버림;)가장자리 끝부분이 벽으로부터 약간 들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손으로 더듬어보니…우측 변에서 작은 구멍 같은 것이 언뜻 손끝에 느껴집니다.크진 않습니다. 얇은 펜이나 머리 장식 끝부분의 핀 따위가 들어갈 정도. 그러나 액자를 떼어내거나 다른 조치를 취해볼 수는 없습니다.침실에 다른 사람들도 있고, 힘으로 시도해 보려 해도 해결되지 않습니다.니콜 지슐러:"흐음..." (액자의 작은 구멍을 한동안 말없이 노려보다 조용히 주변을 살폈다. 역시 지금 무슨 수를 써보는 건 어려울 듯하다. 기억해뒀다가 무엇이든 구실 삼아 다시 찾아드는 수밖에는.. 생각을 마치면 다시 뒤를 돌아 원형침대로 향했다.)황후가 평상시 취침하는 원형 침대입니다.호사스러운 금사가 수놓였고 장정 서넛이 동시에 누워도 될 정도로 넓지만, 전후사정을 아는 사람의 눈에는 어쩐지 조금 쓸쓸해 보이기도 합니다.사실 궁 내부 지원을 제때 받지 못해 침구도 모두 낡은 것이구요.황후가 눕기도 전에 변을 당했기 때문에 침대 자체에는 그다지 이상한 점이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은요.…...침대 아래를 살펴 보게 된다면 작은 궤짝 상자 같은 것이 숨겨져 있다는 점을 눈치 챕니다.그러나 주변에 사람이 많은 지금 그 궤짝을 함부로 꺼내 열어 보아도 좋은 것인지 확신이 서지는 않습니다.니콜 지슐러:(이것 역시 그들의 눈에 들어서 좋을 건 없다. 확인하고, 모든 의심을 지운 뒤에 물어도 늦지 않을 테다. 무엇보다도 이런 잠자리로 매일 밤을 지내왔으니 그런 잔병들이 만성으로 남을 만도 하지. 신발코를 세워 궤짝을 조금 더 안쪽으로 톡, 밀어넣었다. 과연 그들이 이 방의 구석구석을 뒤적여보기나 할까. 얼핏 실소가 샐 법도 했지만 입꼬리를 힘주어 내리고 곧 티테이블과 의자가 놓인 곳으로 향했다.)찻주전자와 티세트 한 벌, 먹다 남긴 마들렌 한 접시가 놓인 테이블입니다.티세트는 깨끗하게 닦인 상태입니다. 황후가 목욕 전 간식으로 먹던 것이고, 차와 곁들여 마시지는 않았습니다.마들렌 역시 수상하지 않은 평범한 마들렌으로 황실 주방장이 만든 간식입니다.니콜 지슐러:(이것 역시 기미를 거쳤다면 의심할 여지가 없다. 티세트는? ..너무 비약인가. 한참을 테이블 앞에 서서 제 턱을 쓸어내다 조용히 몸을 돌렸다. 결국 오래 마주하고 싶지 않은 너와 마주해야 할 차례다. 답지 않게 주춤거리며 시신 가까이 향했다.)시체에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역한 기분이 느껴집니다. 험한 광경을 본 게 처음도 아닌데 말입니다.이성치 체크 0/1니콜 지슐러:SAN Roll 기준치: 54/27/10 굴림: 46 판정결과: 보통 성공 시신이기에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굉장히 차갑고 어딘가 무기질적인 느낌을 줍니다.죽은 사람의 시체라기보단… 지독하게 잘 만든 나머지 도리어 불쾌한 도자기 인형 같다는 인상입니다.발목까지 내려오는 원피스 형태인 나이트 가운을 입었고, 머리카락은 아직 덜 말라 젖은 상태입니다.눈과 코, 귀, 입가에서 모두 피가 흐른 듯합니다. 특히 토해낸 피가 많은지 가슴팍에 검붉게 뭉친 핏덩이가 튄 흔적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눈은 아직도 부릅뜬 상태입니다.발은 화장대 의자 방향, 머리는 벽 방향입니다. 천장을 바라본 자세로 쓰러졌습니다.의학,혹은 관찰롤니콜 지슐러:관찰력 기준치: 70/35/14 굴림: 87 판정결과: 실패 (눈.. 눈 한 번만 비비고 다시 볼 수 있을까.. 비비적.. 꾸깃..)아무래도 늦은 시간이지요, 피로가 겹쳐 눈이 흐립니다. 다시 볼까요?관찰롤니콜 지슐러:관찰력 기준치: 70/35/14 굴림: 1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시신의 추가 정보를 획득합니다.니콜 지슐러:"... ...?"(진중히 시신을 살피다 결국 고개를 세워 곁에 있던 자작에게 재차 정중하게 물음을 던졌다.)"저, 실례지만 한 가지 더 여쭈어도 괜찮을런지요. ...제 아무리 원인 모를 급사라지만 시신이 이렇게 단시간에 경직이 오기도 합니까...? 그리 냉랭한 환경도 아닐진데요."의사-월도프 자작:....음? (대부분의 일을 마쳤는지 제 진료 가방을 챙기다 곁으로 다가왔다. 이내 표정이 오묘하게 일그러진다.)흐음... ...뭐, 어느 때이던 예외가 있긴 하네만. 드물기야 하군.사후경직이 너무 이른 감이 있소, 재차 말하지만 아예 없는 일은 아니오. 하지만... ....그 황후께서 이리 되시니 기분이 묘한건 사실이군, 생전 이 궁에서 싫은 소리 한 번 하지를 않으셨던 분이니. ....이제와서라도 그리 악을 지르시는건지.(황후의 홉 뜬 눈을 볼 수록 일그러진 표정은 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말인 즉슨 드물긴 하지만, 어찌 되었던 저도 영문은 모를 일 이라는 것. 비통한 기운만 더해질 뿐이였다. 별 도움이 되지 못한 자작은 젊은 황후의 눈 위를 가려 감기곤 고개를 내저었다.)니콜 지슐러:"... ...그렇습니까." (홉뜬 눈꺼풀을 감기기 위해 내뻗던 손을 조용히 물렸다. 당신은 죽음에 이른 순간까지도 내 손길을 바랐을까. 내가 조금 더 이르게 당신의 눈을 감겨주어야 했을까. 부릅 뜬 것이 꼭 세상과 황제가 아닌 나를 노려보는 듯했다면 그건 제 발 저린 미련한 이의 착각이었을까.)(마저 걸음을 옮겨 화장대 위 보석함을 조심스럽게 살폈다.)황후가 앉았다 쓰러진 화장대입니다. 화려하고 고풍스러워 가구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물건입니다.앉아 있다 피를 토했다는 증언이 사실인지 거울과 서랍 등에도 피가 튀어 있습니다.그런 사실을 제외한다면 화장대와 의자 자체에는 크게 이상한 점이 보이지 않습니다화장대 위에는 화장품과 액세서리 등이 보이고, 보석함 하나가 열린 채 놓여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황후의 반지와 목걸이 등이 담겨 있습니다.시녀장-코르네드 백작 부인:....이게 어디로 갔단 말이야?(침실을 떠나지 않고 마지막까지 정리 하던 시녀장이 다가오다 의문을 표했다.)니콜 지슐러:"...달리 사라진 것이라도?" (부인과 보석함을 번갈아보다)"값이 나가는 보석... 입니까?"시녀장-코르네드 백작 부인:아니, 경이 알 것은 없네만- ..... (익숙함이 묻어나오는 단호한 투로 대꾸하려다 이내 별 의미가 없는 것을 알았는지 입을 꾹 닫았다. 느릿하게 이어지는 투에는 허망한 당혹감이 느껴졌다.)전하께서 가지고 계신 것들 중 값이 나가지 않는 것이 어디 있겠소. 최근 다른 이들에게 주긴 하였지만, 그것들은 내 모두 기억하고 있단 말이오. 그런데...그 중에서도 가치를 매기기 어려운 것들이 있지. 유독 값비싼 액세서리 여러 개가 사라졌네. 남은 액세서리 중에서도 목걸이, 반지 등을 장식하던 화려한 보석 몇 개가 아주 뚝 떼어 나가 사라졌군. 이 무슨 불경한 일인가? ....함구해주길 바라네. (그 분의 일은 자신이 모를 리가 없다며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다물었다.)니콜 지슐러:"... ...알겠습니다. 명심하지요." (그리고 다시 보석함을 본다. 그의 말처럼 근래에 부쩍 나누어주었다고는 하나, 그 사실을 이 늙은 시녀장이 모를 리 없다. 내어준 것이 무엇인지, 남은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지 않았을 턱이 없지. 그녀가 갑작스럽게 죽음에 이른 것과 관련이 있나? 설마 황후의 침실까지 도달해 좀도둑질이나 할 대범한 멍청이의 짓은 아닐 진데.)(피가 튄 화장대와 의자를 찌푸린 시선을 흘겨보다 시녀장에게 마지막으로 목례를 남기고 앞으로 나가났다.벽에 면해있는 벽시계를 조용히 살핀다.)묵직한 디자인의 벽시계입니다.낡고 오래된 것이지만 운치는 있어 보입니다. 시간이 멈춰 있네요.자세히 보니 이 벽시계는 유리문을 열 수 있는 장식장과 같은 구조입니다. 겉면을 열어 꼼꼼히 살펴 보면 시계의 분침과 시침이 조금 이상하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나사를 자주 조였다 푼 듯이 헐겁고 긁힌 자국도 났네요. 조금만 힘을 주면 분침이나 시침을 따로 분리할 수 있을 듯합니다.니콜 지슐러:(벽시계가 자주 망가졌었나? 하기야.. 침구도 곧장 바꿔주지 않는 마당에 시계가 망가졌다고 해서 새 것으로 바꿔줄 위인은 아니지. 그나저나 헐거운 바늘들을 부지런히 노려보았다. 지금은 역시 보는 눈이 많다. 후에 다시 찾아와 명화의 구멍, 궤짝, 그리고 시계바늘도 빠짐없이 훑어놓아야 한다. 생각을 마치면 마지막으로 드레스룸으로 가는 길 앞에 섰다.)황후의 옷과 보석 등을 보관하는 방으로 가는 문입니다.닫혀 있습니다. 당장 중요한 것은 없어 보입니다.니콜 지슐러:"... ..." (둘러볼 것들을 모두 둘러보고 난 걸음은 결국 다시 네게로 향했다. 미련이 남았느냐 하면 틀린 말은 아니다. 아직 네가 내게 건네주어야 할 것들이 많았다. 대체로 재력이 그러하다. 권력을 탐했다면 진즉 너를 밀어내고 이 멍청한 꼭두각시 놀음이나 자처했을 지도 모르지. 이쯤 되고 나니 역시 이 직위는 한사코 사양이다만. 그냥 네가 마냥 가여웠다. 무엇이 너를 이렇게 몰아세웠나. 이곳까지 떠밀었나. 네가 이렇게 죽어야만 할 이유가 있었나. 혹 모든 게 눈속임인가. 네가 나를 속이고 있는 걸까. 겨우 브로치 하나를 덜컥 건네주곤 속 편히 나를 비웃고 있나.)"... ...전부 거짓말이었다면 그땐 웃어드리겠습니다, 황후. 모처럼... ...진심으로요." (아직 곁에 타인이 몸 세우고 있음을 짧은 시간 방기했다. 들릴듯 말듯한 음성으로 읊조림을 마치면 눈을 깊게 감았다 떠올렸다.)"늦은 시간까지 고생 많으셨습니다. ...조금 피로한 듯하니, 실례를 무릅쓰고 먼저 물러가도 괜찮겠습니까."시녀장-코르네드 백작 부인:....경도 고생이 많았네, 이 곳에서 본 모든 것들은 아무쪼록- ....아니, 그건 경께서 알아서 하시겠지. (인사를 받고는 피로한 눈을 매만지다 드물게 지친 말투로 대꾸했다. 그러나 이 궁에서 정신이 남은 자는 그녀 뿐인게 맞는지, 바로 허리를 곧게 세우고 꾸벅 고개를 숙였다.).....전하는, 내가 모셔다 드리겠네, 들어가시게.(상황이며 대사가 퍽 우스웠다. 그녀는 이제 이 황후궁을 떠날 수 없을 것이다. 배웅은 니콜의 몫도 아닐 것이다. 정말이지 한 편의 조잡한 희극이 따로 없지 않은가.)침실을 전부 둘러보고 나면 시간은 어느덧 자정을 넘깁니다.의사들은 1차적인 검사를 마무리했고, 흐느껴 울던 황후궁 일원들 역시 우선은 자리를 정리하려는 뜻을 내비칩니다.오늘은 우선 돌아가 잠들어야겠습니다.니콜 지슐러:"...부탁드립니다." (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이었다. 이제와서 스스로 손을 댄다 한들 그들만 하겠는가. 그보다는 정리해야 할 생각이 많았다. 그녀의 죽음이 안겨주는 의미, 본질적인 까닭, 앞으로의 처사.빌어먹을! 일이 꼬여도 하필이면 이따위로 꼬일 줄이야. 내가 어떻게.. 어떻게 여기까지 붙어 기어올라왔는데.. 끝에는 저도 모르게 이가 부득 갈리기 시작해 조용히 숨을 정돈했다. 금세 일그러진 낯을 갈무리하기도 순식간이다. 버릇이라는 거다. 저를 살피는 이가 없는지 마지막으로 시선을 넓게 두고 소리 없이 걸음을 떼어내 침실로 향했다.)......하지만 과연 잠이 올까요?사람이 죽으면 별이 된다지만 이 밤을 수놓은 은하수의 물길 중 어느 줄기에도 그녀처럼 가늘고 깊은 우울로 빛나는 항성은 없습니다.천덕꾸러기 황후가 피를 토하며 쓰러진 것이 그저 곤란하고 귀찮은 일인 듯이 새벽의 황궁도 묵묵히 조용하기만 합니다.