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온지 카오루:......(아직 통증의 여운이 남은 듯한 착각이 들었다. 아무도 없이 휑한 공간에 어쩐지 위압감이 느껴져 괜히 큰 소리로 욕을 내뱉었다. 뭐야, 대체?!) ...씨발.......... (평균 성인 남성의 키를 한참 웃도는 딱딱한 침대에서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낯선 공간에서 오는 찝찝함에 괜스레 애꿎은 이불을 뒤적였다.)
이불은 무늬 하나 없는 아주 얇은 재질입니다.
이불이라 부르기에도 민망할 정도의 두께감으로,
적당히 그 쓰임새만을 위해 가져다놓은 커다란 헝겊 따위에 가깝습니다.
다시 보아도 이 침대는 높이가 꽤 있습니다.
밟고 올라 선다면 천장을 쉬이 짚을 수 있는 정도입니다.
사이온지 카오루:........(손가락을 움찔거리며 한참 이불을 사부작거리고 있자니 기묘한 현실감이 들었다. 여기가 어디지? 라는 원초적인 본능에 가까운 질문과 동시에 찾아온 것은 당연하게도 공포였다.) 나 왜..... (여기가 어디냐고, 씨발! 나 왜 여기있지? 한참 전에 스치고 간 두통이 다시 찾아오기라도 한 듯 끔찍한 침묵 속에서 얼굴을 감싸고 주저 앉기를 잠깐, 이내 다리를 움직였다. 일단 나가자... 나가서....) 소독약 냄새 한번 더럽게 독하네....(열릴까? 열려야하는데. 철제 문 앞에 서서 문고리를 덜컹거려본다.)
사이온지 카오루:..........(철제 문이 단단히 담겨있단 사실을 인지한 후부터 쭈뼛 소름이 돋았다. 뭐야....긴장감을 증명이라도 하듯 침삼키는 소리마저 죽인 채 몸을 움츠렸다. 정체불명의 소리는 불안감을 증폭시키기만 했다. 섣불리 움직일 용기가 나지 않는 듯 문에 귀를 더 가까이 댔다. ....벌레? 사람?)
사이온지 카오루:쾅!!!! 씨발... 씨발... 씨발.....! 문 열어! 문 열라고! 아무도 없어?! 여기요! 여기 사람있다고! 개새끼들아! 뭐하는 짓이야! 이 변태새끼들! 문 열어!!!!!!!! (귓가에 벌레가 들어가면 딱 이런 느낌일까? 공간을 압도하듯 가득 메운 저 성가신 소리에 이성은 빠르게 끊겼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닫힌 것을 확인했던 철제문을 미친듯이 발로 차고 두드렸다.)
마치 이마저도 당신에게는 자연스러운 수순이라는 듯,
빠르게 끊어진 이성은 곧 목표 없는 폭력으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단단한 철문은 조금의 흔들림도, 조금의 흠도 없이 자리를 묵묵히 가로막을 뿐입니다.
너머에서 들려오는 응답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저 끔찍한 벌레의 날갯짓 소리만이 계속해서 반복됩니다.
계속해서.
사이온지 카오루:씨발.....개새끼들아... 문.... 문열라고.....! 나.... 여기 사람 있다고....! 내 말이 안들려...?! 야!!!!!!! (굳게 닫힌 문 앞에 숨이 턱턱 막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이 장소는 뭔가... 그래, 뭔가 불길했다. 낯선곳에 대한 공포? 그런게 아니라 조금 더....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회전시키며 어떻게든 다른 출구를 찾기 위해 차오르는 숨으로 빠르게 눈을 굴려댔다. 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 시야가 핑 도는듯한 착각이 이는 순간, 그제서야 눈에 들어왔다. 제 팔을 덮은 얇은 거즈가.) ...이건 또 뭐야.....?
병원 치료 끝에 흔히 볼 수 있는 거즈보다는 사이즈가 조금 큽니다.
거즈를 뜯어내자 몇 가지의 흔적들이 보입니다.
촘촘하게 난 주삿바늘의 흔적,
그리고 살점이 조금 떨어진 흔적입니다.
사이온지 카오루:.....뭐야?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살점이 떨어진 흔적과 주삿바늘을 본 뒤 누가 가위로 뚝 잘라내기라도 한 듯 모든 사고가 정지했다. 기억이 안난다. 기억이 안난다. 기억이 안나는게 문제다. 이런걸 기억 못할리가 없다. 나는 대체 왜....?) 다쳤...었나? (멍하게 중얼거리며 뜯어낸 거즈를 구기곤 주삿바늘의 흔적을 매만졌다. ......그런데,) ......누가... 누가 한거지? (주삿바늘 좀 맞췄다고 살점이 뜯길리가 없다. 문득 스쳐간 그 생각에 끔찍한 침묵이 다시 찾아왔다.)
사이온지 카오루:...........(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이미 정지한지 오래인 사고는 원만하게 흐르질 못헀다. 태엽이 다 닳은 목각인형처럼 삐걱거리며 몸을 일으키고는 난데없이 힘껏 뛰어올랐다. 물론 어림도 없었다.) ......아, (그러고보니까..... 불안하게 흔들리던 눈빛이 겨우 확신을 잡아챈듯 시선을 침대로 옮겼다. 높이가 꽤 됐던 것을 용케 떠올리고는 침대 위로 올라서서 환풍구와의 거리를 가늠했다.)
이동식 침대의 높이 덕에 환풍구까지는 거뜬히 손이 닿습니다.
혹시나 싶었던 마음이었는지 껑충 뛰었던 행동이 우스워질 만큼이나요.
환풍구 뚜껑은 조금의 힘만으로 쉽게 열립니다.
기어서 이동한다면 사람 한 명쯤은 들어갈 수 있을 법한 구멍입니다.
사이온지 카오루:......됐... 됐다, 됐어.....!(이 방에서 정신을 차리고 난 뒤 처음으로 긴장이 탁 풀렸다. 나갈 수 있다, 이 거지같은 곳에서 나갈 수 있어....! 한가지 사실로 머리가 가득 차며 지체 없이 환풍구에 몸을 구겨넣었다. 누가 보면 꼴사납다고 할 법한 모습이지만 그딴걸 신경 쓸 때가 아니였다. 기는게 뭐야, 나갈 수 만 있다면 별 추잡한 짓이라도 다 했을테니까.)
환풍구 안은 어둡고 퀴퀴한 냄새가 진동합니다.
먼지가 한 가득 쌓여 있는데다, 거미줄도 상당합니다.
조금만 움직여도 옷자락에 거미줄이 덕지덕지 엉겨붙습니다.
어디선가 파르릇, 스슷, 식, 하는 벌레 기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환풍구를 통해 기어가는 시간은 마치 영겁의 시간만 같습니다.
한참을 포복하다보면,
저 앞으로 조금씩 작은 빛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밖인 걸까요?
사이온지 카오루:.......(어두운 공간에서 몸을 구기고 있던 탓에 눈을 찡그리며 조금 더 기어 나갔다. 밖인가??)
사이온지 카오루:.......아무도 안 사는건가? 주인도 없는 것 같은데... 씨발, 이딴 공간에 대체 누가 기어들어오겠냐고, 어떤 새낀지 진짜.... ....(온통 콘크리트 벽으로 꽉 막힌 공간이지만 시간대를 가늠할 수 있을 정도로는 하늘이 보였기에 맥이 탁 풀렸다. 동시에 아직 완전한 출구가 아니하는 생각에 버릇처럼 아무도 듣지 않을 욕을 내뱉으며 주춤 주춤 복도를 가로질러갔다.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 듯한 건물의 외견이 의문스럽기 짝이 없었지만 원래부터 없던 생각을 해봤자 답이 나올리가 없었다. 객관화가 잘 되어있는 쫄보 한명이 복도를 가로질러 건물 앞 철제문에 멈춰섰다. 이 문을 열면.....) 제발 출구여라... 제발... 제발... 제발...........출구기만 하면 절이든 교회든 어디든 다닐테니까.......!
사이온지 카오루:..... ..........(이쯤 되니 답지 않게 침착해졌다. 그러니까.... ........분명 어디선가 방영하고 있을 젠장맞을 공포영화에서 가장 먼저 죽는 등신같은 엑스트라가 딱 이꼴이겠지. 산넘어 산, ......엎친데 무슨... 무슨 격.........여튼. 좆됐다는거다.) .......별...... 개같은.......(허망한 걸음으로 어둠 속을 헤집었다. 여기서 더 나빠질 수가 있을까? 배가 고픈것도 같고.... 당이 떨어진것도 같고....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멍청하게 손을 휘적거리며 무엇이든 뒤적였다.)
사이온지 카오루:흐음..............(보니까 저게 출구 같은데. 출구 아님 뭐겠어? 여기서 더 좆되는건 사양이라고. 어찌됐던 문 비슷한 것을 발견하고는 생각할 여유 정도는 생긴 듯이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뭔가 내리칠거... 뭐든 여차하면 도움이 될만한... 튀는데 도움이 될만한거.... 방망이? 뭐 그런거... 있으면 좋을텐데. '진짜' 출구로 판단되는 문을 발견한 순간 조급함에 거리낄게 없어진듯 부산스레 짐을 헤집었다.)
젠장... 나무냐고~(뒷목을 벅벅 긁고는 아쉬운대로 방망이를 집어들었다. 여차하면 뭐 하나는 후려치고 부러지든 하겠지.... )나무젓가락도 잘 안부러지던데... 뭐.... 괜찮지 않나...? 그래....... 음. (고립된 상황에 길게 생각을 이어나가기 귀찮아 진듯 탈출을 행한 갈망만이 남은 멍청이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또 철문이야. 나가기만 하면 철문 트라우마 생길것 같네, 씨... 별.... ........열리겠지? 문득 스쳐간 불안감에 몸이 그대로 굳으며 그제서야 좁아졌던 시야가 넓어졌다. 눈에 들어온건, 철 문 옆 스위치.)
평범하게 생긴 스위치입니다.
...눌러볼까?
사이온지 카오루:..... ........아~ 잠깐. 나 이런거 진짜 싫다고.......! 아...... 아~ 제기랄! (눌러보는게 맞는건가? 눌렀다가 뭐.... ....뭐.... ....뭐가 나오면 어떡하지..? 그러니까 아무튼 나오면 안되는거... ....그런데 스위치는 누르라고 있는거잖아? 아니, 근데 생각해봐 사이온지 카오루. 네 판단으로 움직였을때 좋은 결과가 나온 적 있냐? 환풍구로 꼴 사납게 기어나온 결과가 여긴데? ,,,,아~ 이런......) 씨발......(모르곘다. 기껏해야 방 하나 더 생기는거겠지. 누르라고 있는거고, 그러라고 만든거라고 스위치는. 이딴 좆같은 곳 만든 놈도 그정도 상식은 있을거라 믿는다. 눈을 질끈 감고는 심호흡을 한번 했다, 지나치게 긴장한 손이 머쓱하게 스위치를 눌렀다.)
스위치를 누르자,
...
...
...
깜빡
어두웠던 창고에 불이 들어옵니다.
환합니다.
사이온지 카오루:............하, 그래.... 스위치를 키면 보통 불이 들어오지.... 상식이 쓰잘데기 없는데서만 있는 새끼네 누군지 몰라도.... (반짝, 하고 들어온 불빛 아래 잔뜩 쫄아있던 제 모습이 비참한듯 헛웃음을 들이켰다. 겨우 되찾은 불빛에 그제서야 방 안을 살펴볼 생각이 들었다.)
사이온지 카오루:.... ...... ...............뭐야? (멍청하게 눈을 깜빡이는 수 밖엔 없었다. 손에서 느껴지는 익숙한듯 낯선 질감이 이토록 이질적이고 소름이 끼칠 수가 없었다. 부러진 나무의 결이 이렇게 기분 나빴던가? 배터리가 다 된 다 낡아빠진 손전등이 이렇게 소름이 끼쳤던가? 몰라, 그딴거 알게 뭐야. 기억이 안나는데 내가 어떻게 아냐고. ....뭐야?) ....뭐냐고......(멍청한 소리를 다시 중얼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뭐가 있었지? 아니, .....뭐지? 뭐가 있지 여긴?)