당신은 이 기이한 사건이 황제의 뜻대로 흘러가는 것을 두고 볼 건가요?[사건 이튿날]이윽고 아침입니다.세상이 이렇게 반짝인다는 것이 우스울 정도로 날씨가 좋은 오전이었습니다.당신은 평상시처럼 세수를 하고, 오전 근무를 서기 위해 나섰습니다.하지만, 무엇을 지켜야 할까요.어제 갑작스러운 황후의 승하로 황궁 안이 온통 어수선합니다. 습관적으로 근무지인 황후궁까지 향하는 동안 몇 사람인가를 마주칩니다.평소 가깝게 지내던 제 2기사단의 선배가 당신에게 인사를 하네요.기사1:지슐러, 어딜 그렇게 바쁘게 가? 오늘 단장도 보이지 않던데 조금은 느리게 행동해도 되잖아?붙잡아 간밤의 소식을 물을 수 있습니다.니콜 지슐러:"안녕히 주무셨습니까." (딴에는 선배랍시고 깍듯이 인사를 건넨다.) "...버릇이 들어서요. 간밤 소식은 들으셨습니까...?"기사1:(으응? 하여간 너무 딱딱하게 군다니까, 투덜거리지만 영 싫은 소리는 아니었다. 제 목에 팔을 베고는 시선을 굴리다 드물게 말을 골랐다. 입이 가볍고, 경박한 그라도 이리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날의 새벽이란.) ...소식을 듣지 않았으면 이 궁에서 일할 자격이 없겠지. ...괜찮냐? (제 딴에는 서툴게 위로나마 해주려는 것인지, 혀를 차며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니콜 지슐러:(웬일로 차분하다 싶어 눈살을 가늘게 고쳐 떴다. 딴에는 말을 피해 깔깔거릴 줄만 알았지. 무거운 주제는 영 입에 담기 싫어할 것만 같았지. 퍽 위로도 할 줄 알고. 어깨를 가볍게 으쓱이며 숨을 길게 내쉬었다.) "제가 힘들 게 무어가 있겠습니까. ...까닭도 알리지 못하고 스러진 이만 안타깝게 되었지요. ...황후는 무사히 잠드셨습니까." (향후 처리를 물었다.)기사1:아, 음....황후의 시신이 수습되어 관으로 들어갔어.피를 토한 것 외에는 딱히 상한 부분도... 없어서 처리가 쉬웠다고 말씀 하시더라. 그러니까~ 우리 아버지 말씀에는 말이지. (무사히, 단어에는 무게라는 것이 있다고 그는 평소에 믿곤 했다. 제 후배가 내뱉은 말이 딱 그렇다고 생각했기에, 저도 평소 가벼움을 내던지고 꽤나 진지하게 임하려 했다. 사람이란게 그리 쉽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어쨌던 지슐러는, 그러니까. 음. 황후랑 조금 각별한 사이가 아니었는가- 라고 황제의 귀에 들어가면 경을 치고도 세번을 칠 생각을 아주 자연스레 했다. 그로서는 꽤나 노력중이었다.)국장은 일주일 뒤야. 너는...(말을 이어가다 멈추고는, 손을 휘저었다. 얘야 당연히 가겠지?) 그렇게 천시하던 것치고 최소한 황후로서의 예우는 해줄 모양이다 나 원 참... 높은게 좋긴 좋아? 아니- (이에 더 할말이 있는 듯 평소와 같이 나불대려다 헙, 하고는 입을 딱 다물었다. 그는 정말 노력하고 있었다.)니콜 지슐러:(그가 저 ㅡ제 눈에는 그리 보였다.ㅡ 알량한 머리로 온갖 생각을 하는 줄은 그다지 경우에 두지 않고, 그저 애를 쓰고 있구나 하는 것쯤은 알아차린 채 고개를 묵묵히 주억거렸다. 그의 노력을 모른 체하진 않았다.)"그렇군요... 그럴 만도 하죠. 눈으로 보지 않아 다행입니다, 선배. ... ...꿈자리가 몇 밤은 더 사나울 듯합니다.걸음해야죠. 도리로서요."(그럴 줄 알았지. 이번에는 조금 다른 의미로 눈을 낮게 떠 그를 가만 바라보았다.)"말씀하시죠, 선배. 궁금합니다." (조금은 저도 가벼운 농조로.)기사1:(흐음... 음...... 고민하는 신음을 몇 번인가 내뱉었을까, 그는 양반은 못되는지 머리를 벅벅 긁으며 예의 그 입을 나불거리기 시작했다. 뭐 어떤가, 당사자-그러니까 이 부분은 굉장한 착각이겠지만-도 괜찮다고 하고, 애초에 이런 것도 이야기를 못하면 이 궁에서 숨통이 막혀 어떻게 살겠는가? 우리의 황제는 정말로 개자식. 존경합니다, 만만세였다.) ...그으러니까? 공작님이 방문하신걸 봤거든, 아주 꼭두 새벽부터 오셨더라. 하긴 뭐 나같아도...(입을 뭐라고 더 열려다 그녀가 그 공작과 친분이 있기야 하단걸 자각했는지 다음으로 넘어갔다.)아주 절절하셨지, 정말 나였어도 그러겠어. 샤를로테 가문이라고 뭐 다르겠어? 그리 아리따운 딸을 잃었는데 말이야. 아무튼 내가 아침 순찰이라 그 꼴을 봤는데- (서론이 길게 이어졌으나 결론은 그거였다. 황후의 아버지인 공작이 새벽같이 황궁을 방문해 엎드려 읍소했으나 예의 그 개자식은-아마도 황제겠지.- 거들떠 보지도 않더라. 뻔한 이야기였다.)아니 그런데- 정말 기가 막히게도 말이야, 이건 비밀인데.황제께서는 오늘 오전에도 업무를 보시기 전에 그 정부랑 만나셨다니까. 그 뿐이야? 아주 찌인하게- (그 뒤 소근소근 울려퍼지는 뒷 이야기가 경박하기 짝이 없는게. 정말로, 정말로 뻔했다.)니콜 지슐러:"... ..."(모든 것을 묵묵히 들었다. 무람없이 짝이 없는 말본새부터, 그 문장들이 품고 있는 당시의 상황 전부. 그가 아닌 내가 아침 일찍 순찰을 돈답시고 그 광경을 보았더라면, 명확히 하자면 후자가 아닌 샤를로테 가문의 공작이 넙죽 엎드리는 모양새를 눈에 담았더라면 과연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무슨 충동이 좁은 머리를 치고 갔을까. 모르지 않을 내 낯을 보았을 때 공작의 표정은? 그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그녀를 지키지 못해 죄송하다고? 아니면.. 그저 딸을 잃은 비통함에 잠긴 아비의 애달픈 하소연을 들어주는 게 고작이었을까?)"곁이 심심하셨겠지요. 그런 분이 아니십니까." (지나가던 다른 이가 들었다가는 단숨에 내 목이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을 터였다. 그리 당당히 대꾸하고 만 건 순전 내 앞의 이가 나보다 곱절은 경솔한 이였기에 가능했다. 그래, 네 말이 맞아. 이따금 숨통 좀 트이자고 이런 말이나 뱉지 않으면 내일 즈음 꼭 황후마냥 온갖 구멍으로 피를 쏟다 죽을 지도 모를 일이다. 답답하니까.)"다른 소식은 없습니까? 이를 테면... 죽음의 까닭이라던지요. 밤새 생각해보아도 역시 짚이는 구석이 없어 곤란하던 차였습니다. 자작도 상당히 곤혹스러워 하던 것처럼요." (가장 큰 의문은 아직까지도 이 부분이다.)기사1:(어쩐 일로 맞장구를 다 쳐주는 귀엽지 않은 후배를 의문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도 잠깐이였다. 그래, 화가 나겠지. 저였다면 당장이라도 가서 멱살을 잡고 가문을 멸족시켰을 것이다. 그녀가 저처럼 충동적이지 않은 이 임을 누구인지도 모를 이에게 감사했다. 하늘의 누군가는 받겠지, 황후일지도.) 음. ...영양가가 있는 이야기라면-(그는 입이 싼 만큼 정보통이기도 했다. 궁 안을 답지 않게 헤집고 다니는 기사는 정말 많은걸 알고 있었다. 그의 아비가 궁의인 탓도 있으리라. 지슐러는 꽤 적격인 자를 찾긴 했다.)...음독인지, 중병인지 의사들이 밤을 새서 살폈지만, 어느 쪽이라고도 확언할 수가 없었다고 하셔.뭐, 그래도 황후께서 체력적으로 약하긴 하셨어도 병을 앓았던 것은 아니니, (잔병치레는 치지 않는 모양이었다.) 명확히 말하지는 않아도 의사들의 말을 모아 보면-(목소리를 낮췄다. 옆집 개처럼 팔아먹던 제 아비의 이름 대신 무리를 지칭하는 모양새가 퍽 조심스러웠다.)... 행간에서 독살당한 것이 아닌가...하고. 추측을 하고 계시더라. 문제는 정말 독살일 경우인데, 흠. 이리 좀 와봐. (황제욕보다 더 중한 일인지, 못견디고 자신이 가까이 붙어 더 목소리를 깔았다.)니콜 지슐러:(부정하지 않는다. 그는 내게 있어 가장 뛰어난 ㅡ다시말해 편리한ㅡ 정보꾼이었다. 제 아비의 이름도 쉬이 들먹여 꼭 그만큼의 정보를 안겨다줄 수 있는 자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저 가벼운 말장난에 한 번 두 번 어울려주는 건 정보값이라 봐도 무방했다.) "...의심할 군데가 현저히 적어 결국 독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적어도 현장을 보아서는요. 하지만 확언이 어렵다니..." (이 사건에 저는 까마득히 모를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걸까.)"...그렇게나 조심스럽습니까?"(그 즈음에는 저 역시 그의 박자에 맞춰 목소리를 낮추고 공연히 몸을 숙였다. 그 전에 주변을 살펴 튀는 시선이 있지는 않은 지부터 꼼꼼하게 살폈다. 그리고 다시 그에게 귀를 기울인다.)"말씀하세요."기사1:(바짝 붙어 온 것을 확인하곤 속삭였다, 그래. 문제는....)독살일 경우에는, 황제께서 어찌 나오시겠어. 설마 정말 진심을 다해 범인을 색출하시겠어? 웃기지도 않는 소리지. 그 분은 황후님의 죽음으로 인한 진상을 명명백백히 드러낼 의사라곤 요만큼도 없어. 너도 알잖아?평화로운 황궁에 젊은 황비가 칠공에서 피를 토하며 비명횡사했다. 하이고, 참 길이길이 남을 이야기니까.(조심할만한 이야기였다. 수가 틀리면 제 목이 날아갈만한, 아니. 제 목만 날아가면 다행이었다. 그러나 입을 다물 수는 없었다. 어찌 됐던 그 황후는 저가 보기에도 불쌍한 이가 맞았다. 황제는 썩 좋은 부군은 아니였고, 제 앞의 후배는... ...명시하자면 그는 제 주변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이였다. 이를 증명하듯 미간이 좁혀졌다.)...정확히 누가, 왜, 어떤 의도로 살해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황후지, 그 황후야. 다음 타겟은 누구겠냐, 황제 아니겠어? ...몸은 어지간히 사리시니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조사는 진행하겠지만,(말을 뱉는 입이 꽤 쓴 듯 비뚤게 조소했다. 이건 지나가는 짐승도 알만한 이야기다. 결과는 황제의 입맛에 따라 고쳐 발표될 것이다. 가령 아무 상관 없는 황제의 정적 가문을 범인으로 몰아 처형한다거나, 반대로 범행을 저지른 인물이 황제의 측근이라면 병사로 덮어 버린다거나. 그래, 꼭 제 앞의 귀엽지 않은 후배같은. 지슐러의 이름을 단 이들 뿐만이 아니라 제 주변의 무고한 이들. 반 황제파. 구구절절 말을 뱉고 나니 숨통이 더 막혔다. 그저 한마디만 덧붙였다.)...그러니까, 너도 몸 사리라고. 더 파고 다니지마. 충고로 듣지 말란 소리야.니콜 지슐러:"... ...아하."(지척의 무람없는 이가 선심껏 걱정을 아끼지 않은 것치고는 퍽 건조하기 짝이 없는 대답이었다. 높낮이가 그랬다. 하물며 미동 없던 눈썹과 눈매마저도. 간과한 건 아니었다. 사실상 거적데기마냥 황후를 자리에 앉혀둠으로써 쓸모를 다한다 할지언정 그 황제가 저 자리에 다시 앉힐 이 하나 색출하는 게 그리 어려울까. 쓰임새를 위해 앉혀놓았건만 날이 갈 수록 신경질을 부리기 시작한다면 부리라도 뽑아 죽이고 새 것을 들여놓아도 이상하지 않을 인물이라 생각했다. 적어도 내 머릿속으로는 그랬다. 황후의 까닭 모를 죽음의 원인이 황제의 손아귀에 있다면 다음은 그녀의 곁에서 그녀와 대단히 살갑게 지내오던 것들일 테다. 눈엣가시임은 다르지 않겠지. 그들을 살려두어봐야 자신에게로 쏟아질 지긋지긋한 반감뿐이 더 있겠는가. 하지만 그렇단 말이지. 그의 꾸밈이 아니라면 더욱이 위험할 테다. 가장 모나있는 것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자신의 안위를 더욱 견고하게 다질 테지. 그 희생양으로 오른 가장 먹음직스러운 게 나일 지도 모르겠다.)"감사합니다, 선배. 뜻은 알겠습니다. ...제가 무엇을 해야 하는 지도요."(굽혔던 몸을 곧게 펴 올린 채 제 옷매무새를 톡톡 두드려 다듬으며 무감히 말했다.)"선배도 조심하십쇼. 이때다 싶어 신나게 말씀하시다 자리도 잊고 실수하실 지 모릅니다. 선배가 불명예로 떠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습니다. 존경하니까요."기사1:(어색하게 뒷목을 벅벅 긁었다, 버릇이었다. 제 말을 제대로 듣기는 한 건지 저로서는 알 길이 없었으나 그냥 그런대로 넘어가기로 했다. 제 역할은 할만큼 하지 않았는가.몇 번 입을 다시다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어찌 되었던 입을 잠시라도 놀리지 않으면 안에서 단내가 나는 인간이긴 했다.) ...아, 또 덧붙이자면 검시 하던 의사 태도가 꽤 이상하다고 하셨어. 직접 보지는 못하셨지만 뭐라더라... 황후의 가슴에…….니콜 지슐러:"... ...가슴에?"바로 이 타이밍에, 멀리서 사색이 되어 달려온 다른 기사 하나가 고함을 칩니다.기사2:백작님께서 시체로 발견되셨습니다! 지금 난리가 났어요!기사1:살해? 백작? 어디의 백작을 말하는 건데?그는 발을 구르며 그 어마어마한 말을 차마 쏟아내지 못하고 손가락으로 동쪽을 가리켰습니다.여기서 동쪽.황제의 시종장 휴베르트 백작 이야기입니다.[알현실, 백금 옥좌로 가는 여섯 개의 길]이 나라에서 황제가 앉는 왕좌는 ‘여섯 길 위에 앉은 백금 옥좌’라고 불립니다.정말 백금으로 만들었다는 까닭도 있고, 건국 신화에 여섯 개의 순례길과 관련된 일화가 나오는 고로 황제궁에도 여섯 순례길을 본따 중앙 홀로 다다르는 여섯 복도를 만들어 두었기 때문입니다.그 여섯 복도가 모이는 둥그런 방을 거치면 비로소 중앙 홀 출입문이 등장하고, 다시 문을 넘어서야 백금 옥좌에서 천하를 오시하는 황제를 만날 수 있습니다.때문에 공식적인 행사날 황제를 알현하는 자들은 이 방에서 무기를 맡기고 자세를 가다듬습니다.그러나 지금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백여 년을 내려온 위엄이 산산히 부서지는 순간을 목도하게 됩니다.평생 황제를 모셔온 노백작이, 그 깐깐하고 날카로운 눈으로 궁전을 호령하던 또다른 우두머리가………바지가 벗겨진 채 죽어 있었습니다.이성치 체크 1/1D2니콜 지슐러:SAN Roll 기준치: 54/27/10 굴림: 90 판정결과: 실패 2이성 -2무려 ‘황가의 위엄을 상징하는 중앙 홀 앞에’ ‘목을 매달아 공중에서 덜렁거리는’ ‘시종장의’ 시체인데도,허리 아래 사정이란 본래 단두대에 매달린 사형수의 눈마저 돌아가게 하는 성질을 지니는지라 사람들은 아주 본능적으로 그자의 낡고 주름진 국부를 먼저 바라보게 되고 맙니다.그 볼품없고 초라한 위용은 황제의 아낌없는 신임을 받는 충신으로서 여느 공작 못지 않은 명예를 자랑하던 남자의 최후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작게 쪼그라들어 있었습니다.사정을 모르고 얼결에 섞여 들어온 여성들이 비명을 지르며 물러났지만, 남성들이라고 해서 탄식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우스울 법도 한 상황인데 전혀 그런 기분이 들지 않았습니다.이, 역겨운…….하필 오늘은 중앙 홀을 사용하는 공식 행사가 있는 날이었기에 몰려든 사람의 숫자가 어마어마했습니다.상황을 살피고 싶은데 이대로 있다간 군중에 파묻히게 생겼군요.관찰롤니콜 지슐러:관찰력 기준치: 70/35/14 굴림: 3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수많은 이들을 헤집고 시야에 들어온 ‘그것’을 바라보고 있자니...당신은 노인의 시신 상태가 굉장히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우선 가슴께가 피로 젖어 있네요. 교살당한 시체에 혈흔이 있을 까닭은 없습니다. 더군다나 목 부분이 그다지 훼손되지 않았습니다.꼼꼼히 살피지 않았기에 확실하진 않지만, 목졸려 죽은 시체라면 벗어나고자 격렬히 움직이면서 발생하는 상처 등이 있기 마련입니다.하지만 저 시신은 마치……이미 죽은 시체를 뒤늦게 고리줄에 꿰어 놓은 듯한 꼴이 아닌가요?이때 군중이 급히 갈라집니다. 황제가 도달한 것입니다.노기에 찬 그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시종장의 시신 앞에 섰습니다.노인의 비참한 꼴을 보고 주먹을 말아쥔 황제는 분노를 감추지 않으며 씹어 뱉듯 말했습니다.황제:“...반드시 찾아내 엄정히 단죄하리라!”피를 토하며 죽은 황후의 시신을 내려다볼 땐 어땠었죠?……그리고 다시 나흘이 지났습니다.황후의 서거로부터 엿새째,그녀의 죽음까지 살인으로 친다면 6일간 황궁에 연쇄살인이 5건이나 발생했습니다.황제가 아끼던 시종, 황제가 아끼던 요리사, 황제와 친분이 두텁던 대귀족……모두가 황제와 친밀한 연관이 있던 사람들입니다.아보 (GM):(To GM)rolling 1d4=()44황궁은 스산하리만치 조용하고 모두가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특히 공공연히 황제파라고 알려진 대귀족 인사들은 아예 황궁으로의 발걸음마저 끊었습니다.국장 기간과 겹쳐 모든 연회며 행사가 취소되고 연일 경비를 강화하니 구역을 막론하고 모든 곳이 사람 사는 공간 같지 않게 적막하기 짝이 없습니다.그리고 험흉한 것들이 돌았습니다.그것은 발이 없으되 평소에는 높으신 분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가장 낮은 곳까지 무엇보다도 쉬이 건너갈 줄 아는 힘을 지닙니다.세상에 말보다도 빠른 것은 없기에 평생을 황족의 옷자락 하나 밟아보지 못할 이들까지도 쉬쉬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로 떠나 보내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황후가 궁을 저주하고 있다.억울하게 죽은 황후가 원혼이 되어 궁을 떠돌고 있다!’그런데 황제와 정부만은 살아 있습니다.어째서?[국장 전날]황제는 신경이 극도로 쇠약해진 채 황제궁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게 되었습니다.정부와 단둘이 심처에 몸을 숨기고 근위병들로 황제궁을 겹겹이 둘러싸 쥐새끼 한 마리 들어가지 못하도록 방비를 단단히 했다지요.순찰을 지독하게 강화했고, 근위대와 기사단의 업무는 평소보다 배로 늘어났으며 수도 경시청까지 협조를 시작했습니다.며칠간 수사를 거듭하면서 기사단에서도 나름대로 알아낸 정보가 있습니다.당신은 살인사건이 일어났던 곳을 중심으로 순찰을 도는 임무를 배정받게 되었습니다(지도에서 빨간 점이 찍힌 곳들이 사건 장소입니다).오늘의 담당 구역은 우측 별관과 성당. 두 장소를 방문해볼 수 있습니다.선택된 장소를 돌며 조사를 할 수 있습니다.니콜 지슐러:(피로가 가실 날이 없다. 그만한 중대사임을 모르지 않았기에 평소의 저처럼 군말 없이 나섰지만 이따금 남몰래 내리감는 눈꺼풀은 역한 피로로 벌벌 떨리기까지 했다. 눈을 감으면 찾아오는 막연한 어둠 너머에 간간이 피에 흠뻑 젖은 그녀의 낯이 덩그러니 떠오를 때가 있다. 내게 무엇을 바라는지. 내가 아니라면 황제와 그의 정부에게 과연 무엇을 바라고 있는 건지. 네 원한이 아니라면 이게 당최 무슨 사단들인지. 홀로 작은 머리를 싸매 고민해봐야 답이 나오겠냐마는.)(하는 수 없이 느린 걸음으로 우측 별관을 찾아 나섰다.)별관으로 이동합니다. 스산한 바람이 뺨을 스칩니다.시신 자체는 이미 치워졌고, 범행이 벌어진 공간만 보존해둔 터라 당신이 특별히 추가로 조사할 것이 없었습니다.황제가 눈을 뒤집고 인력을 충원했거든요. 근무 목적 자체는 단순한 경계이니 한 바퀴 순찰만 돌아 보면 될 것입니다.그런데 별관 뒤쪽에서 파이프 담배를 피우고 있는 자들이 눈에 띄네요. 저들은…황후를 수습한 장의사들이군요?듣기, 혹은 은밀행동 롤니콜 지슐러: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42 판정결과: 보통 성공 장의사1:“그러니까… 잘못 본 거 아니지?”장의사2:“그랬다니까. 자작이 요청해서 가슴을 갈랐는데,심장에 다이아몬드가 꽂혀 있었다고. 아주 주먹만한 게.”장의사1:“그게 어떻게 거기 박혀 있어? 뭐, 드셨거나 하면 위 같은 데에 있을 수는 있어도.심장을 보석이 찌르고 있다는 게…….”장의사2:“수상한 건 그게 전부가 아니야. 왜 있잖은가, 그 별관에서 죽은 하녀.그 여자 주변에도 보석 가루 같은 게 있었어.”장의사1:“아, 그 얘기라면 나도 들었다네. 박물관이고 성당이고 다 검출됐다던데.에메랄드나 루비 같은 게.”......니콜 지슐러:"... ..." (시녀장이 의구심을 가졌던 보석함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그 안에서 사라진 것들이 만일 시신의 곁에 흩뿌려진 보석 가루와 일치하거나, 황후의 심장에 기이하게 박혔다던 다이아몬드와 일치한다면.. 그래서, 이런 비과학적인 일이 대체 누구의 소행이란 말인가?)(그 밖에 일개 기사가 해야 할 일이 없다면 나머지 장소를 둘러보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지을 수 있을 터다. 공연히 들켜 좋을 것 없으니 소리를 죽여 성당으로 걸음했다.)성당으로 가는 길입니다. 문득 심장을 저미는 듯한 추억이 마음을 두드립니다.그 브로치를 받던 날 황후를 이곳에서 마주쳤었죠.그런데… 어, 뭔가 본 것 같습니다.확신할 순 없지만, 모퉁이를 돌아 급히 사라지는 검은 형체 같은 것을요.저 방향은 도서관으로 꺾는 방향인데요.니콜 지슐러:(몸집이 작고 검은 망토를 두른 사람.. 조용히 그를 쫓아갈 수 있을까?)민첩롤니콜 지슐러:민첩 기준치: 60/30/12 굴림: 87 판정결과: 실패 인기척을 쫓아 도서관으로 달려가니, 어느새 인영은 사라지고 난 후입니다.확실히 본 건 맞을까요? 아무것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지나는 사람이 있으면 붙잡아 물어보기라도 할 텐데, 유감스럽게도 복도에는 개미 한 마리 없습니다.하지만 여기가 도서관 1층이라면 바로 저쪽에 열람실이 있었죠. 들어가면 사서 노인이 있을 거예요.니콜 지슐러:(쯧.. 조심한다는 게 심하게 조심해버렸네.. (;;) 미간을 바짝 좁히고 혀를 내두르다 퍼뜩 사서 노인을 떠올렸다. 다시 용모를 단정히 갈무리하고 크흠, 가볍게 목을 울린 뒤 열람실로 향해 사서를 찾았다.)"...계십니까?"사서-노먼 테오도르:....으응? 아, 잠시만. 어디보자.... 기다려요. (도서관 붙박이처럼 취급되는 그 노인은 언제나 야간근무 시간에는 졸고 있었다. 오늘도 예외는 아닌지 갑작스러운 방문객에 느릿하게 굼뜬 몸을 움직여 안경을 찾았다.)아, 오오. 지슐러 경 아닌가? 어쩐 일인겐가?니콜 지슐러:"안녕하셨습니까." (노인의 낯은 거리낌이 없다. 다시 말해 오래토록 마주해도 좋을 편안한 상이었다. 꼭 지금만큼 살벌한 시류에도 살가운 태도를 결코 쉽게 표변하지 않는 성품이 마음에 들었던 까닭일까. 외려 내게 무엇인가를 갈구하는 그녀보다도 이 노인과 마주하고 있노라면 더욱이 부드러운 미소가 만면에 퍼지곤 했다.)"순찰을 돌던 차 여쭐 것이 있어 잠시 방문했습니다. 바쁘신 참이었습니까?"사서-노먼 테오도르:우리 사이에 실례할 것이 뭐가 있다고, 그래. 저녁은 먹고 일하는가 자네? (이 구석에 처박힌, 해묵은 도서관에도 -황제궁의 사람들은 신설된 도서관을 더 찾았다- 소식은 닿기 마련이였다. 나이를 먹어 그나마 좋은 것은, 입을 열때와 다물때를 기가 막히게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기사단의 촉새와는 상반된 성향의 느긋한 노인은 부스럭거리며 이 호위기사에게 건낼 초콜릿을 찾았다.)나야 언제나 좋지. 