온통 쓸모라고는 없어 보이는 잡동사니들이 전부입니다.
산을 이룬 쓰레기들 뒤로 유스러울 만큼 많은 시멘트 포대가 보입니다.
공사현장이라도 되는 걸까?
사이온지 카오루:.....시멘트.... ....... ......아. (뜬금없이 쌓여진 시멘트를 보고는 별 감흥 없이 이어진 외마디 말에 되려 자신이 놀랐다. 왜 당연한 것처럼 반응하는거야 난? 야쿠자라도 있단 소리 아냐 저거? 아니.........) ...됐다, (혼란스럽다. 일단 나가야겠어. 부러진 야구방망이를 아무렇게나 내던지고 출구로 보이는 것을 찾아 헤맸다.)
출구라고는 정면에 난 문 뿐입니다.
정말로 바라는 '출구'인지는 불명확하지만요.
혹은 들어왔던 문 그대로 돌아나가는 것도 어쩌면 '출구'일지도 모르겠네요.
삭막한 정원이라도 좋다면요.
사이온지 카오루:(아, 문이다.) .......문이네. (홀린듯 손잡이를 돌리다 생각했다. 이건... 입구인가?) ........일단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면 되곘지, 그래, 나가자. 나가서............... (생각은 그대로 스쳐지나가 증발했다 그대로 문고리를 마저 돌리곤 문을 열었다.)
목을 답답하게 덮은 검은 티와 그 위로 걸친 하얀 가운, 손끝마저 단단히 감싼 검은 장갑.
당신과는 일견 보아도 다른 복장.
이 휑뎅그렁한 건물에 또 다른 사람이 있을 줄은요.
얇은 눈매를 찡그린 채 당신을 관찰하던 남성이 곧 입을 엽니다.
오묘했던 표정도 지금은 제법 옅은 미소를 보입니다.
■■■:... ...이야, 깨어났을 줄은 몰랐네. 한참 찾았잖아~. 귀찮게 자리에 있지 뭐하러 기어 나온 거야? 여기까진 또 어떻게 왔고~... ... (가느다랗게 찢어 접은 눈매로 조용히, 또 느리게 네 꼴을 위아래로 찬찬히 훑다 감흥도 그것뿐이라는 양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도 머리가 제법 굴러가는 모양이야? 아니면 뭐, 무식하게 이동했을지도 모르겠네. 그것도 나쁘지 않지. 멍청하고.
사이온지 카오루:........당신 뭐야, 나 알아? (황망하고 온통 처음보는것들 투성이인 건물 안, 기억도 안나는 일들, 그 중에서 자신을 안다는것처럼 구는 인간에게는 당연히 의심부터 들 수 밖에 없었다. 안타깝게 떨려오는 손을 애써 주먹을 쥐어 감추고는 상대를 노려보았다.)
■■■:저런... ... (그 꼴 또한 가늘게 접힌 시야에 담아 묵묵히 응시했다. 위로 휘어뜨린 얇은 눈썹은 일견 안타까움을 비추는 듯도 했고, 한편으로는 더없이 목전의 상대를 깔보는 것과도 같은 모양새다. 장갑이 끄트머리로 제 턱을 가볍게 건드리며 눈을 굴렸다.) 흐음. 안다고 해야 하나, 모른다고 해야 하나. 주관적인 정보와 객관적인 정보가 있다면 넌 어느 쪽을 선택할래? ...아! 바보한테는 너무 어려운 질문이었나~?
사이온지 카오루:......처음 보는 상대한테 대뜸 바보라니 뭐 이딴 싸가지 없는 새끼가.... ......아니, 처음 보는게 맞냐니까? 질문의 의도를 몰라? 좆같은 건물 안에 있는 놈까지 좆같을게 뭐야... (주관적인? 객관적인? 진짜 뭐하는 놈이야 이거? 뭐가 됐던 사실 아쉬운건 자신이긴 했다. 그 부분이 상당히 자존심이 상한 나머지 말이 곱게 나갈 예정은 앞으로도 없었다. 난 아는게 하나도 없고, 저놈은 뭘 아는 것 같고... 그냥 때려 눕혀?) ..... .....꼴 보아하니 샌님같은데 내가 머리좋은 샌님들하고 상종하면 알러지가 생기거든, 거, 뭐냐 .... 주관적인게 뭔데? (아 씨발, 진짜 싫다...멍청한 놈.....그냥 여기서 갇혀 죽는다고 했어야지, 사이온지 카오루! 자신에게 극심한 혐오감을 느끼며 보다 원초적인 질문을 던졌다. 때려 눕히기엔 체격이 꽤... .....아무튼 짜증났다.)
■■■:그 말 고스란히 돌려줄까? 처음 보는 상대한테 대뜸 욕이라니, 뭐 이딴 싸가지 없는 멍청이가 다 있담. 신기하지? 누구는 이렇게 똑똑하게 사는데, 누구는 저렇게 멍청하게 살기도 하고. 환경이라는 게 중요하긴 해? ...뭐, 지금 중요한 말은 아니지만. (네가 어떤 태도를 취해도 이쪽 역시 좋은 말로 심지 굳은 태도는 여전하다. 어느 쪽도 쉬이 굽힐 의사가 없음은 분명했다. 가운 주머니에 양 손을 찔러 넣고 흠, 버릇처럼 짧게 목을 울리다 마저 부드럽게 뻐끔거렸다.) 그래, 그래. 이해 못할 줄은 알았어. 처음부터 네 뇌한테 크게 기대한 것도 없었고 말이야.
그러니까 모처럼 친절하게 설명해줄게. 어때, 좋은 사람이지~?
서두를 올리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어볼까? 이번 질문은 네 수준에 맞춰 아주 간단하게 정리해줄게! 네가 지금 가장 궁금한 게 뭐야? 내 정체? 아니면 이 시설의 정체?
사이온지 카오루:(좋은 사람은 염병..........꼴에 사붓한척 구는 꼴이 역겨워 감출 생각도 없이 우웩, 하고 헛구역질을 하는 시늉을 했다. 못배워 쳐먹은 놈인거 뻔히 아는 놈 앞에서 예의 차릴 생각 이쪽도 없거든? 뽑아먹을대로 뽑아먹고 빨리 튀어야겠어. 머리는 안돌아가도 제 직감은 꽤 훌륭한 축에 속했다. 그러니까 저놈은.... 어쨌든 미친놈이다. 미친놈인 것 같았다. 여태까지 바닥쳐온 제 인복이 그 사실을 증명할 것이다. 저놈은 미친놈이다. 저 봐 저거, 웃는거. 흰 가운을 입은 놈은 대체로 미쳐있다. 편견 맞다. 그리고 멍청이는 편견을 사실로 받아들이기 마련이지. 제 앞의 미친 인간을 샐쭉히 바라보고는 아니꼬운듯 본론을 툭 던졌다.) ......뽑아먹고 튈 놈까지는 안궁금해, 후자로 말 해봐.
■■■:세상에... ...역겹게 생겨서는 생긴 것만큼 구네. 일단 나도 사용하고 있는 시설이거든? 주의 좀 부탁해, 멍청이 씨? (한 쪽 눈썹만을 삐뚜름히 틀어 구기는 모양새가 꼭 너만큼이나 가감없는 혐오감을 드러냈다. 그러다 다시 입꼬리를 죽 올려 웃었나. 누구 말마따나 미친놈처럼.)
여긴 외곽 지역에 설립된 연구소야. 연구소 내에는 오직 너와 나, 안타깝게도 우리 둘 뿐이고, 연구소의 출입구는 바깥에서 봉쇄됐지. 어째서일까? 답은 간단해! 현재 바깥 세상은 인류가 해결할 수 없는 바이러스가 창궐한 상태이기 때문이지. 위험하잖아~. 이 연구소의 설립 목적 역시 그 망할 바이러스를 연구하기 위함이었지만 글쎄... 나는 이 연구에 굉장한 흥미를 가지고 있지만 정부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지. 이 연구가 불가능하다 판단해서 연구소를 막아두는 것으로 정부는 행동을 다 했어. 이것도 알기 쉽게 설명해줘?
짜잔. 네가 뽑아먹느니 마느니 했던 내가 앞으로 너와 펴엉생, 여기에 갇혀 지내야 한다는 거지.*
사이온지 카오루:..........씨발, 뭐, ..... 뭐? .......구라치지마 미친새끼야! 이거... 이거, 그래. 이거 뭐 그 재미도 없는 몰래 카메라 티비 쇼 뭐 그런거야? 야, 대단하다. 존나 대단하니까 이제 그만 해. 다음부터는 시나리오좀 그럴듯 하게 쓰고. 수고하셨어요, 예? (얼굴의 낯빛이 참 빠르게도 붉어졌다가, 파랗게 질렸다가, 노랗게 뜨고는 마침내 검게 가라앉았다. 대체 뭘 찾는지 씨씨티비가 있을 법한 사각지대의 허공을 한참 둘러보며 헛웃음을 치더니, 이내 자리를 부산스레 돌아다니며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우뚝 멈춰선 뒤, 그러고도 한참을 적막이 일다가 겨우 한마디를 내뱉었다. 풀린 동공이 애써 형태를 유지하려는 듯 떨렸다.) ........거짓말도 새끼야, 그럴듯하게 쳐야지 .... ......기억도 안나거든? 등신아... .......
■■■:... ...손거울이라도 가지고 다닐 걸 그랬나? 네 쌍판이 꼭 오랜만에 보는 신호등 같아서 엄청 웃겼는데, 방금. 아니... 조금 역겨웠으려나. 안 보여주는 편이 나았겠다. (어디 끝내주는 농담이라도 한 사람처럼 하하 웃었다.) 마음대로 생각해도 좋아. 네가 백날 되먹지도 못한 머리를 신명나게 굴려봐도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을 테고, 어느 것 하나 네가 바라는 대로 굴러가지도 않을 테니까. 그러니 나도 내가 해야 할 말이나 마저 해볼까? (여전히 가운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삐딱한 자세로 습관처럼 나지막한 웃음을 낮게 흘리며 말을 이었다.)
그리하야 나는 이 연구를 위해 연구소에 보내진 비감염자 연구원, 그리고 넌 아직 죽지 않은 바이러스 보균자.야. 즉, 내 연구과 실험의 대상이 너라는 거지. 연구가 완전히 종료될 때까지는 이곳에서 나갈 수 없어. 앞서 말해줬듯이 정부는 이 연구소를 자기들 멋대로 폐쇄하는 걸로 행동을 다 했으니 연구 종료를 알린다고 해서 나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어디 보자... (장난스레 오른손을 빼 손가락을 하나씩 접는 시늉을 해 보인다.) 연구를 시작한 지는 1년 정도가 지났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연구가 끝날 때마다 네 기억이 사라지던걸. 지금 기억이 없는 것도 그것 때문일 거야. 내 탓은 하지 말아줘~? 네 기억 따위는 처음부터 내 알 바가 아니란 말이지. 사라지든, 말든. 마지막 연구로부터는 한달 정도 지났던가... 네가 오래 잠들어준 덕분에 나도 꽤 쉬었지 뭐야.
사이온지 카오루:뭔소리야........(손가락을 하나씩 느릿하게 접어드는 그의 행동에 다 풀린 눈동자가 위 아래로 움직임을 같이했다. 인내심이 썩 좋은 편은 아닌지 손가락 반절이 다 접히기도 전에 들려온것은 고함 섞인 신음소리였다. 깨끗하다 못해 텅 비어있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흰 복도에 낯선 목소리가 웅웅 울렸다.)