오히려 나만 좋은것이 아닌가 모르겠구먼, 자네는... ....그래. 좋아보이는군, 그런대로 좋아보여 지슐러.(말을 길게 잇지 않고 담배 연기마냥 휘날렸다. 지금 누구보다 바쁠 그녀에겐 이게 약이였다.)그래서, 뭘 묻는다고? 난 사람은 묻지 않았네만, 하하. (시국에 듣기엔 조금 우스울 지경의 농담을 건냈다.니콜 지슐러:"... ...하하." (그렇기에 건조하게 웃었다. 최소한의 예의였다. 방정맞기 그지없는 제 선배가 이런 농담을 했더라면 입꼬리를 한없이 낮추고 그를 쏘아나 보았을 테다. 이 노인이 나를 이토록 융숭히 대접하기에 나 역시 곱절은 편히 고개를 숙이고 웃을 수 있다. 이 참에 그를 찾아온 건 단순히 운이라 치부하기에는 꽤 질 좋은 만남이었다. 그래, 가볍게 한 숨이나 돌리고 가자는 심산으로.)"본론을 꺼내기도 전에 들키고 말았군요. 사람을 물으러 찾아왔습니다. ...음, 땅 깊이 묻힌 것 말고요. 그러니까 종전에 이곳을 지나가던 이를 보지 못하셨습니까? 멀리서 보아하니 꼭 검은 형체 같았습니다만. 종종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것을 보았다 하는 목격 제보도 간간이 들은 차라 의심스러워서요."사서-노먼 테오도르:조금 전? (노먼은 안경을 고쳐 쓰며 꽤 길게 신음했다. 제 기억력이 아무리 맛이 가기 시작했더라도 오늘 이 곳을 찾은 것은 오직 둘이였다. 하나는 아침에 틀니를 끼는걸 까먹어 지각한 사서 노인, 하나는 제 앞의 날이 잔뜩 선 기사. 고개를 느리게 가로저었다.) 못봤네, 그보다 날이 어지간히 서있구만 자네도. ...요즘 이 곳을 찾지 않아 서운하던 차였는데 뭐라 핍박할 수도 없겠어. 무척 무료했다네.(평소의 그녀였다면 조금 더 여유 있게 웃었을 것이다. 아주 근소한 차이지만, 제 귀만큼은 아직 맛이 가지 않았기에 쉬이 알 수 있었다. 이유도 알았기에 더는 말하지 않고 한 손으로 부스럭거리며 작은 초콜릿을 까 우물거리며 말을 이었다. 늙은 거북이 같았다.)발자국 소리는 못 들었고, 누가 지나가는 것 같기는 했는데... 영, 귀는 아직 쓸만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지?잘 모르겠네. ...그래, 검은 옷은 모르겠고, 어젯밤에 황후 전하를 뵙기는 했네만.(마치 오늘 날이 참 좋지 않느냐 정도의 말투였다.)니콜 지슐러:"걸음이 뜸한 것은 사실이지요. 근래에는 궁 내 공기가 워낙 살얼음인지라 자기 전에도 이불보의 주름 모양새가 폐하께 실례가 될 모양이진 않은지를 먼저 걱정해야 합니다, 어르신.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시류가 잔잔해지면 종종 찾아뵙겠다고 약속 드리죠."(다시 노인에게로 눈을 맞췄다. 가벼운 농조나 조금 더 늘어놓을 셈이었다. 그러다 때가 되면 되돌아가도 좋으려니. 오늘 치는 모두 끝냈다며 무겁게 가라앉은 어깨를 한껏 돌리고 곁에서 쉴 틈 없이 징얼거리는 선배의 뒤통수를 실컷 노려보다 돌아가면 될 터였다. 낯을 정돈하는 법조차 찰나에는 까무룩 잊어 그만 눈을 큼직하게 떠올린 채 노인을 보았다.)"... ...""방금 황후라 하셨습니까?"사서-노먼 테오도르:말 한번 재미있게 하는군, 걱정 말게. 그 분이 노하시면 이 곳의 책장 밑에 숨어 있게나. 황제께서는... 보자, 열 여섯 이후로 이 곳을 찾지 않으셨으니 꼭 10년 뒤에나 자네를 찾지 않겠어? (본인에게도 꽤 속이 쓰릴 농담을 너털 웃음을 지으며 쇼파에 기댔다. 다 낡은 방석이 바람빠지는 소리를 내며 푹 꺼지고, 노인의 웃음도 잦아들 쯤 느리게, 그러나 명확하게 대꾸했다.)...그리 보지 말게, 나는 아직 그정도로 미치지 않았으니.(표정을 보아하니 그리 덧붙여야 할 것 같았다. 확신은 없어도 그리 해주고 싶었다.)니콜 지슐러:"...그러도록 하죠. 이곳이라면 분명 훌륭한 도피처가 되어줄 겁니다. 퍽이나 정 없는 소리지만요."(알고 있는 황제라면 그러고도 남을 테다. 부정하지 않았다. 그리 대꾸하며 놀란 속을 차츰 다듬어 가라앉혔다. 이전보다는 유별나지 않았으나 여직 문장의 말미마다 남은 당혹감을 채 추스르기도 전에 되물었다.)"...하지만 어르신, 보았다고 하셨지요. 헛 것이 아니었다면 그건 대체..."사서-노먼 테오도르:.....나도 전하께서 승하하셨다는걸 알고 있네. 어찌 모르겠는가? 저 나뭇가지 위 새들도 전부 그 소리로 지저귀는 세상에. (잘그락 소리를 내며 사탕이 든 통이 분주히 소리를 냈다. 노인의 손이 잘게 떨렸다. 사탕 한움큼을 집어 대차게 씹으며 말을 다시 이었다. 단 것은 언제나 진정을 불러왔다. 솔직히 잠보다 효과가 좋았다.)...그래서 꿈인지 생시인지를 잘 모르겠네, 정말 모르겠어.이 늙은 놈이 또 헛것을 본건지, 하지만 난 정말 아직 그정도로 미치지는 않았는데. ...모르겠네, 정말- (말을 드문 드문 이어가다 청록색의 눈과 시선이 마주하고, 이내 아주 느릿하게 눈 휘어 웃었다.)...모르겠어, 하지만 나는 분명히 뵈었다네.그게 꿈결이든 환각이든, 잠에 취해서이든 기억은 선명해. 왜, 전하께서는... ....사탕을 좋아하셨는데. 우습게도 정말이야, 이 사탕 통을 나 혼자 비운게 아니란 말일세. 그래서 그냥... (다시 졸음이 밀려오는 듯 숨이 늘었다.)...가시는 길도 못챙겨 드렸으니 이런 것이라도 드리고 싶어서, 아주 매정하게 가시더군. 귀신이라도 좋으니다시 찾으시면 좋으련만. 자네와 그 분 말고 누가 이 늙은이의 말상대를 해주겠나.니콜 지슐러:(그가 과하게 섭취하기 시작한 오색 사탕들로 눈을 내리깔았다. 그렇지, 그의 정보를 쉽사리 의심하지 않았다. 이 바닥, 이 땅, 황제의 손길과 발길은 닿지 않을 지언정 그의 텁텁한 입김은 닿고도 남을 거리에 있다면 모를 리 없지. 정말로 귀가 멀어버린 게 아니라면야. 다시 사탕을 바라본다.)
"자주 어르신과 담소를 이어가셨던가요. 어르신의 나긋한 목소리도, 융숭한 대접도, 사탕도, ...전부 그리워 다시금 걸음하셨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외로우셨을 테지요. 누군들 알지 않겠습니까." (그 즈음 마주 웃었다. 퍽 부드럽게. 내가 어느 때에 버릇처럼 반 박자 늦게 네게 건네던 그 미소처럼.)
"약속 드렸지요. 이 소란이 조금씩 그칠 기미가 보인다면 차츰 찾아뵙겠습니다. 저도 좋아합니다, 사탕." (통 안으로 살그마니 흰 손을 밀어 넣어 사탕 하나를 쏙 빼낸다. 곧 제 입에 훌쩍 던져 넣고는 소리도 없이 굴려 녹였다.)"결국 검은 망토를 쓴 이는 목격하지 못하셨다지요. 오히려 제가 피곤한 탓에 헛 것을 보고 말았던 모양입니다. 훌쩍 날아가던 새의 날갯짓이었을 지도 모르겠네요. 실례가 많았습니다, 어르신.""참, 이곳에서 걸음하기 피곤하시다면 제가 대신 전해드릴 수도 있겠습니다. ... ...그러니까, 황후님께 전하고픈 말씀이라던가. ...그런 것들이요. 사탕일지라도요." (마침 시간이 된다면, 눈을 피할 수 있다면 그녀의 침실에 다시금 걸음해야 할 터였다. 그 틈에 무어라도 하나 얹어 줄 온정 정도는 있었던 모양이지.)사서-노먼 테오도르:음, 음음. ....좋네. ....좋구만. (무엇을 되뇌이는건지 모를 만큼의 나른한 수마가 노먼을 덮쳤다. 나이를 먹는데 어찌 장점만 있겠는가. 노인은 하루의 절반은 잠으로 보냈다. 지금도 그러할 것이고.)
....아, 그러고보니. (흰 손이 사탕을 빼어 가는 것을 멍하게 바라보다 번뜩 정신이 든 듯 부리나케 몸을 일으켰다. 방석에서 먼지가 일었으나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노먼은 뭐가 됐던 이 곳에서 40년을 넘게 일했다. 다른 곳은 다 녹이 슬어 문드러질지언정 이건 멀쩡히 굴러가야했다.)생각해보니 전하께서 생전에 책을 몇 권 빌려가셨는데, 그게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네. 수전노처럼 굴고싶지 않네만... 무슨 책인지 기억이 나질 않아 비품으로 채워둘수도 없지 뭔가. 이런 곳이라도 굴러가긴 해야해서 말일세, 잘 알겠지만-...흠. (몇 알 남지 않은 사탕 사이에서 유독 잘 포장된 붉은 사탕 하나를 꺼내들어 건냈다. 용건을 끝내고 나니 다시 졸음이 밀려오는지 말이 늘어졌다.)...경은 아직 황후궁에 출입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네. 염치도 없이 호의에 많은걸 바라지 않아. 전하께 책 반납만 성실히 해달라고 부탁좀 드리지. (그걸 드리면 그리 노하시지는 않을 것 아닌가. 짧게 웃으며 손을 휘저었다. 말인 즉슨 황후궁 어딘가에 박혀있을 미반납 도서의 반환 요청이었다. 과연, 꽤 귀찮은 일이긴 했다.)니콜 지슐러:(붉은 사탕은 두 손으로 정중히 받아들었다. 한동안 말끔한 포장지를 물끄러미 응시한다. 무엇인가를 연상케 했다. 이를 테면 네 붉은 머리칼, 그것들을 흠뻑 적시던 총천연색 지저분한 날 것의..) "책... 말이지요. 알겠습니다. 중요하지요. 어쩌면 어르신 덕에 책을 구실 삼아 황후를 뵈러 갈 수도 있겠습니다. 미리 감사 인사를 드려야겠군요." (그리고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가 다시 자리에 앉아 마저 노곤하게 수마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몇가지 짐을 얹고, 당신은 도서관을 나섭니다.사서의 부탁을 받아 황후궁으로 돌아간다면, 수사 라인과 순찰선이 둘러쳐져 있지만 당신은 수월하게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들어오고 보니 사람이 아무도 없군요?적막이 흐르는 공간 아래, 문득 황후가 사망한 날 석연찮았던 부분이 떠오릅니다.재조사가 가능합니다.[벽시계, 원형 침대 아래 궤짝, 명화].니콜 지슐러:(한 손에는 포장된 사탕을 강하게 움켰다. 황제가 그토록 노한 것과는 달리 일의 시작인 곳은 이토록 고요하다. 진즉 제 궁에 틀어박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것이니 말은 다 했다만. 초로의 노인이 부탁한 책은 마지막에 찾아보기로 했다. 그것보다 몇 가지 눈에 밟혔던 부분들이 있었다.)(침실로 들어서자마자 부지런히 걸음을 옮겨 명화로 향했다. 부명 우측 즈음에 작은 구멍이 있었을 텐데..)개국 황제 부처의 유명한 일화를 담은 초상화입니다.전과 같이 무언가의 위화감이 느껴지지만...열쇠가 필요한걸까요, 하기사 황후는 멍청하지는 않았습니다.니콜 지슐러:"...찾아봐야할까." (걸맞는 열쇠, 혹은 구멍에 넣어 볼 수 있는 무언가.. 잠시간 명화 앞에 우뚝 멈춰서 골똘히 머리를 굴리다 등을 돌려 곧장 벽시계 앞으로 향했다. 유달리 헐거워 뵈는 시계바늘이라면 뜯어낼 수도 있을 테다. 구멍에 맞을 지는 모르겠다만..)이 벽시계는 유리문을 열 수 있는 장식장과 같은 구조입니다.겉면을 열어 꼼꼼히 살펴 보면 시계의 분침과 시침이 조금 이상하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나사를 자주 조였다 푼 듯이 헐겁고 긁힌 자국도 났네요.조금만 힘을 주면 분침이나 시침을 따로 분리할 수 있을 듯합니다.근력, 혹은 손놀림 롤니콜 지슐러:근력 기준치: 80/40/16 굴림: 7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시계의 분침이 가벼운 소리를 내며 어렵지 않게 분리됩니다.니콜 지슐러:"맞으면 좋을 텐데." (공연히 단조로운 혼잣말을 흘리고 나면 떼어낸 분침을 가지고 다시 명화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분침은 작은 구멍에 알맞게 들어갈까?)분침을 챙겨들고 예의 그 명화로 향하면,가장자리 끝부분이 벽으로부터 약간 들떠 있었죠. 우측 변의 작은 구멍에 시계 분침을 꽂아 넣으면 뭔가 딱 맞물리는 느낌이 들고, 달칵 소리와 함께 잠금장치가 해제됩니다.
문처럼 잡아당겨 열어보는 형식입니다.액자 금고 안에는 다양하고 기묘한 물건들이 난잡하게 널려 있었습니다.아주 낡고,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쁘고, 왠지 뭔가 액체로 잔뜩 젖은 듯이 날강날강한 책 서너 권, 문장이 되지 않는 단어들을 마구 흘려 쓴 종이 몇 장, 보석 조각 등이 보입니다.니콜 지슐러:"... ...?" (나의 황후는 이런 것들을 남몰래 숨겨두었다는 건가? 당최 알아보기조차 힘든 것들을? 무엇 때문에? 혹 정말로 제 숨이나 훌쩍 바쳐 생애 마주한 모든 것들을 저주하자고?)"... ..."(침묵 다음은 행동이었다. 불쾌를 숨기지 못하고 진즉 어그러진 낯이었지만 겨우 안으로 손을 뻗어 그것들을 차근차근 꺼내 살폈다. 처음은 서너 권의 책이었다.)책들은 하나같이 굉장히 불쾌한 느낌을 줍니다. 제목이 쓰여 있지는 않습니다.훑어볼 경우 오컬트 기능+2 상승, 이성치 체크 0/1 판정니콜 지슐러:(구미가 당기는구만?)(책을 크게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팔랑팔랑 살펴보자!)슬쩍 보기만 해도 혐오스러울 정도로 불쾌하고, 소지하는 것을 걸렸다면 당장 파문당할 정도로 악마적인 지식들이 담긴 책입니다.누군가를 저주해 죽이는 방법, 원석이나 귀금속을 이용해 사람에게 깃들었다는 마력을 끌어올리는 방법, 사람을 인신공양해 복잡한 마법진을 만들고 모독적인 존재를 불러들이는 방법…….......니콜 지슐러:SAN Roll 기준치: 52/26/10 굴림: 67 판정결과: 실패 이성-1니콜 지슐러:(숨죽여 내용을 훑었다. 얼마 못가 뇌를 찌르는 아찔하고 날카로운 구역감에 서둘러 덮고 말았지만, 요컨대 그녀가 그녀 자신의 죽음과 더불어 이 모든 일을 꾸몄다는 가정에는 이 책이 요긴하게 쓰였을 거라는 확신은 얻었다. 누군가를 저주하기 위해, 그만한 마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보석함에서 꺼낸 원석, 귀금속들을 사용했을 거라는 것. 그보다 더 수월히 이용하기 위해서는 선심 쓰듯 건넨 선물만한 게 없을 테다. 그러니까, 내 불경한 추측이 들어맞는다면 내가 품에 안고 있는 이 브로치도 언젠가는 내 목을 조르는 매개체가 되고 말겠지.) "... ..."(다음으로 단어가 마구 적힌 종이 몇 장을 꺼내 읽어본다.)첫 장엔 몇 가지 복잡한 수학 공식, 그리고 반복해 그린 오망성 모양이 눈에 띕니다.둘째장은 뭔가를 옮겨 적은 듯한 내용인데, 전부 알아볼 수는 없지만귀금속을 매개로 추악한 마법을 부리거나 저주 의식을 치르는 법, 사람을 본 뜬 인형을 만드는 법 등에 관한 메모입니다.글씨체를 보아하니 단정하고 능숙한 귀족 여성의 것 같네요.다음 장은 다시 오망성 그림, 그리고 넓은 장소에서 별의 꼭짓점에 해당하는 위치마다 제물을 희생시켜 끔찍한 일을 벌이는 마법진 술식에 대한 번역이 적혀 있습니다.그리고 맨 마지막 장엔… 오늘 날짜만이 써있군요.니콜 지슐러:(또 한 차례 침묵과 함께 골몰했다. 오망성. 오망성.. 혹 앞서 5건의 살인사건이 일어났던 장소들을 떠올려볼 수 있을까?)지능롤니콜 지슐러: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65 판정결과: 보통 성공 ......당신은 불현듯 떠올립니다. 이 곳에 적힌 것들이 전부 사실이라면.앞서 받았던 황궁의 순찰지도를 꺼내듭니다. 분명히 불길함의 잔재들이 표시되어있었지요.그렇다면 오늘, 어쩌면…….당신이 마지막 제물의 장소를 알아챘다면, 남은 조사를 뿌리치고 곧 장 그 장소로 달려나갈 수 있습니다. 혹은 남은 조사를 끝마칠 수 있습니다.니콜 지슐러:(성당, 별관, 박물관과 알현실. 오망성이 완성되기까지 마지막 남은 거점은 아마도 '황제궁'. 그리고 적힌 오늘 날짜.. 일이 터진다면 분명 황제궁일 게 분명하다. 정말로 그녀의 소행일까? 제 몸을 바쳐가면서까지 실현한 저주의 마지막 제물인 걸까? 황제와 그의 정부가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겨우 그녀의 마지막 먹잇감이기 때문에?)
(불식간에 뇌리를 스친 생각이 있어 당장 자리를 뜨려 했으나,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 한 가지가 남은 듯해 성급하게 움직이던 몸을 천천히 늦췄다. 침대 아래에 있던 궤짝을 떠올렸다. 그 안에도 무언가 필시 들어있을 게 분명하다. 잠겨 있었던가? 그것까지는 떠오르지 않아 몸을 낮추고 침대 아래에 있을 궤짝을 찾아본다.)침대 아래의 궤짝은 열쇠구멍에 시계 분침을 꽂아넣어 열어볼 수 있습니다.안에는 굉장히 기분 나쁜 냄새가 나는 잿가루와 뼈를 태운 듯한 흔적, 복잡하고 불쾌한 수식을 갈겨 쓴 종이 조각, 반쯤 녹은 다이아몬드 조각, 사람 모양을 본딴 천 인형이 있습니다.그러니까, 이게 다 뭐죠? 대체 황후궁에 왜 이런 게 있나요?아니, 사실 이제는 알고있지 않나요?당신에게 남은 것은 하나입니다. 발이 빠르길 바라는 수 밖에요.니콜 지슐러:(이것도 저주의 매개체임이 분명하다. 더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바라건대 이후 내가 무엇을 하고픈 지 명확하기를 원했다. 그러니까, 내가 그녀의 잇따른 저주를 막을 명분이 있느냐 하는 거다. 시작은 오직 내가 거머쥘 부를 원했다. 그렇기에 원치도 않는 그녀의 호위기사 노릇을 꾸역꾸역 해가며 악다구니로 검을 쥐었다. 여성이라면 무릇 사내의 옆구리에 끼어 사랑이나 질리도록 받다 요절하는 게 전부인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 검 한 자루를 놓치 않겠다고 오만 발악을 해가며. 그래서 지금은? 황제가 언젠가의 시종장처럼 흉물스럽기 짝이 없는 국부를 덩그러니 드러내고 목이 걸려 죽는 꼴이야 제 속은 퍽 시원하겠다만, 결국 내게 남는 것은? 황제의 죽음과 내 몫의 이익이 비례할까? 황후가 죽어버린 지금 내 처지는 빌 붙을 곳 하나 없어 기사노릇이나 이어가며 겨우 벌어먹는 게 고작 아냐? ..그래, 내가 이 짓거리를 알차게 이어가 그녀의 한을 풀어준다면 그녀는? 그녀의 죽음을 없던 일로 만들 순 있나? 피를 토하며 쓰러지기까지도 말이 없다 하였지. 진실로 그녀가 아니었던 걸까? 풀리지 않은 답이 많다. 귀결은 내 처사였다. 결국 또 내 이익이 우선이었다. 가여운 그녀를 어여삐 구슬린다면, 이 저주를 끝내고 그녀를 품에 안아준다면, 그리하면 나는 다시 내 앞으로 떨어질 것들을 탐해도 괜찮은 거야?)"... ...이럴 줄 알았으면 그런 불쌍한 여자한테 빌붙지도 않았어. 보고 있어? ...한심하지. 이제와서 네게 붙은 걸 후회한들 무어가 달라지겠어, 이브."(머리가 아팠다. 내 발이 빠르기만을 바라야 한다고? 그럼, 그래야지. 이제 와서 사람을 광장 너머 너른 정원 뜰의 휘어진 풀포기 취급만도 안 해주는 황제에게 빌 붙어봐야 뭘 더 얻겠나.)"빌어먹을 여자. 끝까지 엿같은 여자. 지긋지긋하게 불쌍한 이브!"(명화 뒤편에 지저분하게 놓여 있던 보석 조각 몇 개를 한 줌 강하게 주워 움킨 뒤 곧장 황제궁이 있는 곳으로 쉬지도 않고 뜀박질했다. 보석 조각을 훔친 까닭은 뭐, 구태여 설명하다면 어딘가에는 쓸모가 있겠거니. 아니라면 내다버리거나 팔아치우면 그만이었다.)[황제궁]황제궁으로 향합니다. 불안감이 심장을 파먹고 목까지 옥죄는 것 같습니다.다시, 비가, 비가 내립니다.동토를 할퀴는 날씨, 음산하게 번쩍거리며 발걸음을 잡아채는 뇌우…….어디지? 어디로 가야 할까요? 황제궁은 너무 넓습니다.기이하게 사람이 없습니다. 수많은 근위병들은 다 어디로 갔죠?동료들은요? 선배들은?황제는?비 내리는 밤에 황제가 있을 법한 곳이라면 어딜까요? 침실?어디든 생각나는 대로 뛰어가 봅시다.당신이 침실까지 뛰어가면 바로 문 앞에서 소름끼치는 비명이 들립니다. 당장 들어갈 수 있습니다.아, 비가, 비가… 질리도록,비가…….……황제의 침전입니다.전부 열어젖힌 창문에서 비가 들이치고 있었습니다. 멀리 황궁을 둘러싼 산으로 낙뢰가 꽂히는 것이 보입니다.번쩍, 하고… 물방울 같은 게, 튀는데,이토록, 뜨거운 것이, 비일 수는 없지 않겠어요…….낙뢰를 걸머지고 반쯤 어둠 속에 갇힌 조그만 인영이 있습니다.차디 찬 바닥 아래 쓰러진 남자는 이제 왕홀도 보주도 쥘 수 없는 어떤 것. 국새나 보관도 더는 그의 영광을 보장하지 아니할 테지요.심장을 크게 꿰뚫어 꽂힌 칼을 타고 황족의 피가 흐릅니다.저토록 고결한 것인데도 도무지 가장 천한 자들의 붉음과 다를 바가 없는……눈이, 눈이 마주칩니다.공중에서 불꽃이 튑니다. 상대가 당신을 알아봅니다.평소처럼 겁에 질려 가라앉은 시선이 아니라, 심지를 가져다 대면 당장에라도 발화점을 폭발시킬 것 같은 안광입니다.음울하지 않은, 진득하지 않은, 차갑지 않은, 황후 같지 않은, 미쳤으되 건강하고 생경하며 살아 날뛰는 격노.어쩌면 그녀가 너무나 기다렸을 문장,오로지 이 순간을 위해 죽지 않고 살았다고 생각할지 모를 문장.꼿꼿이 편 등허리를 벼락처럼 훑어 내리는 작열감에 몸을 떨면서, 그녀가 말합니다.이브 샤를로테:“그래, 나란다.”눈을 마주치는 행위가 촛불과 촛불을 마주 대는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 서늘한 눈초리에 일순 불티가 튀었습니다.뜨거운 빛깔로 갈무리된 성노가 넘실거립니다. 황후는 숨을 죽입니다.그토록 오래 준비해온 말인데도 목이 메어서 제대로 발음할 수가 없었습니다.이브 샤를로테:“내가 황제를 죽였어.”숫제 속삭이는 어조였습니다.튀어 오른 불티가 그녀의 안구를 잡아먹고 혈관을 불사르며 시퍼렇게 몸을 일으켰습니다.회광반조라도 상관없었습니다. 이 낯설고 자유로운 불의 홍수를 그녀는 사 년간 기다려 왔으니까요.방식도 색채도 달라진 화火가, 희열처럼 여기 터지는 순간이었습니다.선택의 시간입니다.니콜 지슐러:"... ...미친년."(예견했던 목전의 참상에 으레 평범한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덜컥 겁을 먹은 것도, 이 제국과 제국에 숨 붙여 살던 만 백성들을 슬하에 두었던 위대한 황제가 처참하고 초라한 시신을 쓰러뜨린 데에 느낄 애통함도 아니었다. 오직 너를 향한 지독함. 지독하리만치 진절머리가 나고 만 끝에 뱉은 건조한 세 음절이었다. 쏟기는 빗줄기가 여간 시끄러운 게 아니라 하마터면 살풋 고백을 읊는 네 목소리가 묻힐 뻔도 했다. 차라리 그랬으면 좋았을 테다. 한쪽 눈살이 바르륵, 경련하듯 튀어올랐다. 이 역시 네가 질려서. 꼿꼿하게 세운 몸이 끊임없이 뿜어내는 지긋지긋한 살의가, 화마가, 조만간 그녀 자신을 동반해 나에게까지 뻗쳐 나를 집어삼키지는 않을지 가늠했다. 