뭔소리냐고 씨발!!!!!!!!! 개 좆같은 소리 집어 치워, 그딴 소름끼치는 농담 그만하라고, 내가 지금 상당히 여유가 없거든? 말마따나 기억이 안나서 훼까닥 돌 지경이라고, 알아들어?! 바이러스고 나발이고 난 듣도보도 못했고, 기억도 안나고, 믿기지도, 아니... 사실이 아닌걸 알 정도로는 멍청하지 않다고, 다 집어치우고 여기서 내보내, 당장. 가둔게 너라면 당장 날 빼내라고 이 미친새끼, ...잠깐.
(고함인지 하소연인지 모를 말들이 짧은 새에 속사포처럼 내다 꽂혔다, 여유가 없다는 말은 사실인지 어느새 틀어쥔 멱살이 그 갑갑한 목티를 늘어나게 할 정도로는 힘이 과하게 들어가다 못해 벌벌 떨리고 있었다. 미친듯이 내뱉던 말이 뚝 끊긴 것도 순간이였다. 틀어쥔 멱살 위 얹힌 제 손의 자국과 마주한 순간.)
씨발... 이... .....이 씨발, 너, 이 주사자국, 네가.
(황당함과 경악으로 말을 잇지 못하고 더 미친듯이 떨리던 동공도, 정해진 순서인듯 어느 순간 뚝 멈췄다. 그래, 순간이다. 흐릿한 기억속 몇 안되는 향유하던 단어 하나의 순간.)
사이온지 카오루:야, 그럼...나나쨩은, 내 동생은, .......밖에, .....나나는 어쨌어.
■■■:... ... ...
더러우니까 손 치워. (시종일관 입꼬리를 비죽이던 낯은 온데간데없이 핏기가 빠르게 가신 낯빛으로 눈을 홉뜨고는 마치 역한 쓰레기라도 줍는 양 엄지와 검지를 바짝 세워 끝마디로 네 소매를 쥐어 당겼다. 다음은? 어떻게 했더라. 내내 주머니에 갇혀 있던 반대 손이 불쑥 바깥으로 튀어 오르면 손아귀에는 퍽 정직한 모양의 메스가 들렸고, 그게 네 손바닥 언저리를 가볍게 찌른 듯했다. 그다지 무식하지도, 대단히 폭력적이지도 않은 행동임은 분명했으나 사람 을 상대로 메스를 꺼내드는 행위 자체는 비정상적이지 않을 수 없다. 일련의 행동이 끝을 맺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금 천연덕스러운 표정이었다.)
말은 똑바로 해야지, 무식한 벌레 씨. 널 여기에 가둔 건 엄연히 말해 내가 아니라 바이러스야. 이해가 돼? 감연된 게 어디 내 탓이겠어? 네가 멍청하게 미쳐 돌아가는 세상 한 복판을 뽈뽈 돌아다녔거나, 누구랑 뒹굴어 먹다 감염된 거겠지. 내가 그런 것까지 하나하나 조사해줘야 하나? 전혀! 그리고 연구소의 연구 목적은 어디까지나 감염자를 치료하는 거야.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해줘야 하는 거 아냐? 이래서 멍청이들은~... 꼭 은혜를 지랄로 갚는다니까.
(짧은 침묵. 어쩌면 찰나가 영겁과도 같았던 네 묵직한 음절들. 웬일로 그에 맞춰 얇은 입술을 다물고 같은 침묵으로 응수하다 마침내 눈꼬리를 휘어 접으며 천진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글쎄에? 어떻게 됐을까? 상상해보지 그래? 네 말마따나 이게 전부 너 하나를 속이기 위한 대단한 연극이었다면 나나쨩은 무대 밖에서 박수라도 치고 있지 않겠어? 끝나고 사인이라도 해주지 그래~? 하하하!
사이온지 카오루:(손 쓸 새도 없이 갑작스레 파고든 날붙이에 손바닥을 부여잡고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고통을 참는 것에 능한 사람은 아닌듯 처절한 신음과 욕이 진득하게 뒤섞여 바닥에 나뒹구는 꼴이 썩 보기 좋진 않았다. 꺽꺽거리는 신음을 자존심이 상하는듯 애써 욕지거리를 뱉어가며 참아내다 제 손을 찌른 남자의 그 마지막 한마디 말은, 신음을 울부짖는 소리로 바꿔내기엔 정말이지 충분했다.) 좆같은... 좆같은새끼....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야? 미친새끼.... 쳐 죽여버릴거야, 개새끼야.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이성이 남아있는 사람이라면, 무던한 표정으로 같은 사람의 손에 난데없이 메스를 꽂아넣는 '미친놈' 앞에서 어린 양처럼 벌벌 떨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되도 앉는 눈웃음을 치며 눈치를 살피겠지. 똑똑하고, 현명하며, 으레 배워먹은 정상적인 놈이라면 그리 했을것이다.)
내가 너는 진짜, 죽여버릴거야, 바이러슨지 나발인지 씨발, 살리기만해, 살리기만해 미친새끼야,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사이온지 카오루는 그럴 인간이 못되었다. 똑똑하지도, 잘 배워먹지도 못했으며, 더욱이 '정상적인' 상황에 놓인 정상인의 범주에는 들지 못헀다. 악 소리를 내며 바닥을 나뒹굴던 꼴사나운 남성은, 저보다 멀쑥하게 큰 정신나간 연구원을 갑작스레 밀치고 올라탔다. 저를 더러운 것 여기듯 떼어내던 모습을 상기하듯이 벌벌 떨던 손의 악력으로 목을 조른 것 역시 순간이였다. 그래, 모든 순간이 있다. 스위치를 누르면 불이 켜지는 순간, 말 한마디에 이성이 꺼지는 순간. 사람으로 살고싶지 않은 순간은 그렇게 갑작스레 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냥 죽여.....! 죽이라고...! 누구 마음대로 살려...! 죽여, 죽이고 죽어! (옅은 분홍비 눈동자가 출혈되고 터진 흰자와 섞여 시뻘건 환각을 불러 일으켰다. 손바닥의 고통때문인지 두서없이 눈물이 뚝뚝 떨어지며 조르고 있는 목 위를 적셨다. 발악의 끝은 초라함과 끔찍한 순응이다,)
나나.... (그래, 씨발...다 끝났다는 소리다.)
■■■:(황금빛 가느라단 눈을 치뜬 김에 목전의 멍청한 날짐승을 마주보며 생각을 거듭한다. 어디까지 이해했을까? 어디까지를 현실로 받아들였고, 어디까지에 순응했으며, 또 어디까지 무식한 반항을 일삼을까? 어디까지가 이 멍청한 작자의 인지 능력 안에 하나의 사건으로 자리매김할까? 어느 순간 네가 몸 위로 널뛰듯 올라타 볕 한 줌 받지 않아 희게 질린 목덜미를 잡아 눌러 조르는 순간까지도 생각은 계속 되었다. 귓바퀴를 얇게 저밀듯 터뜨리는 날 선 웃음도 그칠 줄을 몰랐다. 일견 내 몸에 네가 깊이 닿아 왔다는 사실이 당장에 비좁은 목구멍을 긁어 쏟아뱉는 구역질이 될 수도 있었겠으나, 지금 가장 효과적인 것은 끝내 꼴사나운 울음마저 터뜨리기 시작하는 네 면전에 보란 듯이 깔깔대며 부풀어 뱉는 웃음이라는 사실을 도출해냈다. 적어도 제 계산은 그러한 듯하다.) 네가? 나를? 하하! 그것 참 기대되네. 하지만 멍청한 벌레 씨. 난 죽을 생각 없어. 세계에게도, 덜떨어진 너한테도.
(이 순간 너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인물이 누구인지를 상기해야 했다. 너를 낳아 기른 가족? 네가 끔찍하게 사랑해 마지않는 여동생? 오랜 시간을 곁에서 함께 했을 친구들? 아니.) ... ...나야. 이 빌어처먹을 연구소에 처박혀서 네 몸을 찢고, 기우고, 찢고, 기우기를 반복한 내가, ...내가 너를 가장 잘 알고 있다고. 멍청한 새끼야. (물론 자신의 흥미가 닿지 않는 부분까지 알 필요는 없다. 다시 말해, 그저 컨트롤이 가능한 범주의 약점만을 알고 있으면 된다. 혹은 단순하게 생각해 생물적인 단위의 '급소'만을 알고 있으면 될 일이다. 주먹을 힘껏 움켜 쥐니 까드득, 하는 장갑의 마찰음이 울렸다. 머리를 쓰는 것들이 으레 그러하듯 제 위를 차지한 놈만큼의 악력이 있을 리 만무했지만 대단한 악력을 필요로 하지 않았기에 '급소'라 불리는 법이다. 움킨 주먹으로 아마도 상처가 있을 네 옆구리 언저리를 가볍게 두드리듯 눌러 시계 방향으로 비틀었다. 그정도의 힘이면 충분했다. 구둣발을 전부 쓰기도 싫었는지 다소 지저분한 코를 바짝 세워 네 몸을 걷어차듯 모로 굴려 치웠다.) ... ...참 손이 많이 가. 기껏 돌봐주고 있는데도 말이야. 끝까지 감사하다는 말 한 마디가 안 나오네. 원래 벌레들은 학습 능력이 다 이 모양인가? 안타까워라~... ...
나나쨩이고 뭐고 그 애의 생존 여부 따위 물어봐야 소용 없을 거라는 것 정도는 학습했지? 그 정도의 믿음에는 부응해주길 바랄게. 해봐야 그런 여부 같은 거 알려줄 방도도, 생각도 없지만.
저기~... 우리 정말 할 일이 산더미처럼 있거든? 낭비는 이쯤 할까? 서로 피곤하잖아. 안 그래?
사이온지 카오루:((윤이나게 잘 닦여 꼴같잖게도 온통 하얀 이 건물의 내벽을 반질한 면으로 비추고 있는 검은 구두의 가장 헤지고, 더러운 구석으로 치여 바닥에 나동그라진 짐승은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다. 급소를 쑤셔져 숨이 막힌 탓도 있겠지만, 그런 것 치고는 꺽꺽거리는 지저분한 숨소리도 새어나오지 않고 멍한 눈으로 차가운 바닥을 응시하며 눈물만 줄줄 흘려댔다. 발악의 끝은 고요였고, 순응의 끝은 사무치는 외로움과 공포다. 안부를 알 수 없는 이름을 되새겨도 제 앞에 있는 것이라곤 저 반질한, 재수없는 구도 코 하나뿐인 것이 현실이다. 현실은 잔인하다는데, 그거 나도 잘 알지. 근데 왜 유독 나한테만 더 그런 것 같지. 내가 오토바이를 타서? 나나쨩한테 아이스크림 많이 안사줘서? 아르바이트 하다가 돈 좀 훔쳤다고? 그게 이렇게 끔찍한 꿈 속에 담궈놓을 일인가? 아니, 이건 꿈인가? 아니라잖아, 아니라잖아, 씨발. 익숙한 단어의 마무리로 눈물샘과 이성은 완전히 암전되었다.)
....우리라고 부르지마, 역겨우니까. 안해. 아무것도 안할거고, 그냥 죽게 내버려 둬. (얼마나 긴 시간이 지난걸까? 찬 바닥에 눌린 양 볼이 아직 따뜻한걸로 보아서는 그리 길진 않을것이라고 가늠하고는 비척비척 일어나 복도의 끝을 걷기 시작했다. 버석하게 마른 몰골이 눈뜨고 봐주기 어려웠다. 타의로 생긴 제 고까운 동거인에게 한참 늦은 답을 멋대로 쏘아 붙이고는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자꾸 향했다.)
나도 너한테 신경 끌테니까, 그냥 혼자 쳐박혀서 헤매게 둬, 미친새끼야... 할 일이던 뭐던 안할거다. 그냥 죽을거야. 그리고 너도 혼자 고독사로 뒤져버려. (흰 복도를 스스로 암전이라도 시키듯 눈만 수차례 끔뻑거리며 거머리를 떼어놓기 위해 아무 곳으로나 도망쳤다. 복도 끝에 나지막이 있는, 누구것인지도 모를 방으로. 저놈 아니면 내 방일테니까.)
사이온지 카오루:(npc의 방으로 이동 가능할까요?)
재차 뇌까립니다.
그게 실낱 같은 희망이었던, 혹은 타협과 순응이 달콤하게 안겨준 절망이었던.
송장마냥 자리에 웅크려 꼼짝하지 않는 마음 편한 최후 대신 걸음을 당겼습니다.
복도의 가장 끝 방.
누구의 것인지, 어떤 용도인지도 모를 방문입니다.
하지만 아주 보기좋게도,
잠겨있습니다.
■■■:(시퍼런 날짐승이 구석에 옹송그려 다 죽은 눈을 껌뻑이지도 않고 지저분한 울음을 고르는 동안 굼뜨게 몸을 일으켜 엉망으로 구겨진 제 옷매무새부터 정돈하기에 이르렀다. 지극히 순차적이었고, 몇 번이고 그렇게 행동해왔던 사람의 고정적인 수순만 같다.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 주름을 펴고, 장갑을 당겨 고쳐 끼고, 머리칼을 매만졌다. 과정 동안 틈 없이 다물린 입술은 미동 없는 고요. 무어가 그리 우스웠는지 호선을 그리고 있던 얇은 눈매도 순간만큼은 지독히도 정적이었으며, 사위가 곧 적요였다. 짐승의 감정 따위 헤아릴 이유도, 가치도 없다. 그러한 판단 기준에 의거해 눈길 한 번을 주지 않았다. 어느새 비척비척 복도의 끝자락으로 향하는 걸음에는 미처 혀 아래에 고여 흘리지 못한 웃음의 잔재도 함께 털어내듯 픽, 바람 새는 소리로 웃고 말았지만.)
네, 네. 거긴 내 방이야. 멍청한 벌레 씨의 방문 같은 거 허락한 적 없으니 소용 없겠네. 아쉽게 됐어. 네가 좀 더 고분고분하게 어울려준다면 기특한 마음으로 초대장이라도 나눠줄 테니까, 잘 해봐?
(정돈을 끝마치면 가장 처음 마주쳤을 때의 모습이었다. 팔짱을 끼듯 가슴께 앞으로 두 팔을 포개어 제 팔꿈치를 받치듯 쥐었고, 그렇게 걸친 손으로는 제 턱을 톡톡 가볍게 두드렸다.) 으음~... 죽던 말던 별로 상관은 없지만. 지금은 조금 아쉬운 척이라도 해볼까? 일단은 네가 유일하게 남은 내 실험체란 말이지. 아쉽잖아! 이왕 죽고 싶은 거라면 내 손에 조금 더 어울리다 죽어주면 고맙겠네~. 그게 세계에게도 유익할 일일 테고 말이야. 아주 작은 희망 하나 속삭여줘? 네 실험이 무사히 끝나면 혹시 모르지! 정말로 운 좋게 살아 남은 나나쨩에게 네 목숨이 도움이 될 수도 있잖아. 와아! 정말 꿈만 같은 이야기! 메르헨이네! 최고야! 멋져! ... ...아마도.
단순히 시체처럼 누워있기에는 좀 쑤시다 싶으면 연구소 내부를 둘러보는 것정도는 허락해줄게. 딱 하나만 제대로 들어준다면 말이지. ...네가 깨어난 곳, 즉 제 2 연구소에만 알짱거리지 않는다면. 다른 곳의 문은 열어줄게. 척 봐도 무식해보이는 네가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지도 궁금하고~. 어때! 후한 취급이지?
사이온지 카오루:.......야, 너 친구 없지? 가족도 없어보인다. 뒤져버려.
(덜컥거리며 단단히 잠긴 방 문을 부러 고장이라도 내려는듯 신경질적으로 힘을 주어 잡아 당기고는, 무감한 얼굴로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모욕적인 저주를 내뱉었다, 미친새끼. 상종을 말아야지. 죽어라.)
(화풀이를 실컷 하고 난 뒤 여전히 버썩 마른 눈빛으로 제 멋대로 웃어보이며 지껄이는 면상을 툭 치고 지나갔다. 새삼스레 차오르는 분노는 주먹을 꽉 쥐어든 순간 아직 쓰라려오는 메스 자국에 스며들어 속으로 삭혀들어갔다. 상종 말자. 그냥 죽어버리자. 저새끼 좋은 꼴은 못보겠다. 온갖 부정적인 생각과 절망으로 가득 들어찬 미친놈이 비정상인에게 대꾸했다.)
신경 꺼. 어딜 가던 내 마음이야, 너따위 말을 내가 들을 이유가 어디있지? 그리고... (삭혀들어간 분노는 단전에서부터 꾸역꾸역 올라와선, 지겹게도 잇새로 새나갔다.) 한번만 더 그 주둥이에서 내 여동생 이름 나오기만 해봐. 네 좆같은 실험이고 나발이고 싹 다 불질러서 사람이랑 같이 잿더미 되는 꼴 보기 싫으면.
(그 말을 끝으로 볼일이 정말 끝났다는듯 예의 그 비척거리는 걸음으로 자리를
사이온지 카오루:떴다. 잔재처럼 남은 불손한 감정은 차마 갈무리하지 못한게 흠이였다 2연구실이라고?좆까. 절대로 들어가고 만다 쓰레기야. 그러니까... 이 걸음의 경로는 지극히 일리가 있었다.)
(제 1연구실로 향합니다.)
■■■:궁금해?
(그럴 리가. 뒷말은 이어지지 않은 웃음기 섞인 자문자답. 자신의 인간 관계를 진실로 궁금해한 까닭에 건넨 의미 그대로의 질문이 아님을 안다. 하지만 이에 성실하게 대꾸하는 편이 네게 있어 더 거슬릴 거라는 사실 역시 놓치지 않았기에 뒷짐을 지고 또각거리는 구둣발 소리를 스산한 복도에 너르게 울려 퍼뜨려 네 뒤를 따르며 나직한 목소리로 한 음절 힘을 실어 읊조려본다.)
흠, 친구라. 또래는 있었던 것 같은데, 없앴어. 가족이라는 건... 오랜만에 듣네. 어떻게 했더라? 벽? 침대 아래? 구들장 밑? 아~... 바다였던가? 하하! 기억이 잘 안 나네. 별로 중요하진 않잖아? 그것들이 어디서 썩어가고 있든 간에. 흐음. 여기가 궁금했구나?
사이온지 카오루:.........난 너한테 정말 좆도 궁금한게 없거든? 걱정도 존나게 안되는데 이거 하나는 궁금하네. 내가 지금 여기서 토하면 너도 내 눈앞에서 꺼져주냐?
사사가와 모토키:글쎄? 해볼래? 너무 역겨워서 이대로 딱 죽지 않을 만큼만 난도질해서 네 토사물 위에 정성스럽게 버무려줄 의향은 있는데. 하지만 너무 귀찮잖아~. 네 토사물도, 네 피도 전부 더러워서 별로 유쾌하진 않을 것 같으니까. 아, 참고로 눈물도 지저분했어! (검지를 세워 네 낯을 가리키며 한참 웃다 태연히 안으로 들어섰다.) 사사가와 모토키. 사사가와 씨라고 예의바르게 불러주면 예뻐해줄게~.
사이온지 카오루:만지지도 못하는 새끼가 아가리는 존나게 털어요.... (멍청한 인간 답게 별 학습능력은 없는듯 태연하게 눈살을 찌푸리며 방 안으로 들어섰다. 뒷말은 대놓고 티가 나게 경멸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리다 부러 속된 말로 불러제끼기 시작했다.) 쓸데없는 정보를 알아서 기분이 더러운데 이 방에 나만 놔두고 꺼져줄 의향은 없으신가요 미친새끼야? 어떻게 해야 그 쓰잘데없는 말 닥치고 혼자 둘래 변태새끼씨. 어느쪽이 부르기 좋은지는 내가 판단할거니까 지금 대답도 하지 말고. (손을 휘 내저으며 방 안을 빠르게 둘러보기 시작했다. 칼같은거 없나.)
사사가와 모토키:궁금하다기에 기껏 문도 열어줬는데, 친절한 사사가와 씨한테 감사는 언제쯤 제대로 표하려나? 아니면 왜, 뇌가 너무 쪼그라들어서 감사 인사를 전하는 가장 기본적인 예의마저도 학습 능력이 뚝 떨어져버렸나? 저런... ... 어쩔 수 없지. 스스로 하등하다는데 어쩌겠어. 사사가와 씨는 친절하고 상냥하니까 그 정도는 이해해줄게~. 어렵지 않은 일이지. 제 아무리 애완용이라도 벌레 새끼한테 일부러 히라가나를 가르쳐주려고 노력하진 않잖아? (어디 마음껏 보라는 양 걸어들어가던 걸음을 한 편에 우뚝 멈춰 세우곤 네 하는 양을 묵묵히 지켜보기로 했다.)
사이온지 카오루:(꼭 지 정신머리랑 똑같은 방이네... 짤막하게 감상을 속으로 남기며 그제서야 곁에서 떨어진 인간을 버려두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띈건 열쇠였다. 열쇠... 어디의 열쇠지? 여기서 나갈 수 있는 열쇠도 있을까? 단순하기 짝이 없는 사고방식이였고, 포기의 틈새로 지치지도 않고 간절함이 고개를 내비췄다는 증거였다.)
....어이, 이거 어디다 쓰는거냐? (딱히 대답을 들을 생각은 없는 듯 열쇠들을 들어올려 빙빙 돌리기 시작했다. 저 놈이 말 안하면 하나 하나 열어 제껴보면 그만. 안열리면 부수면 그만이였다.)
사사가와 모토키:...열쇠를 어떻게 쓰는지도 몰라? 우와, 큰일이네. 실험 보고서에 적어놔야겠다. 뇌 기능이... 상당히... 퇴화... (제 손바닥 위를 검지로 간질이듯 긁으며 무언가를 적어내리는 시늉을 해 보이다 다시 웃음기를 진득하게 입가에 걸곤 아까 들었던 메스로 보관함을 통통, 두드렸다.) 그야 물론 잠긴 문을 여는 데에 사용하겠지. 하지만 지금은 내가 열어줄 테고, 연구원이 옆에서 두눈 샛노랗게 뜨고 있는데 열쇠를 가져갈 생각을 한 건 아니겠지? 멍청한데다 뻔뻔하기까지!
사이온지 카오루:....흰 가운 입으면 뭐, 뇌까지 표백되기라도 하냐? 네 눈엔 내가 대체 뭘로 보이는거야? 아니... (괜한 말을 했다는듯 팍 식은 눈동자로 열쇠를 허공에 한번 집어 던졌다가 잡아채곤 뜸을 들이다 결국 덧붙였다. 거슬려 죽겠다는 모양새였다.) ....그리고 그 좆같은 메스좀 어디 쳐 버리고 오면 안돼? 또라이 티내냐?
(그 한마디를 내뱉은게 퍽 자존심이 상한 듯 뒷말은 들은체도 않고 보란듯이 열쇠를 두어번 더 던져대다 제 파카 주머니 속에 낑겨 넣었다. 뻔뻔한 모양새로 턱짓을 이어갔다.) 어디의 열쇠인데. 까봐.
정말이지... 지나치게 솔직한 그의 시선은 당신을 애처롭게 바라봅니다.
열쇠에는 각각 낡은 견출지가 붙어 있으며,
왼쪽부터 〔 제 2 연구소의 열쇠 〕, 〔 제 2 연구소 실험실의 열쇠 〕, 〔 제 2 연구실의 열쇠 〕, 〔 폐기실 열쇠 〕 라 적혀 있습니다.