그리고 직감한다.)"기어이 바라는 게 뭐야? 너를 업신여긴 것들의 숨과 함께 불타 사라지는 것? 잿더미만 겨우 내려앉은 황폐한 땅덩어리를 내려다보며 깔깔거리는 것? 이제 와서 그들에게 진실로 사랑받고 싶었다며 울음이라도 터뜨릴 참이야, 이브?"이브 샤를로테:(미친년. 건조하고 확고한 세 음절에 헛웃음이 터졌다.조소인지 그저 광기인지 저조차 분간도 가지 않은 메마르다 못해 숨이 넘어갈 듯한 웃음소리가 한참을 이어졌다. 꺽꺽거리며 몇 번을 목 울대를 넘는 추한 소리가 들리고, 제 볼가에 여직 튀어 있는 뜨거운 피를 닦아냈다. 더러운 것, 지겨운 것, 미치도록 갈구했던 것. 발치에 아무렇게나 치이는 꼴사나운 부군의 시체를 걷어찼다. 정말이지, 황후에게는 어울리지 않을 몸 가짐이야. 백작부인이 보았더라면 경을 치겠지. 미친년. 그래, 지금 저는 꽤 기분이 좋았다.)"아아, 니콜, 지슐러.....니콜! 그대는 나를 너무 잘 알아. 그럼에도 무지하지. 내게 이 땅이 그만큼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니? 이제와서 온갖 삿된 것들이 득실거리는 곳을 불사른다고, 내가 발 붙일 틈이라도, 숨을 쉴 틈이라도 생기겠느냐? 어리석긴, 멍청하기는! 그걸 보아 내가 무얼 즐기겠어? 무엇 하나 사랑스럽겠느냔 말이야! ... ....니콜!"(악을 지르듯 찢어지는 목소리로 이름을 외쳤다. 시야가 흐린 탓인지, 이 줄창 내리치는 번개가 앞을 흐려놓은 것인지. 제대로 보이질 않았다. 희끄무레 뜬 눈으로 그저 바라보았다. 너는 정말 끝까지 미련하고 잔인하기도 하지. 첫 문장은 나를 관통하고는, 이 후의 두서없이 뱉는 것들은 전부 거짓, 거짓뿐이다. 차라리 모른 척 하는거라고 해. 아마 너처럼 잔인한 이는 나에게 다신 없을 것이다.)니콜 지슐러:(설령 실오라기 같은 숨이 겨우 붙었다 한들 바닥을 구르는 추잡한 송장이 무엇을 더 할 수 있겠는가. 고작해야 핏대 선 눈깔을 뒤집어 까고 저를 걷어차는 징글징글한 계집년을 고집스럽게 노려보는 게 고작일 것이다. 그게 못내 우스웠다. 겨우 그 꼴 하나를 두고 성에 찰 계집도 아니다. 웃어주자니 여태껏 스스로를 지탱해 온 콧대 높은 자존심이 상했다. 미친 것의 경박한 웃음소리가 흘러든다. 귀 담아 듣지 않아도 뇟전까지 꿰찌르는 통에 눈꺼풀을 사납게 구겨 접었다.)"지금의 당신이 어떤 눈을 부릅뜨고 있는지는 보이는 모양이지? ...그 눈에 담아 사랑스러울 게 있기나 해? 겨울의 흰 정원? 가을의 붉은 장미정원? 여름의 노란 꽃밭, 봄의 흐드러지는 꽃비. 그저 구름 한 점을 올려다보아도 붉겠지. 아주 지저분한 색이길 바라, 지독한 년."(너를 가엾게 여긴 건 사실이다. 그런 네가 허수아비라도 좋으니 버텨 준다면 나 또한 기뻤을 테다. 그 즈음 목울대가 시리게 울렸다.)"네 앞에서 원하던 죽음이 이루어졌지. 나와 궁의 모든 이가 보았던 시신은 결코 네 것이 아니었던 거야. 난 한낱 귀신 따위가 검을 들고 설치며 사람을 죽인다는 이야기는 믿지 않아. 그 다음은? 제물이 부족해 내게 칼을 겨눌 건가? 아님 근사하게 네 목을 올려두고 퇴장할 셈이야?"이브 샤를로테:(잠자코 눈을 감고는 저를 이리저리 찔러대는 말을 들었다. 신기하지, 전혀 아프지를 않아. 심장이 타오르듯 뜨겁게 달아 터져버리지도, 너무 시려 발이 꽁꽁 얼어 부숴져내리지도 않았다. 그런데 왜, 왜. 눈을 다시 떴다. 제 것이 아닌 핏물이 얼굴을 적시고, 그 핏물은 비를 타고 발 아래까지 뚝 떨어져 진탕을 냈다. 그 진탕 위를 미끄러지듯 걸으며 한걸음씩 다가갔다. 제 눈은 흐렸다. 네 말마따나 무얼 보아도 귀하게, 사랑스럽게 느껴지지 않을테지. 그게 어찌 지금뿐이던가? 저는 아주 어릴때부터, 처음부터 그랬다. 날때부터 제 손에 가득 쥐어내지 않으면 패악을 부렸고, 그걸 빼앗기면 분하다 못해 화마가 지배해 몸이 떨리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원래부터 이랬다. 독한년.)"....경, 가슴께가 허전하군요. 왜 제가 드린 브로치는 귀히 여기질 않으십니까?"(그러니까 이 날때부터 독한년은, 날때부터 추잡하고 더러운 년은, 이 진탕이 되다못해 피에 절여진 궁조차 곱게 보이지 않아야할텐데. 참 우습다, 우스워. 지금 이 곳은 공작가의 흰 정원과 같았다. 황후궁의 장미정원과 같았고, 봄내음이 풍기는 분수의 앞과 같았으며 그 날의 밤과 닮아있다. 속이 검은 너는 내게만은 하얗다 못해 빛이 났다. 어쩌다 떨어진 그 것을 가져보니 놓는 법도 모르지, 그래서... 그래서.)".... 마음에 들지 않았어? 내가 준거잖아."(경외하리라 말하던 내가. 이 내가. 빌어먹을 니콜, 지긋지긋한 니콜, 사랑스러운 우리. 사랑스러운 이 곳. 네 물음에 무엇하나 답하기 싫어. 넌 언제나 그랬잖아, 보여주어도 모른척을 하잖니. 거지같게도.)니콜 지슐러:"... ...까닭을, 물으셨습니까?"(안팎으로 범람하는 고요한 광기와 마주 선다. 얄쌍한 두 다리가 저를 향해 걸어오는 모양새는 마치 네가 분노를 양분 삼아 죽은 몸을 질질 끄는 것도 같았다. 그 꼴마저 지긋지긋하다. 주머니를 채운 이물감은 여전했다. 손아귀에 쥔 먼지 쌓인 보석 조각이 아닌, 지난 밤 네가 내 옷깃을 어루만지며 건네주었던 청록의 브로치. 물과는 다른 점도로 뚝뚝 떨어지는 핏물이 사납기 그지없어 쯧, 보란듯이 입천장을 치고 혀를 내둘렀다. 이 땅의 거름조차 되어주지 못할 시신을 넘어 기어이 내 좁은 시야를 가득 채우려드는 몸뚱이를 본다. 희고, 붉고, 검은. 습한 공기가 역겨웠다.)"그래. 까닭을 물었지, 이브. 마음에 들지 않았냐고? 오, 아냐. 이것 봐. 이 찬란한 것. 겨우 나 따위의 놈들은 쉬이 만져보지도 못할 값비싼 보석. 내게는 과분하지만 결코 포기하지도 못하지."니콜 지슐러:(브로치를 꺼내 들었다. 투박한 손아귀 가득 움켜쥔다. 꼭 그것을 산산조각 내어 흐트러뜨릴 것처럼. 하지만 어디 그럴 수나 있을까. 이 지옥 끝에 네가 숨이 다해 스러진다면 나는 이것을 최대한 높은 값에 팔아 내 안위를 챙겨야 했다. 턱을 위로 당겨 들며 웃었다. 아마 진실로 웃었을 테다. 핏물을 뒤집어쓴 네 앞에서 가식은 짐덩이였다.)"난 고작 네 손 따위에 죽고 싶지 않아, 멍청아."(웃음을 거두었다. 온갖 불길한 것들의 온상인 양 너를 노렸다.)이브 샤를로테:(귓전을 누군가 얼얼하게 때리기라도 한 듯, 고막이 찢기는 소리가 들렸다. 시끄러운 잡음이 경종을 울리고, 이윽고 무엇도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해졌다. 환청일것이 분명하지만 이브 샤를로테는, 이 미친 여자에게는, 아주 확실하게 들렸다. 그것은 생에 들은 것 중에서 가장 확고하게 자신을 찢은 말 이리라. 비죽비죽 웃음이 새었다. 벌레를 뱉어내듯 기묘한 모양새로 뒤틀린 입꼬리는 다시 작게 벌려졌다, 닫혔다를 반복하며 입가를 달싹였다. 끊이지 않는 조소를 내뱉으며 그녀에게 바짝 다가갔다. 개같은, 거지같은년. 어찌 내게 이래. 네가 어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사실 알고 있었어. 그래도 너는 내게 이러면 안됐다. 나는 되었어도 너는 안됐다.)"평범한 브로치야. 가져다 팔아 이 나라를 뜨면, 글쎄다. 네가 늙어 죽어 세번은 다시 태어나도 떵떵거리며 살 수 있을만한. 나한테는 별 의미 없는 싸구려지만 너는 아닌. 그런 평범한. ..... .....멍청한 것."(비틀거리며 걸어갔다. 네 옆구리에 언제나 자리하고 있던 검이 눈에 거슬렸다. 칼집을 우악스레 쥐어 사시나무 떨 듯 온전치 못한 힘을 쏟아내 눌러댔다. 팔은 순식간에 감아 네 목에 닿았다. 끌어안은 귓전에 숨이 끊길듯 빠르게 중얼거렸다. 그것 밖에 할 수가 없었다, 처음 느껴보는 이 휑한 기분 앞에서는.)"내가 널 죽인다고? 내가 그들을 죽인다고? 나를 돌보고, 내 앞에서 거짓이나마, 위선이나마, 하하. 그래... 그 거지같은 같잖던 동정을 베풀던 이들을? 멍청한 니콜, 어리석은 니콜, 개같은년. 넌 언제나 맞으면서, 또 틀리는구나.네가 나한테 어찌 이래? 어찌 이러느냔 말이야."(홀린듯 빠르게 중얼거리던 입은 얼굴의 코 앞까지 다가와 눈 하나 깜빡 않고 무언가를 씹어내듯 짖눌린 목소리를 이어갔다.) "내가 왜? 내가 그들을 왜? 오, 그건 정말 보석이였어. 평범했다고. 그들은 또 다른 이들과 달라. 그 시종장과, 내 아랫도리가벼운 부군과, 다르다고. 나는 그냥... ...그냥, 그냥....!"(평범했다. 또다른 이들에게 마지막을 친히 고해줄 보석과는 달랐다. 그냥. 평범했다고. 평범한 애정이며 집착이였다. 평범한 인사였다. 호의였으며 나름의 사랑이라 여겼다. 그걸 너는... 떨리는 동공으로 제 입가를 꽉 물었다. 비린 맛이 났다.)니콜 지슐러:(저 타오르는 눈이 나를 무지하다 말한다. 저 비틀린 입술이 나를 틀렸다 말한다. 어린 내가 어린 네게, 너를 위한, 오직 너를 향한 어울리지도 않을 퍽 살가운 미소를 입안 가득 머금은 채 다가갔을 무렵부터, 네 곁이라는 영광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아득바득 이를 갈고 용을 쓸 무렵부터, 혹은 지금까지도 내 새카맣게 타 문드러진 속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한들 너는 새하얀 만면에 선명한 표정을 내비추지 않으리라 속단했다. 외려 알고 있었던 모양이지. 저 영악한 년이 나를 주물렀다 이 말이지. 결국 이리도 비참한 주제에 말이다.)(허리춤에 엉겨붙은 한심한 손아귀가 마른 억새 같이 흔들렸다. 눈을 내리지 않았다. 어느새 지척으로 다가와 피에 젖어 농도를 달리 한 날숨을 끈적하게 흘려뱉는다. 목덜미가 무거워졌다. 더러워. 가장 처음 든 생각은 역겨움, 뒤따르는 불쾌감, 그리고 조소. 연민. 동정. 결국 내게 넌 끝까지 불쌍한 년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마저도 내게 무엇을 희구하는 양 홉뜬 눈초리를 보라지. 황후의 몸가짐과는 격이 다른 지저분한 단어나 겨우 빚어 뱉는 꼴을 보라지. 네 혀뿌리가 검다. 지독하게도.)"왜?"(결코 몸을 숙이지도, 고개를 기울이지도 않았다. 저 역시 더는 취할 것이 없어 여태껏 부려온 발악들이 수포로 돌아갈까 입천장이 분노로 달게 타오르기 시작했지만 문장은 끝끝내 고요했다.)"모르지 않았잖아. 너 같은 년이 모를 리 없지. ...알면서도 나를 부렸겠지. 이제 알겠어, 이브. 너도 나와 다를 바 없는 지독한 계집이라는 것쯤은."니콜 지슐러:"... ...그럼 다시 말해."(목에 걸렸던 네 팔을 비틀듯 움켰다. 