사사가와 모토키:에이, 어떻게 그러겠어. 무식하게 힘만 센 날짐승 새끼가 언제 나한테 엉큼하게 덤벼들지도 모르는데 가녀린 내 몸 지킬 호신용 무기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지~. 안 그래? 사사가와 씨도 무서운 게 있는 법이랍니다. (노래하듯 흥얼거리며 말을 이었다. 사이사이 몇 걸음 부지런히 당겨 어느새 네 뒤로 바짝 다가서더니 곧 메스를 날이 위로 향하게끔 경쾌하게 돌려 들고는 열쇠를 집어넣은 주머니를 투둑, 멋대로 찢어내더란다. 통 안에 든 사탕을 골라내는 양 메스로 주머니를 가볍게 뒤적여 열쇠들을 몽땅 챙기곤 다시 보관함에 하나씩 걸어두었다.) 바보한테 바보라고 해봐야 소용도 없으니, 원. 뭐라고 해야 할 지 고민하는 것도 일이네.
사이온지 카오루:....가녀린? (동태눈깔처럼 팍 죽어있던 눈빛이 저승사자라도 한번 더 만난 것 마냥 아예 이승을 떠나 먼 곳으로 가 돌아오지 않았다. 작은 소리로 무서운새끼... 하고 중얼거리던 찰나 어느새 바짝 다가온 인영에 저도 모르게 흠칫 놀라더니, 망연하게 털려버린 주머니를 어이없다는 듯이 손으로 쥐락 펴락 허공을 매만졌다.) 그러니까 그 좆같은 메스좀..... 아니, 됐다. 내가 이새끼 장단 맞춰서 뭘 하는거야. (머리를 벅벅 긁고는 가까이 붙어왔던 꼴이 혐오스럽다는듯 진저리 치며 떠올렸다. 제 2연구실이라고 써있었다. 거기구나. 저새끼 하나쯤은 제껴먹을 수 있겠다...가 봐야겠어.)
(담담히 생각을 갈무리 한 채 시선을 돌리자 이리저리 널부러진 볼펜들과 종이 더미가 눈에 밟혔다. 안궁금하다. 존나 안궁금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손은 주인을 닮아 멍청한건지 그 근처를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수기로 작성한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복잡한 말들로 적혀 있는 연구 기록으로,
마지막에는 'RNA interference'라 적힌 글에 빨간 동그라미를 그려놓았습니다.
사이온지 카오루:..... ............. (한참을 눈살을 찌푸린채 주변을 맴돌며 곁눈질하다 성미에 맞지 않는 듯 아예 서류 더미를 들어올려 읽기 시작했다. 한참을 코가 박힐 기세로 읽어 내려가더니 뭔가 불만인 짜증스러운 말투로, 서류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인간을 불러세웠다.)
참고로, 서류의 주인은 내가 아냐. 아직 이 연구소에 머물러 있던 다른 연구원이지. 사사가와 씨는 그것보다 훨씬 정갈한 필체랍니다? (하아, 다 웃고 검지로 눈물을 슥 닦으며 덧붙였다.)
사이온지 카오루:.... 다른 연구원이 있었다고? (그걸 왜 지금 말하는거지 이새끼는? 아님 내가 안들었나? 뭐든 이놈 잘못이다. 100%다. 속으로 빠르게 원만한 합의를 끝낸 뒤 거만하고 뻔뻔하게 덧붙였다.) 지랄... 순 흰 소리잖아. 세포가 인격이 있다는데, 너같은 또라이가 세상에 몇이나 더 있다는거야? 공부를 너무 하면 대가리가 하나같이 다 어떻게 되는거 아니냐? 작작좀 하지 그랬어? (두어번 읽어도 영 이해는 안간다는 듯 서류를 눈 앞에 들이밀곤 눈살을 찌푸렸다.)
그 얘기나 더 해봐. 다른 연구원이 있었다고? 그 말은, 다른 실험체도 있었단 소리야? 맞아?
사사가와 모토키:당연하지. 연구소가 이렇게 넓은데 설마 처음부터 너랑 나, 둘만 있었을까봐? 연구소를 폐쇄해야 할 만큼 바이러스의 영향은 컸고, 지금까지 죽지 않고 살아남은 보균자가 너 하나일 뿐이야. 지금까지 죽지 않고 살아남은 연구원이 나 하나일 뿐이고. (그뿐이다. 말을 마치면 다시 팔짱을 끼고 턱을 까닥였다.)
사이온지 카오루:... .... ....그럼 지금 이 짓거리가 의미가 있어? 넌 언젠가 뒈질거란 생각 안하나보지? 죽을날 점지받아놓고 얌전하게 보드게임이나 하면서 시간이나 죽일것이지 왜 똑같이 진창에 구르는 인간 주워다가 이 지랄이야? (살아남은게 하필이면 나였다고? 대체 그놈의 바이러스가 뭔데? 이 작은 연구소도 씨를 말렸으면 밖은 정말, 아, 아니다. 됐어. 파도치듯 치밀어 오르던 우울과 공포감은 제 앞의 낯짝 탓에 다행히도 싸늘하게 식어 다시 머리를 숙였다. 그 뒤로도 뭔가 불만인 듯 말 하려고 헀지만, 결국 말을 길게 섞기는 싫었는지 짧은 한숨과 함께 삼켜졌다.)
...아, 그래서 저 미친 짓거리를 여기서도 하긴 했나보지? 이건 맞췄냐? (눈이 마주치면 속이 부글부글 끓는 탓에 고개를 돌리다 마주한 것에 아무리 머리에 든게 없는 이라도 어렵지 않게 사실을 유추해 낼 수 있었다. 서류의 정신나간 그 내용과, 뭔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저런것들, 그럼 뻔하지. 문제는.....) ....저건 누구 살점인데? 설마,
(유전자 표본을 살폈습니다)
사사가와 모토키:처음부터 경청하는 자세도 아니었으니 내 말을 곧이곧대로 들어주었을 거라는 기대는 터럭도 없긴 했지만 말이야. 이렇게까지 멍청할 거라는 상정도 했어야 했는데~. (이번에도 하하, 가볍게 웃어 넘겼다.) 사사가와 씨는 친절하니까 한 번만 더 말해줄게~? 나는 이 연구에 제법 흥미가 깊어. 그러니까 널 붙잡고 있는 거야. 건강한 실험체가 한 구체라도 살아있잖아? 멋진 일이지! 내가 내 흥미 본위대로 실험을 이어갈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건~... ... (보면 알겠지. 말을 아끼고 천천히 다가가 되레 기분 나쁠 만큼 현미경과 프레파라트 따위를 네가 자세히 관찰할 수 있게끔 조절해준다.)
프레파라트는 총 4개가 있습니다.
현미경으로 확인하면 표본을 관찰할 수 있어 보입니다.
어떤 것부터 볼까?
사이온지 카오루:.......그 '건강한'에는 정신건강이 포함되어있지 않은가봐? (이 놈 왜 갑자기 이렇게 살랑거려? 본 지 얼마 안됐지만... 씨발, 그래. 기억은 짧지만. 이거 하난 알 수 있었다. 저놈의 친절한 사사가와씨 소리가 나오면 뭐든 끔찍한 일들의 연속이란걸. 정말 내키진 않았지만 불쑥 다가온 프레파라트를 밀어내진 않았다. 모르고 넘어가는게 더 찝찝할것 같았다.)
(세번째 프레파라트를 살핍니다.)
네임 플레이트에는 'H.C'라고 적혀 있습니다.
현미경을 통해 표본을 자세히 관찰합니다.
세포는 마치 벌레가 고치를 빠져나가는 듯한 형태로 분열과 분열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 모양은 끔찍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사사가와 모토키:오, 빙고! (손가락을 딱, 소리나게 튕겼다.) 어떻게 그걸 콕 찝어서 고른담? 역시 보균자라 그런가? 핏, 하고 통하는 게 있고 그래? 이 세포가 바로 바이러스의 표본이야.
한 번 생물에 이식하면 그 생물의 세포를 전부 파괴하고, 자신이 그 세포의 자리를 흉내내서 대신하려고 하지. 세포도 아닌 주제에 세포인 척을 한단 말이야. 그런 식으로 서서히 숙주를 손에 넣어. 신기하지~?
사이온지 카오루:... ......뭐? (멍청하게 눈을 깜빡이더니, 이네 분홍빛 눈동자는 삽시간에 경악으로 물들었다.) 아 이 미친, 징그러워. 그거 들고 꺼져! (이런 쪽의 비위는 영 약한듯 역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걸음 물러섰다가 제 팔 위를 슥슥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그럼 난 왜 멀쩡한거지? ......
(소름이 끼치는 듯 괜히 제 팔 위를 몇번 더 매만지다 영 꼴이 사납다는걸 인지하고는 두번째 프레파라트를 보며 가져오라는 듯까딱였다.)
사사가와 모토키:그게 바로, 이 사사가와 씨의 연구와 치료 덕분이라는 거지~. 이제 좀 감사한 마음이 들어? (비스듬히 웃으며 시키는 대로 다음 프레파라트를 현미경 위에 올려준다.)
네임 플레이트는 흠집이 나 이름이 보이지 않습니다.
현미경을 통해 표본을 자세히 관찰합니다.
평범한 세포가 보입니다.
특별할 것은 없습니다.
사사가와 모토키:짜잔~. 이게 바로 사사가와 씨의 세포야. 어때, 부러울 만큼 평범하지?
사이온지 카오루:........세포가 못생길 수가 있구나? 거 참.
사사가와 모토키:마음이 삐뚤어지면 보이는 것도 삐뚤다고들 하더라. 안타까워라!
사이온지 카오루:네가 내 시력 재 봤어? 말을 말아야지, 얘랑 뭐 좋다고 입씨름을 하는거야 나는? 비위상해.....젠장, 남은거 두개 다 가져와봐, 첫번째거.
사사가와 모토키:은근슬쩍 한 마디씩 거는 거 보면 제법 사사가와 씨가 마음에 들었나봐? 하, 벌레 새끼한테 인기 얻어봐야 기쁘진 않은데 큰일이야~. (이번에도 웃는 낯으로 가져다놓는다.)
현미경을 통해 표본을 자세히 관찰합니다.
세포가 일그러진 채 괴이한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길게 뻗어있는 것은 마치 벌레의 몸통에 다리가 다닥다닥 붙은 것만 같습니다.
그 세포를 빤히 쳐다보고 있자니,
...그것은 마치 웃는 얼굴을 하며 현미경을 바라보는 듯합니다.
그럴 리가 없을 텐데도요.
기묘한 기분에 등골을 타고 소름이 올라옵니다.
사사가와 모토키:좀 볼래? (표본의 네임 플레이트를 메스 끝자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사이온지 카오루:뭐? .... ...........싫은데? (눈 마주친 것 같은데? 우와, 기분나빠.......... 징그러운 듯 현미경 앞에서 슬쩍 떨어지며 시선을 피했다. 몇번이고 뜸들이더니, 제 성이 못 이긴 듯 현미경에 다시 다가와선 물었다.)
너 뭐 병있는거 아니냐? 또라이 병이 옮는 것 같아.. .....저게 날 보면서 웃었다고.
사사가와 모토키:세상에. 정말로 옮길 병이 있다면 그건 보균자인 너겠지. (프레파라트를 직접 손으로 집어 들어 네임 플레이트를 네 코 앞까지 바짝 들이대준다.)
사이온지 카오루:.... ..........너 이 씨발, 내가 이럴줄 알았어. 네가 꼴에 알랑거리기 시작하면 꼭 뒤가 구린게 있다니까? 너 일부러 보라고 한거지? 내 기분 잡치라고?? (이해가 되지 않은듯 몇 초간 플레이트를 바라보던 눈동자가 제 앞의 금빛 눈동자처럼 순간 가늘어지더니, 그에 걸맞게 쥐어짠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지간히 겁먹은걸 티내고 싶지 않은지, 안타깝게 떨리는 목소리를 분노로 포장해내 툭툭 뱉어냈다.)
아니야? 너 지금 비정상이다. 주제파악 잘 해라. 얌전히 그 좆같은 실험에 응해야 할거다. 뭐 이딴 소리 하려고, 널 믿은 내가 등신이지!
사사가와 모토키:흐음? 사사가와 씨 또 억울해지기 시작하네~. 멍청한 벌레 씨가 가져오라는대로 하나하나 가져다 바쳤을 뿐인데? 멍청한 네가 현미경 조작법을 알기나 할까 싶어서 하나하나 세팅까지 도와줬는걸. 이왕 하나씩 살펴볼 거면 이게 어떤 세포인지도 알면서 보는 게 더 교육적이잖아. 뇌세포 퇴화를 걱정해서 교육적인 방면까지 생각해준 배려였는데. 하여간 조동아리 싸가지하고는. (메스 끝자락으로 프레파레트를 소리나게 두드리곤 다시 테이블 위로 돌려놓았다. 이러나 저러나 마주해야 할 현실임을 일러주기라도 하듯 이제는 시키지 않아도 마지막으로 남은 파레트를 현미경 위에 올려놓는다. 음, 끝까지 친절한 사사가와 씨! 하는 제 귀에만 산뜻할 한 마디도 잊지 않았다.) 시끄러우니까 얼른 보고 끝내지? 실은 궁금하잖아. 이거 하나 놔두고 돌아가면 찜찜해서 밤새 이불 걷어차게 생겼는데, 뭘.
사이온지 카오루:내가 미쳤냐? 멍청하다 소리 얌전히 듣고 있어주니까 진짜 호구새끼로 보여? 별 개같은 꼴 볼게 뻔한데 뭐하러! 너 날 왜 여기 쳐박아 뒀냐? 너랑 있으면 내가 자살할것 같으니까 계속 기억이니 나발이니 지워대는거 아냐? 너 즐기지? 이 변태새끼...! 사람이 싫다는데 들이댈때부터 알아봤어 내가, 상종도 하기 싫으니까 들고 빨리 안꺼져?! (한참을 폭언을 내뱉으며 씩씩거리다 그 기이한 현상이 머리를 떠나지 않고 마침내 진득하게 자리잡은듯 끝내 말을 잃고 거멓게 변한 낯빛을 손으로 감쌌다. 한참을 적막 속에서 작게 씨근거리는 소리만 들리다가 울컥한 듯 예의 그 귀에 박힐듯한 욕을 내뱉으며 '친절한 사사가와씨'를 벽으로 밀쳐냈다.)
(마지막 플레이트를 살핍니다.)
사사가와 모토키:어느 쪽이냐고 하면 반대로 기억을 지우는 거추장스러운 과정 없이 무너지는 꼴을 그대로 구경하는 게 더 즐거운데 말이야. 사사가와 씨의 해석이 덜 된 모양이야, 멍청한 벌레 씨~. (꼭 너만큼의 어금니를 바득바득 갈아대는 자존심이 없다. 달리 말하면 면전에 쏟아지는 악의로 벼른 날카로운 음절 따위는 우스울 만큼 쉽게 일소에 부치는 놈이었다. 기분 나빠? 네 세포인데? 네 몸을 다닥다닥 이루고 있는 것들인데? 스스로를 그렇게 미워하면 쓰나. 그런 말들을 울렁이는 높낮이로 흘리며 밀치는 대로 몸을 벽으로 물렸다. 그게 전부다. 내내 허공에 두어 지휘봉마냥 휘두르던 메스를 주머니에 밀어 넣고는 다시 옷매무새를 정돈하는 게 전부. 그런 놈.)
네임 플레이트에는 'KASHIWAGI' 라고 적혀 있습니다.
현미경을 통해 표본을 자세히 관찰합니다.
세포가 스스로 분열하고, 사라집니다.
그 자리를 마치 다리가 달린 것 같은 모양새의 세포가 분열을 거듭하며 빈 자리를 차지하듯 채워갑니다.
척 봐도 기이한 상황입니다.
사사가와 모토키:너를 제외하고 가장 마지막으로 죽은 감염자였을 걸. 별로 기억에 남질 않아서.
사이온지 카오루:.... .....죽었다고, 그래, 죽었겠지. 저딴게 몸이서 기어다니고 있는데 오래 살겠어?!...나도 죽겠지! 씨발, 잘됐네!!! (첫 음절은 뻔뻔스레 되묻기라도 하듯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가, 말을 이어가며 감정을 눌러 삭히는 것에 실패했는지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문장이 마무리 되었다. 남은 것이 하나 없더라도 굳이 제 눈으로 확인하려 드는 미련한 인간은 당연스럽게도 죽음 역시 두렵기 마련이다. 온갖 공포와 절망으로 점철되어 무뎌지더라도 본인의 일 역시 무딜 수 있을까? 꼴 사납게 어깨가 부르르 떨렸다. 그런 놈이였다.)
사사가와 모토키:그러니까~... (애처롭다거나, 혹은 우스웠다거나, 즐거웠다거나, 비아냥대던 여러 감정들을 일제히 귀퉁이로 치워버린 양 종전에 비해 감흥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정적인 눈초리를 가늘게 고쳐 뜨곤) 살고 싶으면 알아서 기어. 아니면 네 말마따나 죽을 날만 꼬박 세어가며 달력 모퉁이라도 뜯어 먹던가. 뒤지기 싫은 주제에 쪽팔려서 발악도 못할 새끼가 꼭 뒤질 짓만 골라서 하는 것도 재능이야?
(말을 마치면 다시 방긋, 티 없이 웃어 뵈더란다.) 프레파라트 감상은 이걸로 끝! 수고했어~?
사이온지 카오루:(파르르 떨던 어깨가 퍽 가여워 보이기도 했다. 그 잔울림은 어느새 눈가까지 올라와선 제법 끔찍한 표정을 만들어냈다. 두려움과 혐오와 경멸이 뒤섞인 감정을 뭐라고 정의 할 수 있을까? 아직 세상에 그것을 나타내는 단어가 없는게 사이온지 카오루에게는 꽤 다행인 일 이였다. 존재헀더라면 눈 앞의 이 인간성이라곤 개에게 주고 후식까지 푸짐하게 챙겨줬을게 분명한 싸이코패스 연구원에게 저주랍시고 5분에 한번씩 울리는 알람시계마냥 멍청하게 반복했을테니까. 그 꼴은 또 얼마나 우스워 보였겠는가?) ........야, 네가 뭘 착각하나본데,
(형편없게 떨리는 목소리는 얼굴에서 옮아온 듯 했다. 늙은 염소처럼 가래 섞인 목소리는 곧 울음을 터뜨릴 것 같다가도 잔뜩 악에 받혀 걸음을 옮기며 꾸역꾸역 문장을 완성해냈다.) 살고싶긴 한데, 그게 너때문에, 네 옆이면 차라리 저 약들 다 쳐먹고 개거품 물면서 죽는게 나아. 네가 나한테 뭐라도 될 일은 앞으로도 없을테니까 같잖게 틈날때마다 기어오르려 하지마, 네가 내 위? 아무리 돌아도 정도는 챙겨야지. (그리곤 제법 큰 소리로 약병들이 가득 들어찬 찬장을 쾅, 짚어댔다. 잔 먼지가 형편없이 바닥에 날렸다.)
(약병 관찰 동시 진행)
사사가와 모토키:이번에도 고스란히 돌려주는 게 낫겠다. 아무리 돌아도 정도는 챙기는 게 좋아, 멍청한 벌레 씨. 기껏 사람 대접해줄 때 사람처럼 살면 좀 좋아? 하하. 무식한 것들은 죽는 방법들도 대체로 무식하구나. 나름의 연구 결과로 취급해줄게~. (그리 길지도, 정성 어리지도 않은 어조들로 응수하기에 그쳤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게 약장과는 반대편으로 몸을 돌려 실컷 보라는 양 자리를 내어주었고.)
사사가와 모토키:...사람들은 가끔 실수를 하거나 불필요한 정보가 있다면 선을 긋고는 하지? 이런 행위를 세포가 진행하는 걸 'RNA'라고 해. 불필요한 정보 생성이 일어나면 그걸 막아야 하니까. ...말 그대로 불필요하거든. 찌꺼기 같은 더미 정보를 쌓아둬서 뭐해? 그런 걸 켜켜이 둬 봐야 네 머리통 꼴밖에 더 나겠어?
RNA를 주입해서 생겨난 siRNA를 통한 유전자 억제. ...이 방법을 이용한 다양한 치료법들이 세간에 오래 존재해왔지. 그래. 그게 의료 발전이었고, 기술이었으니까. ... ...그런데 이 세포는 달라.
그런 불필요한 정보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필요한 것까지 모두 파괴하고 억제해버려. 세포가 남는건 맞아. 그러니까... '절대로 발현해서는 안 되는 유전자'들. ...너 전혀 못 달아들었지?
사이온지 카오루:(RNA인지 MBTI인지 뭐인지는 어차피 들어도 알아먹질 못했다. 그걸 확인 사살하듯 못알아들었지? 라는 말은 이제 익숙하게 대꾸도 않고 그 동떨어진, 반쯤 비어버린 약병을 손으로 쥐어들곤 다 긁혀 읽히지도 않는 견출지를 유심히 살피며 물었다. 딱히 대답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였다. 갑작스레 머리에 피어오른 의문 정도야 자유 아닌가?)
이 약 누가 먹었는데? 네거냐? 제정신이 아니더라니 환각제? 그 MBTI인지 뭐시기인지 하는 현상이랑 네가 약쟁이인거랑 대체 무슨 연관이지?
사사가와 모토키:... ... (MBTI 드립에는 웃지도 않았다. 팔짱 끼고 지독한 정색만 내비치다 노골적인 한숨을 섞어 제 할 말만 이어갈 뿐이다.) 말해줬지. 서류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고. 네가 가장 처음으로 무식하게 돌진했던 방이 내 방, 여기는 이미 뒤져서 천국이든 지옥이든 대가리 드밀러 꺼진 다른 연구원이 쓰던 곳. 그 새끼가 야금야금 처먹었나보지. 저런 세포 쪼가리를 웬 종일 쳐다보는 게 어지간히 역겨웠나봐? 그것도 내 알 바는 아니고.
조금 더 쉽게 말해줄게. 아니면 드라마틱한 표현을 기대하고 있어? (제 턱을 두드려 문지르며 고심하는 척을 해보기도 했다.) ...가만 보면 말이지. 마치 악(惡)만을 남겨 유전하려는 것처럼 군다는 거야. 처음부터 무엇이 악을 형성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고작 세포 따위에 자아가 있다는 말을 믿어? 누가 봐도 우스운 얘기잖아. ...하지만 그래. 꼭 그런 것처럼 굴어, 저것들이. 네 몸에 있는 게.
사사가와는 네 번째 표본을 어떤 액체가 담긴 통에 담아 넣습니다.
사사가와 모토키:이 세포는 끊임없이 재생하고 분열하기를 반복해. 만일 그대로 두면 어떻게 될까?
... ...나도 그게 참 궁금했던 시절이 있어서. 실험해봤어.
결과는 아주 즐거웠고, 또 끔찍했지. ... ...아~. 이름이 뭐더라. 이 방 쓰던 새끼 말이야.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실험 후에는 폐기하는 거야. 이렇게 강한 산성에 닿으면 더 이상 재생하지 않거든. 처리는 꽤 간편하지! 내 가여운 실험체가 픽 죽어버린 건 별 수 없지만.