조금 더 지척을 향해 네 몸뚱이를 끌어 당겼다. 살갗에 얹히는 숨이 제법 역했지만 참았다. 해야 할 말이, 들어야 할 말이 있다.)"네가 뭘 원하는지 말해, 이브. 기꺼이 들어주지. 나는 그것이 곧 나를 위한 일임을 알아. 네가 내게 안겨다 줄 것들이 남았어. 비겁하게 도망칠 생각 마.""...꽤 달콤한 이야기잖아. 안 그래?" (그리 잘난 낯은 아니었다. 어쩌면 한껏 어그러졌을 지도 모른다. 너와 함께 불쌍해지고 싶지 않았던 마지막 자존심이었겠거니.)이브 샤를로테:(저는 어릴 적부터 보는 눈이 좋았다. 제 아비가 생전 처음 보는,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혈육이라는 것을 남동생이라 데려 왔을 때에도 그 순진한 어린아이의 눈이 제가 거머쥔 모든 것을 앗아갈 이라는걸 알았고. 아랫도리 가벼운 그 근엄하신 황제는 결코 좋은 부군이 아니란것도, 그러나 곁에 두면 다시 제게 무엇이던 양껏 거머쥐어줄 열쇠가 될 만한 이라는것도. 정말로 다 알았다. 정말이야, 이브 샤를로테는 교활할 지언정 멍청하지는 않았다.제 곁을 꼬리 없는 개마냥 주제도 모르고 알짱거리는 이 흰 아이가, 무언가를 뜯어낼 심산이라는것도, 전부 거짓 위선, 토악질이 나오는 교만으로 무장된 이라는것도, 알면서도 두었다. 그래, 정정하자. 멍청하진 않았지만 미련했다. 그런데 그게 어찌 내 잘못인가? 이 땅 위 두 발 붙이고 살아온 여자들은 다 그렇잖아. 나만 그런게 아니잖아. 나만 눈에 띄게 추하고 약았으며, 더러운게 아니잖아. 저는 그저 남들보다 아주 조금 똑똑했을 뿐이다. 그저 한 발을 더 내딛었을 뿐이며 알면서도 속아줬을 뿐이다. 그게 뭐가 나빠?)".... ....."(입술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달싹였다. 벙어리라도 된 듯 꼴사납게 후들거렸다. 난 알았어, 그래도 받았어. 그걸 어찌 내 칠수 있었을까? 그 흰 정원에서, 오롯이 저를 향하는, 서툴게 잔뜩 꾸며진 애정을, 그 흰 손을, 웃음을. 어린 아이가 어찌.)"네가 들어주겠다고? .... 니콜 지슐러, 오, 사랑스러운 니콜. 그대가 할 수 있는게 대체 무엇이 있을까?"(안겨든 틈새로 체향이 훅 끼쳤다. 언제나 느껴졌던 녹슨 쇠냄새와 흙냄새, 약간의 버들잎향. 제 주인을 닮아 못지 않게 푸르른 체향이 피비린내와 섞여들어 썩 좋은 향은 아니였다. 마음에 들었고, 한순간에 비참해진다.)"나는 이 곳을 떠날거야, 네 앞에서 내 목을 쥐어들고, 그래. 그 칼. 나를 지키리라 명했던 그 칼로 이 지긋지긋한 구두를 신은 발목을 자르고 허리를 졸라오던 드레스를 찢어 발기며 무겁던 목걸이를 끌어내고 피를 볼거야, 나는 떠나고싶어, 니콜, 나는... 정말로...." (끝으로 이어질수록 목소리는 볼성사납게 떨렸고, 마침내는 눈물까지 났다. 역겨워? 더러워? 내가 싫니? 나는...)"도망치고싶어, 도망치게 해줘, 나를 놔줘, 나를 지켜봐, 똑똑히."(가까이 다가온 입술에 피로 범벅이 된 제 얼굴을 부볐다. 살덩이를 둔탁하게 밀어넣고, 영혼까지 빨아내듯 적셨다. 눈물이 멈추지를 않았다. 네가 뭘 하겠어? 그 달콤한 말로, 그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는 검으로 무얼 하겠니? 네가, 내가. 우리가. 나를 데리고 도망이라도 치겠어? 그 니콜 지슐러가? 사랑이라도 해주겠느냔 말이야.그러니까 입 닥치고 지켜봐. 나가서 악을 지르던, 내 끝을 보던, 날 네 기억에 새기란 말이야.이 어찌 달콤하며 비극적인 말이니. 너는 알고 있던거야, 그래서 지금 이런 말을 하는게지. 내가, 내가......'우리'로 도망쳐달라는 말을 너에게 하지 못하리라는걸. 그러니까,)이브 샤를로테: "그냥 나를... 눈에 담아. 끝까지, 도망치는 모습을."니콜 지슐러:(내 눈에 너는 어떠했는가. 한 날은 그저 속이 빈 지푸라기를 엮고 보석을 박아 만든 근사한 허수아비, 한 날은 그래도 송곳니가 제법 자란 붉은 여우, 또 한 날은 더러운 피로 단단히 몸을 적시고 내게 다가와 썩은 혀뿌리를 감히 옭아매는 비겁한 년. 너를 멍청하다 한껏 비난했지만 네가 아둔한 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 반대다. 내가 조금 더 똑똑했더라면, 니콜 지슐러라는 여성이 조금 더 현명했더라면 너를 절벽까지 내몰지도 않았을 것이다.거짓된 사랑을 그럴싸하게 포장해 네 품에 안겨주고, 완벽히 너를 취했겠지. 보장된 미래를 유리공예품인 양 쓸어 안으며 보다 달콤하게 입을 맞췄겠지. 네 입술이 피에 젖어 비린 향이나 진탕 풍기기 전에, 네가 추깃물을 흘려 뱉기 전에, 그 전에 너를 뒷전의 쓸모없는 황제보다 더욱 사랑스럽게 끌어 안아 온전히 품에 가두었겠지. 이가 갈렸다. 어쩌면 스스로의 실수를 비난하며, 대부분은 이기적으로 너를 원망하며.)"그것을 내게 명하는 게 당신의 일이 아닙니까, 이브."(어조를 돌렸다. 정확히는 부득부득 갈리던 이를 가지런히 두어 익숙한 경어를 또박또박 빚어 뱉었다.나는 너의 명을 받들 준비가 되었다. 그것이 나의 위치이며, 직위이며, 나를 위한 일임을 안다. 아프게 쥐고 있던 브로치를 눈높이까지 들어 올렸다. 결코 달갑지 않게 얽히던 말캉한 혀가 검붉게 늘어지는 더러운 것들과 함께 살그마니 멀어지면 나는 놓치지 않고 네 입에 청록의 브로치를 물렸다. 그래봐야 혀 위에 가지런히 얹은 정도였다. 나는 이것보다 훨씬 값어치가 높은 것을 알아. 어때, 그게 네 구질구질한 몫숨값이라고 하면.)"당신이 도망쳐야 할 곳은 따로 있지 않습니까. 말씀드렸습니다, 이브. 당신은 아직 내게 가져다주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내가 쉬이 당신을 놓지 못하는 썩 괜찮은 구실이 되어주지 않습니까."니콜 지슐러:"그 비참하니 얄쌍한 발목은 나와 함께 젖은 땅을 짓밟아 나아가야 해. 네 검게 그을린 허리는 아직 살집이 붙었지. 조금 더 졸라 뽐내봐.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가장 값진 수단이 되어주겠지. 새하얀 목걸미에는 무엇이 어울릴 거라 생각해? 누군가가 너를 향해 건네줄 금은보석이지,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손아귀의 졸림 따위가 아냐."(이기적이고, 지독함을 안다. 네가 내게 무엇을 원하는지도 비로소 알았다. 혀뿌리가 검은 것은 나였다. 가늘게 고쳐 뜬 눈살이 네 낯을 더욱 비좁은 시야게 가두어낸다. 한 팔을 넓게 둘러 네 허리춤을 당겨 안았다. 입이라면 얼마든지 맞춰줄게. 그리 속삭였다.)"얼마든지 담아드리지요, 사랑하는 나의 황후. 다만, 빗줄기에 묻힌 당신의 비참함을 담을 생각은 없습니다. 제게 떨어진 명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옛날도, 지금도,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니콜 지슐러:(턱을 옆으로 틀어 가만 입을 맞췄다. 감정 하나 묻지 않은 마른 혀가 네 좁은 입천장을 부드럽게 간질이고 지났다. 틈 없이 맞물려 비척이던 입술을 침묵과 함께 떼어내는 순간까지도 달큰한 향은 어디에도 배어들지 못했다.)"당신을 지켜야지요.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신다면, 기꺼이 함께 해드리겠습니다, 이브."이브 샤를로테:(사랑하는, 나의, 그 뒷전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어쩌면 제 혀 위에 붉은것과 상반되게 푸르른 무기질이 얹힐때부터 일지도 모르지. 사랑하는 나의 황후. 끝 음절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익숙한 패악이라도 부리려 했지. 그래도 역시 니콜은 약았다. 저 못지 않게 약아 빠졌다. 네가 매끄럽게 입을 맞추고 붉은 것이 투명해지는 와중에 정신이 팔려 더는 악을 지를 힘조차 남게 하지 못할 만큼은. 이미 나간 정신을 빼놓고 시선을 돌릴 만큼은, 내 눈을 가리고, 그 앞을 감길 만큼은. 속눈썹이 파리하게 떨렸다. 삿된 소리가 비린내나는 공간을 가득 채우고 더이상 붉은 끼도 돌지 않는 창백한 손이 어색하게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이브 샤를로테는 정말 미련했다. 그런 여자였다.)"...넌 좀 더 똑똑했잖아 니콜." (눈물로 범벅이 된 눈가가 쓰라려 눈썹을 움찔거리며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을 기대한 것은 아닌지 두서없이 늘어놓는다.)"내가 더이상 허리를 졸라매고, 무거운 진주목걸이에 루비를 걸치며, 장미향이 물씬 나는 향수나 뿌리며 살 수 없게 된 이임을 알잖아. 내가 너의 길이 되어줄수 없다는걸 알잖아. 네 선택은 틀리다 못해 진창에 처박혔고, 난 이미 시들었다는걸 알잖아. ....아, 우리는 서로의 구원이 아닌걸 알잖아. 그렇지 않은 나는 내게 가치가 없잖아."(뱉는 말이 미치도록 썼다. 그래도 멈출 수가 없었다. 발 치에 찐득하게 굳은 피가 쩍쩍 소리를 내며 존재감을 드러내 지금 제 위치를 여실히 나타낸다. 그렇잖아.)"사랑? 웃기는소리. 넌 니콜 지슐러고, 난 이브 샤를로테야. 하하... 정말, 웃기지도 않은 소리. 허리를 졸라매지 않고 만면에 웃음을 띄고 고아하게 부채를 흔들지도 못하게 된 내가 너한테 무슨 의미가 있어서? 무슨 구실이 되어서?"(틀린 말은 아니지. 정말 그리 살아가면 저는 단 며칠도 버티지 못하고 콱 죽어버릴 터였다. 숨통이 막혀서, 예의 그 인형처럼 구멍에서 온갖것을 내뿜으며. 그걸 니콜이 모를 리가 없다, 그는 약았으며, 저 못지 않게 검으니까. 그럼에도 자신은,)"..... ....사실 나는 그 정부가 그리 밉지 않았어, 재잘재잘 떠드는 하녀들이 싫지 않았고, 모른척 나를 내려다만 보는 내 어미가 원망스럽지 않았다."(고해성사라도 하듯, 정말 미친 여자로 보일법한 흰 소리를 늘어놓았다. 멈출 틈 없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난 그녀들이 밉지 않았어, 발 붙이고 발악하는 우리가, 싫지 않았어. 그 잔혹함은 나와 닮아 있었고, 우리였어, 나는 그들을 싫어하지 않았어... 끝없이 이어지는 작은 소리들은 끊길듯 끊이지 않았다. 마침내 허탈하게 미소지으며 뒤돌았다. 번개가 내리치고 모든것을 씻어낼듯 내리는 빗물 아래서 희게 웃었다.)이브 샤를로테:"알면서도 그랬어, 그녀들도 그랬으니, 나도 그랬어. ...지금도 안다. 네가 그런것처럼."