(표본을 담은 통을 약장 어딘가에 적당히 내려두곤 허공에 손을 두어 번 털어냈다.) 자! 남의 연구실 탐방은 이걸로 끝~! 유익한 시간이 되었을까 몰라? 그래도 꽤 재밌었지? 다른 방도 원한다면 얼마든지 구경시켜줄 테니까. 이 친절한 사사가와 씨가 모처럼 나서서 가이드 노릇도 해주고 있는데 얼마나 좋은 기회야?
사이온지 카오루:...... ......네가 여기 얼마나 오래 있었지? 기억이 왔다갔다하니 뭐 얼마나 오래 있던, 뭘 하고 지냈던 내 알바는 아니다만. 관심도 없고. 고작 몇시간으로 알아낸게 있다면 네 사회성이 저 약통에 들어간 저놈처럼 썩어 문드러졌단거야. 갓난쟁이한테 러시아 자장가 불러줄 새끼네 이거.. 이런 찝찝한 대화만 계속 할거라면 처음의 네 방으로 꺼지길 추천하는 바인데. 어때? (농담 아냐. 이미 몸에 베어버린 가벼운 말투 사이로 짧은 시간 새 알게된 구역질 나는 정보가 제법 타격이 컸는지 눈썹을 있는대로 찡그리며 쏘아붙였다. 이마 위 특이한 모양의흉터마저 그를 경멸하듯 꿈틀거린 것 역시 덤이였다.)
사사가와 모토키:왜? 러시아 자장가라도 듣고 싶어서 에두르며 어필하는 쪽인가? 사사가와 씨는 더 없이 친절한 사람이지만 애석하게도 러시아 자장가는 외우고 다니는 편이 아니라. 다음 기회를 노려보도록 해~? (실험을 거듭해오는 동안 네 성질 한 번을 못 보고 마냥 곱게만 넘어갔을까. 그런 사전 정보가 없었더라도 겨우 1 연구실에 함께 걸음하기까지 보아온 일련의 태도들은 사이온지라는 인물을 재해석하기에는 몹시도 충분했기에 이어지는 가시 박힌 뒷말들은 어련히 귓등으로 흘리며 응수 대신 콧노래만 흥얼거리는 것으로 그쳤다.)
(손에 쥔 카드키를 재주 좋게 빙빙 돌리며 바깥을 향해 턱짓한다.) 왜애. 멍청한 벌레 씨가 겁 먹는 모습 구경하는 것도 나름 재미가 붙은 참이라. 다른 곳은 구경 안 해? 괜히 연구소가 아냐. 신기한 게 얼마나 많은데! 사사가와 씨가 친절하게 설명도 덧붙여주고 있잖아? 세상에 이런 가이드가 또 어딨겠어~.
사이온지 카오루:.....미친새끼. (학습 능력이 좋은 편은 아닌 탓에 알아채는 게 조금 늦었다. 저건 내 생각보다 더 단단히 미친놈이고, 뭐라 말하던 귓등으로도 안 쳐들을 놈이다. 나만 손해지. 애초에 꾸역꾸역 대꾸를 하고 앉은 이놈의 성질머리도 문제겠지만... 뭐가 되었든 정말 질린다는듯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제 앞의 연구원을 쏘아보고는 카드를 돌리는 모양새가 꼴보기 싫은지 대꾸도 않고 어깨를 툭 치고 문 밖으로 나갔다.)
(한숨을 내쉬며 옆의 식당 쪽으로 빠르게 걸어갑니다.)
사사가와 모토키:...성질머리 하고는~. (그 모습을 가늘게 지켜보다 이번에도 대수롭지 않게 느긋한 걸음으로 따라갔다.)
사이온지 카오루:(눈을 가늘게 뜨곤 식당 내부를 둘러보다 당연한 듯 허락도 구하지 않고 냉장고 문을 열어제꼈다.)
냉장고는 거의 비어 있습니다.
단출하게 남은 소량의 식재료만이 굴러다닙니다.
겨우 이 정도로 며칠을 더 버틸 수 있을까요.
사사가와 모토키:(입구 문간 벽에 비스듬히 기댄 채 하는 양을 묵묵히 바라보다 퍼뜩 생각났다는 듯 아차, 하고 혼잣말처럼 단조롭게 중얼거렸다.) ...아~. 마침 식량이 다 떨어져갔지. 깜빡하고 있었네. 내가 밥을 잘 안 먹어서. 정부 측으로 요청하면 달에 한 번씩 보급이 닿던가? 배고프면 남은 걸로 알아서 해 먹어~.
사이온지 카오루:(도움안되는 새끼.... 곁눈질로 중얼거리는 양을 힐끗 노려보고는 아예 대꾸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듯 말 없이 냉장고 문을 쾅 닫았다. 기껏 먹을거 찾자고 식당에 온 줄 아나? 머리 좋은놈들은 부작용으로 대가리가 꽃밭으로 이뤄지기라도 하나? 뭐든 나야 상관없지만.)
....여긴가? (저 혼자 식당에 남았다는 듯이 휘적휘적 절어가 찬장이며 식탁 밑 등을 뒤적이며 무언가를 찾는 듯 했다.)
사사가와 모토키:너 바보야? (이번에도 큰 소리로 깔깔대며 웃었다.) 네가 어떤 놈인지 몰라서 조리도구를 제자리에 짜잔~ 하고 보란 듯이 걸어놨을까봐?
사이온지 카오루:.......씨발, 너는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말 같은건 안들어봤냐? 좀 닥치고 있으면 뒤지기라도 해?(뜻대로 풀리는 게 없자 속이 타는듯 거칠게 뒷목을 벅벅 긁어대다 귓가에 박혀오는 거슬리는 비웃음에 여느때처럼 저도 모르게 고개를 휙 돌려 소리치다 이것마저 아차 싶었는지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그래, 가만히 있어야 중간이라도 가는데,,, 누구한테 해야 할 말인지. 단단히 자존심이 상한듯 애꿎은 의자만 발로 퍽 차서 나동그라진 꼴을 보고 나서야 씩씩거리며 식당을 빠져나갔다.)
사사가와 모토키:으응, 그런가보네. 정확히는 네가. (저 정도면 제 말 한 마디에 목이 막힐 법도 한데. 그래서 물 찾으러 왔나? 이런 생각 따위나 해가며 삽시에 어그러지는 네 표정을 구경하기 바빴다. 더는 누군가 몸을 붙여 앉을 필요조차 없어진, 즉 쓸모를 다한 의자를 다시 세우는 의미 없는 행동은 구태여 하지 않는다. 말라 누운 시신이라도 내려다보는 양 그 꼴만 멀거니 응시하다 금방 눈을 돌렸다.) 다음은 어디로 갈래~?
사이온지 카오루:따라오지마, 따라오기만 해봐. (딱히 제 말을 들어먹을거란 확신은 없지만 그렇게라도 윽박 질러야 속이 시원 한지 기어코 이를 부득부득 갈고는 발을 구르며 복도를 걸어갔다.)
사이온지 카오루:(어차피 종이에 코를 박고 읽어봤자 자신은 알아 들을수도 없는 것들일텐데. 뻔히 알면서도 구태여 기껏 잘 정돈되어 있는 책상 위의 종이 뭉치들을 이리저리 내던져가며 의미도 없이 무언가를 찾는듯한 행동을 하는 이유가 있다면 당연히 화풀이 일것이다. 그도 그럴게, 이 빌어먹을 건물에서 정신을 차리고, ...아니지, 정확히는 저 놈과 마주치고 나서부터 제 뜻대로 풀리는게 단 하나도 없었으니까! )
사사가와 모토키:(그저 다름 없이 문간에 기대어 서서 묵묵히 바라보며 싱글벙글 웃기만 할 뿐이지.)
어쩌면 목표 중 하나쯤은 뚜렷했을 터이나 마음처럼 풀어내질 못하는 울화는 종이뭉치를 향합니다.
년도 별로 정리된 연구일지의 사본입니다.
몇몇 문장이 검은 펜으로 지저분하게 지워져 있습니다.
사이온지 카오루:......뭔 개소린지, (깔끔하게 정리되어있던 겉면과 달리 이곳 저곳에 검게 칠해져 지저분한 모양새가 눈에 띄지 않을 리 없었다. 눈에 들어온 대로 시선을 굳이 돌리지 않고 빠르게 읽어내려가다 자신의 지능이라는 악조건을 제외하고도 영 알아들을 수 없는 문장들에 불만스러운듯 작게 내뱉었다.)
이 건물엔 제대로 되먹은 놈이 하나도 없나보지? (손에 쥐고 있던 종이가 순식간에 구겨지며 지저분한 꼴에서 이젠 아예 쓰레기통에 쳐박아야 할 폐기물의 모양새로 변하는 것 역시 순간이였다.)
사사가와 모토키:글쎄. 바깥의 정부가 하는 일이라고는 보급 요청 때마다 부실한 식량 몇 박스나 던져주고 가는 게 끝인 연구소에 기약 없이 갇혀서 실험만 하다 보면 미치기 딱 좋은 환경이 구성되는 모양이지. 난 즐거웠지만~. (저로서는 알 수 없다는 뉘앙스로 어깨를 으쓱이기만 했다.)
사이온지 카오루:.....그 중에 가장 미친게 너인건 아나봐? (자신은 즐거웠다며 태연스레 어깨를 으쓱이는 꼴을 이젠 저 재수없는 반응이 이상할것도 없다는 듯 쏘아붙여주고는 책장으로 다가갔다. 도통 뭐라는 건지 알 수 없는, 딱 저런 또라이 이거나, 범생이들만 읽을법한 서적의 이름들에 벌써부터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상하게 예전부터 책만 펼쳐들었다 하면 멀미가 났다. 이젠 하다하다 제 몸뚱이마저 도움이 안됐다.)
사이온지 카오루:거 참 고맙네. 기왕 도움을 주고싶은 거라면 순순히 내 주변에서 꺼져주면 될 것 같은데. 네 방이라던가, (상대의 대한 불쾌감을 감출 생각조차 없는지 또 다시 대놓고 눈 앞에서 헛구역질을 하며 꺼지라는 듯 휘 손사레를 쳐보이고는 가장 먼저 눈에 띈 검은 책을 집어 펼쳐들었다. 봐도 돼? 라는 허락따위 구하지 않는거야 뭐... 이제와서 뻔헀다.)
거친 가죽 재질의 표지가 눈에 띄고,
손조차 대기 싫은 문양이 그려져 있습니다.
아니,
그려진 게 아닙니다.
마치 죽는 순간 비명을 지르는 얼굴을 그대로 본따 만든,
...그런 책처럼 느껴집니다.
내용은 수기로 적혔으며, 사이사이 없어진 부분이 많습니다.
기묘하게도 글자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전체적인 내용은 세상을 떠도는 우주의 신을 설명하지만,
골몰해봐도 이러한 신에 대해 들어본 적은 없습니다.
굉장히 불친절한 설명이 빼곡하게 이어져 있습니다.
사사가와 모토키:네 곁에 없으면 도움을 줄 수가 없잖아~. 사사가와 씨는 생각보다 너를 굉장히 아끼고 있답니다? (물론 하나 남은 실험체니까. 불필요했던 뒷말을 구태여 또박또박 덧붙이며 마찬가지로 기민하게 눈을 굴려 네가 집어든 책을 살폈다. 이내 이번만큼은 진실로 제 것이 아닌지 눈에 띄게 미간을 좁히며 쯧, 혀를 내두른다.) ...어떤 놈이 가져다놨더라. 재수없어서 건들지도 않았더니 깜빡하고 있었네.
사이온지 카오루:......네 책이 아니라고? 이딴 쓰레기같은 취향을 가진놈이 이 세상에 너 말고 달리 누가있어? (앞서 붙여진 쓸데없는 말에 미간이 익숙한 모양새로 구겨지다가 이어지는 뒷말에 정말 순수하게 말이 안된다는 듯 놀란 토끼마냥 눈을 둥글게 치떴다. 기분 나쁜걸 넘어 삿되게까지 느껴지는 책의 주인이라곤 당연히 이 놈밖에 없을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듯 책과 상대를 예의없게 한참을 번갈아 노려보더니 재차 되물었다.) ....진짜 네게 아니라고? 너, 이거 읽어본 적은 있냐 그럼?