(니콜 지슐러 역시 그런 이였지. 다 알면서도 미련하게 속는 것이다 우리는. 멍청한게 아니지만 간절했고, 기뻤지만 화가 났다. 우리는 모두 추잡스러웠다. 그래도, 그래도...)
"나를 데리고 도망쳐 주겠니? 경, 니콜, 그대. 나를 데리고 진창을 구르겠단 소리인가? ... ...날 사랑해?"(거짓에는 그 나름대로의 향이 있기 마련이다. 머리가 아플 정도의 장미향 향수를 뿌리던 황후는 이젠 정말 지쳐서, 그 거짓된 향이나마 홀려서...)"니콜, 날 도망치게 해줘." (명령이였다. 황후로서의 위엄은 간데 없으며, 그 여자는 더 이상 살구향을 품기던 살내음도, 부드러운 홍조가 도는 비스크 인형도 아니였지만,두 다리로 진창위를 마지막으로 버티고 선 여자가 있다.가녀릴지언정 구두는 신지 않을 발이 있다. 이브 샤를로테가 있다. 그 어린날의 흰 정원처럼, 따스한 겨울을 처음 맛본 교활한 이 만이 남았다.)니콜 지슐러:"... ...똑똑하고, 또 오만했지. 당신이 나를 보기에 어떠했는지는 몰라도."(물론 그리 말했다 하여 웬일로 한 꺼풀 숙이고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인정하는 단계는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오만했다. 흰 칠이 벗겨지고 붉은 털이 뽑혀나갔으며 매끈했던 가죽은 벗겨져 너덜거리는 낡아빠진 인형은 쓰임새가 없다. 목전의 여자가 이후 내게 무엇을 가져다줄 것인지는 먼 시간을 가늠하지 않아도 알았다. 얼마 남지 않았겠지. 기껏해야 뭐가 있겠어. 보석함에서 훔쳐 달아나 때마침 미처 쓰지 않고 남은 보석 몇 조각? 피에 얼룩지긴 했어도 구르기는 여전히 아름다운 눈알? 글쎄다. 그 사이 쉼 없이 머리를 굴렸다. 지금 널 버리고 도망친다 한들 내 인생이 저주에 파묻힌 네 시야에서 완벽하게 벗어날 수 있는 방도가 있을까. 이 지긋지긋한 여자를 끝까지 구슬려 숨이 다할 때까지 곁에 붙여놓는 게 내 안타까운 숨을 조금 더 붙여 영위할 수 있진 않을까. 어쩌면 저 머리칼을 싹둑 잘라내고 다르게 꾸며 낡았지만 그럼에도 제법 반듯하니 예쁜 새 인형으로 꾸며 앉혀놓을 수도 있겠지. 그리하여 나는 너를 바라보며 무엇을 생각했는가.)"혹시 모르지. 당신의 남은 시간이, 살아남은 생명이, 그것을 비틀어 한 방울이라도 나를 적실 것이 꽤 가슴 깊숙이 여운을 남길 지는 아무도 모르지. 후회할 지도 몰라. 당신 같은 사람을 끝내 살려둔 게 내 오점이 되어버린다면 나 또한 화마에 삼켜져 평생 당신을 탓하게 될 거야. ...이브, 이게 그럴싸한 사랑 고백이 아님은 너도 알 거야."니콜 지슐러:(뻐끔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너의 이야기였고, 나의 이야기였으며, 우리의 이야기였다. 악을 지르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 발악이 곧 호흡이 되는 사람들. 그렇게 삶을 증명하고 생명을 향유하는 사람들. 죽음에 이르기까지도 그럴 수밖에 없는 사람들. 우리는 어디에 놓여도 위태로웠고, 그렇기 때문에 버틸 것이 필요했다. 속물적인 이용 가치, 마음이 이끄는 생소한 감정, 운명, 기타 등등의 까닭들에 묶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비참한 억새들. 나 또한 그러했다. 이용 가치가 밑천을 드러낸 계집이라도 잡을 것이 필요했다. 당장의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또 있었겠어. 진즉 죽어버린 황제의 뻣뻣한 시신을 내려다보며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됐겠어. 차라리 나를 필요로 하는, 니콜 지슐러라는 존재를 차마 지워내지 못할 이 미련하고 교활하며 비참하나 영리한 여자를 쥐어 잡아 길이라도 트고자 했다. 살고자 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너를 사랑하지 않아도, 우리가 살 수만 있다면. 아니,)'내가 숨 붙여 살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해.'"너도 살고 싶잖아, 이브." (무색, 무취, 무감. 너는 붉었으나 나는 그렇지 않았다. 너는 처절한 향을 풍겼으나 나는 그렇지 않았다. 너는 끈적하고, 또 간간이 미끄러졌으나 나는 그렇지 않았다. 어쩌면 그렇지 않고자 이를 악 물었을 테다. 나 또한 너와 다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니콜 지슐러:안고 있던 너를 놓았다. 품이 가벼워진다. 한 쪽 무릎을 꿇었다. 고개를 숙였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잿빛 머리칼들이 발치를 향해 쏟아졌다. 가늘게 뜬 눈이 이제는 빗물에 덮여 지저분한 신발코로 향했다. 네 낯이 보이지 않는다. 이제야 조금 홀가분해졌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너를 놓아야 했다. 네게 연민 따위 가지지 말았어야 했다. 네 죽음 앞에서도 당당히 코웃음 치며 다음 먹잇감을 향해 이를 갈아놓을, 최고로 비겁한 새끼가 되어야 했다. 우리가 우리이기 때문에, 우리가 밟는 모든 길의 초석이 모두 '비참'으로부터 시작했기 때문에.)"받들겠습니다, 나의 황후."(종국에도 니콜 지슐러의 편협한 시야에는 정원은커녕 꽃 한 송이도 고개를 내밀지 않았지만, 그 앞에 흰 발을 덩그러니 드러낸 붉은 여자가 있다. 고집스럽게 죽음을 택할 수도 있었겠으나 고작 입에 발린 몇 마디에 홀리기라도 한 양 기어이 도망을, 숨을 선택한 여자가 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살아남는다면. 붉은 여자에게 여태껏 그러하였듯이 연민을 양분 삼아 먹히는 짓도, 붉은 여자를 어떻게든 이용하는 짓도. 거짓된 사랑도, 명색뿐인 신뢰의 무너진 윤곽을 겨우 쥐고 있는 것도.)"... ...나의 이브."-------------------------당신은 함께 도망치기로 결심합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서요.미친 여자가 저기 있습니다, 황제께서 붕어하셨습니다, 그 주제 모르는 여자가 결국 사달을 내었어요……어떤 말도 하지 않고 함께 인간성을 버리기로 합니다.인륜을 저버린 여자, 광장에 매달아 분시해 마땅할 여자, 당장 파문당해 고해성사조차 허락되지 않을 마녀,악마에게 홀린 년, 삿되고 추한, 사람도 아닌…….그러나 일이 이렇게 되기 전에는 그녀도 꿈꾼 것이 있었습니다.반려라는 사람과 사랑하는 것도, 모두가 우러르는 황후가 되는 것도 아니었죠.여기서 죽고자 결심하기 전에, 비천한 목숨으로 눈부시게 악독하고 저주스러운 것을 불러내려 들기 전에,그리하여 황가에 가장 추한 것들을 전시하려 하기 전에요.제일 귀한 제물인 황제를 바쳤으니 이제 오망성이 완성되었습니다.남은 것은 부름을 요청하는 자의 피, 자신의 피,그것만 있으면 되는데,이날이 오면 응당 볼품없는 심장이라도 갈라 올리려 했는데…….바닥에 점점이 얼룩진 피웅덩이를 밟으며 여자가 다가갑니다.떨리는 손으로 당신의 어깨를 짚었다, 무너지듯 무릎을 꿇었다.별빛으로 반짝이는 보관을 썼을 때에도, 제국의 달로써 칭송받던 때에도 가지지 못했던 고귀나 권위를 비로소 가지게 된 악마가 여기 있습니다.황후도 공작 영애도 아닌 여자만이 온전히 여기 남아서,어쩌면 다섯의 목숨을 바치고 황제를 죽여 바로 당신을 얻은 채로.당신은 반드시 후회할 겁니다. 자비로운 신조차 받아주지 않는 삶을 살게 될 겁니다.산 자로되 산 자가 아닌 것처럼 살면서 악마와 손잡은 자신을 파먹을 겁니다.그래도, 당신이 괜찮다고 한 마디만 해준다면 이 여자는 믿어 버릴 거예요.손을 잡고 함께 지옥으로 가려고…….그러니 떠납시다.아침이 오기 전에 떠나요!복도에는 우스울 정도로 아무도 없습니다.좁은 구두를 신고 조심스럽게 드레스 자락을 끌던 여자가 있었습니다.그 여자, 그 미친 여자가 달립니다.타다다닥, 바깥의 빗소리를 재연하듯 맨발로 복도를 질주합니다.당신의 손을 잡고, 새벽을 사르는 여명을 향해…….당신이 너무나도 잘 알다시피 이 여자는 돌아 버렸고, 함께 도망쳐 버린다면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습니다.그런데도 이 작은 손을 놓지 않고 두 사람은 황후궁으로 달립니다.마차를 부를 것입니다. 황후의 문장도 황제의 휘장도 달지 않은 짐마차를 탄 채 광증 어린 자유의 세상으로 갈 겁니다.그렇게 되고 말 겁니다.숨을 크게 들이킵니다. 싸늘하게 얼어붙은 아침의 첫 공기가 폐를 감쌉니다.들키지 않고 빠져나갈 수 있을지 없을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이대로 도망치면서 누굴 또 죽이게 될지 모르죠.그렇다고 해도…….여자가 한 손으로 눈물을 닦았습니다. 어딘가 망가진 사람처럼 계속해서 눈물이 흘렀습니다.남의 피가 섞여 분홍색으로 굴러 떨어지는 눈물을 눌러 훔치며 달렸습니다. 달리면서 말했습니다.쭉, 나는 이렇게 하고 싶었어,어쩌면 당신과 단 둘이. 보석도 무도회도 없는 곳으로 떠나는 거야…….그리하여 이곳에, 도덕도 양심도 왕관도 전부 저버린,사람조차 아닌 그저 둘이 서 있게 됩니다…….……봐! 요정처럼 순수한 아가씨, 저토록 사랑스러워 이름마저 그럴 테지.복중에서부터 연약했을 것이고, 자라나 사뿐사뿐 걷던 날에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신부로 클 게 분명했겠지.성벽 너머 치열한 온도, 호쾌하게 들판을 달려 나가는 말발굽 소리, 가질 수도 없고 욕심내서도 안 되었을 일들을 덜고 나면 남는 것은 백합 한 송이뿐. 숨막히게 아름다운 그 아가씨.그러니 당신도 고민해 보자, 왜 내게는 한 줌 봉오리만이 쥐어졌을까?나의 반려는 세상을 열었다는 신화 속 영웅의 이름으로 불리는데, 모두가 장차 한몫은 해내야 한다는 서사를 부여받으며 태어나잖아.나는 이제 어여쁘기만 한 건 싫어.들불 속을 맨발로 달리는 여자가 되고 싶어,잔인한 바람과 칼날처럼 핏줄을 저미는 공포를 느끼고 싶어.내게도 분노가 있어,여과 없는 화火가 있어…….END 1. 새벽을 사르는 불꽃-------------------------엔딩BGM으로 쓴 노래는 영화 아가씨의 그 씬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KlGcPF4lZg&list=PLkQ_1z5Iqclvebl-9tZczDC7qbIEFVHNJ&index=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