사사가와 모토키:어이구. 이 친절한 사사가와 씨를 얼마나 경계하면 이런 사소한 정보도 안 믿어주나 몰라. 그런 걸 숨긴다고 나한테 돌아오는 이익이 어디있겠어? (역시나 으쓱일 뿐이다.) 연구에 지쳐 홰까닥 미쳐버린 놈이 어딘가에서 주워왔어. 바이러스의 시발점을 바라보는 관점을 달리하고 싶었나보지. 하지만 비과학을 넘어서 너무 뚱딴지 같은 소리잖아? 대뜸 신이라니. 미쳐도 단단히 미치면 그렇게 되나보다, 하고 말았지. (이어 정적. 얼굴 근육을 단단하게 굳힌 듯한 표정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 손도 대기 싫게 생겼잖아. 겨우 책 한 권에 역겹다는 인상을 받기란 쉽지 않은데도 말이야.
사이온지 카오루:.........솔직히 이 책이나 네 성격이나 역겨운 정도를 따지는게 의미가 없어 보인다만. (드물게 보이는 굳어진 표정에 저도 모르게 움찔거리며 어깨를 떨다가도 그놈의 입은 닫힐 생각이 없는 듯 무던하게 내뱉었다. 반응을 살필 겨를도 없는 듯이 이어 그 기분나쁜 책을 한번 더 살폈다가, '사사가와씨' 라고 주장하는 거머리를 번갈아 바라보고는, 영 꺼림칙한걸 만지듯이 집게손가락으로 덜렁 들고는 옆구리에 책을 끼워 넣어 챙겼다. 안색이 영 더러웠지만 억지로라도 가져가곘다는 티가 역력했다.)
사사가와 모토키:(저와 저 검은 책을 동일선상에 올려두는 것도 제 딴에서는 영 불만족스러운 처사였으나, 그것보다 네가 그 책을 고집스럽게 챙기는 행위에 기가 차 허, 하고 짧게 끊어진 숨을 터뜨리는 소리를 냈다.) ... ...진짜 가지가지한다, 벌레 씨. 그거 들고 다니다 무섭다고 질질 짜도 달래주진 않을 거야~.
사이온지 카오루:(애써 코웃음을 치고는 또 다시 어깨를 부러 툭 치고는 자료실을 나왔다. 뭐래, 멋대로 떠들어라 그래. 적어도 저 기가 찬다는 반응을 보아 하나는 이득 본게 분명해진 셈이였다.) 살충제 하나 챙기는게 별난 일은 아니잖냐, 벌레씨야? 말도 존나 많은 새끼... (비꼬듯 가는 목소리로 누군가의 말투를 흉내내며 허리를 구부정하게 접어 복도로 걸어나갔다.)
(표본실 앞에 멈춰섭니다.)
사사가와 모토키:...아아~. 살충제! 그거 괜찮네. 지긋지긋해지면 책으로 때려 잡는 그런 용도지? 안 그래도 책장 뒤적거릴 때마다 안색이 파래지더니, 벌레들은 다 책이랑 안 친한 이유가 있었구나. 괜찮은 발상인데? (가느다란 손으로 제 턱을 쥐고 곰곰 네 낯짝을 뜯어 살피는 시늉을 하더니 한다는 말이 이거다. 역시나 제 딴에서는 정말로 기발했던 모양인지 드물게 눈을 빛내며 웃기까지 했다. 이어 익숙하게 뒤를 따랐다.) 왜, 안 들어가?
사이온지 카오루:...... ....누가 안들어간대? 생각할게 넘쳐서 잠깐 서있던건데? 네가 뭘 알겠냐? ('표본실' 이라 박혀있는 문 앞을 멍청하게 바라보며 눈을 깜빡이다 정말 무슨 생각이라도 깊게 한 듯이 눈이 가늘게 찢어졌다. 빠르게 두어번 눈을 굴려 상황을 살피려는 듯한 행동을 이어가다 갑작스레 묻는 소리에 덜컥, 하고 어깨가 움츠러지더니 이내 미묘하게 격양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그보다 신경 끄라니까 대체 언제쯤 꺼져줄 생각이야? 질척거리는 것도 정도가 있지.. 따라오지마. (그 뒤로도 몇초는 더 중얼거리며 문고리를 잡는 손에 뜸을 들이다 머리를 한번 긁고는 모르겠다는 듯 문을 덜컥 열어제끼곤 안으로 걸음했다.)
사사가와 모토키:우와, 생각이라는 걸 하기는 했구나? 점점 진화하고 있네, 벌레 씨! 칭찬할만한 성과야~. 잠시만, 이것도 기록해줄게. (손바닥을 펼쳐 그 위로 손톱을 세워 끄적끄적 적어내리는 시늉을 두어 차례 해보곤 다시 주먹을 가볍게 움키며 빙그레 웃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멍청한 벌레 씨는 내 '실험체'거든. 가만 내버려뒀다가 못 쓰게 되어버리면 나만 손해잖아. 이것도 다 정성이라고~? (낮게 깔리는 웃음을 끝으로 보폭을 넓혀 뒤를 따랐다.)
사이온지 카오루:..................내가 이럴줄 알았어, 어? 이럴줄 알았다고.. .....씨발!! (설마, 하는 눈으로 제가 본게 믿기지 않는 듯 바짝 굳어 실눈을 뜨곤 통 안을 자세히 살펴보다, 모형도 아닐 뿐더러 가시관은 더더욱 아니라는 결론이 나자마자 소름이 쫙 끼친 듯 제 옆에 누가 있다는 것도 잊은 채 유별나게 소리를 치며 질색헀다. 팔짱을 끼고 싹싹 비벼대며 욕지거리를 내뱉는 꼴이 누가봐도 겁먹은 사람이라 한바탕 난리를 치곤 문 앞에 멀뚱히 기대 서있는 타인과 눈이 마주치자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예상은 했거든? 예상은 했다고, 정말.... ! 씨발....씨바알.....! 진짜냐 저거? ....됐다, 넌 그냥 말을 하지 마!
사이온지 카오루:.......으아악!!! 으아아아악!!!!! 닥쳐 제발, 꺼져! 꺼지라고!!! 다 닥치라고 제발! (분홍빛 눈동자가 미친듯이 흔들리다 못해 잔뜩 겁먹은듯한 목소리에 동조하듯 흰자만 남긴채 뒤로 넘어가려던 것이 여러번, 안색이 검게 질렸다가, 하얗게 색이 모두 날아가기까지 찰나의 시간동안 온갖 일이 한 사람의 얼굴에서 일어나고 난 뒤에야 미친듯이 소리를 지르며 표본실 문 앞에 서있던 연구원을 밀치고 도망쳐 나왔다. 복도 벽에 기대어 숨을 몰아쉬고 구역질이 올라오는 듯 나오지도 않을 것을 여러번 게워내는 시늉을 하다, 그제서야 겨우 상황을 파악하려는 생각이 들었는지 덜덜 떨리며 잔뜩 축축해진 눈가로 물었다.)
사사가와 모토키:(찰나 인간의 낯가죽 위로 기묘한 스팩트럼을 본 것도 같다. 그런 덤덤한 감상을 남몰래 남기며 바깥으로 도망치는 꼴을 잠자코 관망했다. 저는 문간에 기대어 선 자세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고서. 이 연구소에 몸을 두고 산 지도 몇 년인데, 유리병을 가득 채운 뇌와 그것들을 둥지 삼은 양 박힌 가시 따위를 이제 와서 질려하기에는 이미 동거동락이었다. 제 기꺼운 실험체의 감정에 울화에서 설움 정도로 변모할 즈음에서야 천천히 기울여 댔던 등을 떼고 표본실 안으로 걸어들어가 시끄럽게 조잘대는 유리병 하나를 집어 들며 마른 입을 뻐끔거렸다.)
섭섭하네. 표본실까지 스스로 걸어들어간 건 너잖아? 난 이 연구소를 마음껏 둘러봐도 좋다고 했지, 너한테 스스로 나서서 길 안내를 해준 기억은 없는데 말이야. 궤변 같아? (어느새 너와는 아주 약간의 안전거리를 둔 채 유리병 뚜껑을 열어 냅다 거꾸로 쏟아버렸다.)
사사가와 모토키:바이러스가 심화디면 딱 저런 꼴이 되어버리지. 저것들에게 기존의 세포를 전부 빼앗겨버리고, 신체가 붕괴해서, 결과적으로 뇌만 남는 현상이야. 저 바이러스가 숙주로 삼기 위해 들러붙은 뇌만 말이야. 흥미롭지? (염산이 들지 않은 유리병 속 가시가 자꾸만 움직이는 게 영 거슬렸는지 다시 표본실로 되돌아가 염산이 담긴 통에 가시를 옮겨 담고는 가운 주머니에서 새 장갑을 꺼내 갈아끼고서야 표본실의 문을 닫았다. 더는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음에 제법 만족한 낯이었다.)
우리는 그걸 죽음이라고 불렀어. 자아가 남아있다 한들 무슨 소용이야? 결국 뇌뿐이 남지 않았고, 그걸 조종하는 것도 저는 스스로의 자아가 아닌 저 벌레의 다리 같은 놈들의 조종일 텐데. 그러니까, 이 사사가와 씨는 네가 저런 꼴이 되지 않도록 열~ 심히 막아주고 있는 역할이란 말이지.
어때, 이제 덜 무섭지? (꼭 어린 아이를 달래려는 듯이 두 손바닥을 넓게 펼쳐 허공에 들어 보이곤 방긋 웃었다.)
사이온지 카오루:..... .........(친절한 모양새로 넓게 허공에 펼쳐진 손바닥을 멍하게 짓무른 눈으로 바라보다. 더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표본실의 문 앞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선이 향한 곳은 염산 자국으로 구멍이 뚫려버린 제 겉옷의 꼴사나운 모양새와, 메스 자국이 아물지 않은 자신의 손바닥이였다. 대체 무엇을 겹쳐본 것인지, 온갖 상황에서도 시끄럽게 떠들어대던 입은 무언가를 말 하고 싶어도 열릴 힘이 없는지 꼴사납게 몇번을 달싹거리더니, 이어 다 풀려버린 다리에 힘을 주어 무릎을 세워 주저앉더니 겨우 한마디를 뱉었다.) ....사사가와씨,
(멍청하게 탁 풀린 흐린 동공은 원래대로 돌아오질 않았다. 적지 않게 충격 받은 듯 붉게 짓무른 눈가를 갈무리할 생각도 못한 채 형편없이 벌벌 떨리는 손을 꽉 쥐어들고는 재차 말을 뱉었다.) 사사가와씨, 야, 사사가와 ....제발, 제발. 메스가 있잖아 너, 너는 .......... ...야, 저렇게 되기 전에, 내가 먼저 죽으면, ....그럼 어떻게 되냐?
사사가와 모토키:... ...옳지. 착하지, 착해. 이제야 조금씩 간신히 말이 통하는 기분이네. 여기가 어떤 곳이고, 네가 어떤 상태인지, 너한테 내가 어떤 존재인지, 이 정도 됐으면 그 자그마한 이해력으로도 얼추 결론은 도출해낼 수 있지? (허리를 넙죽 굽혀 느리게 눈높이를 맞춰갔다. 그저 시선만이 가까워졌을 뿐 네게 뻗는 손길은 없었으나 저는 그 정도로 족했다. 물론 지금도 가운 주머니에 버릇처럼 쑤셔 넣은 손끝에 날이 닳은 메스가 잡혔지만 일부러 그에 대한 경쾌한 답은 내어주지 않았다.)
사사가와 씨가 열심히 힘내줬는데, 구질구질하게 지켜주고 있는 생명을 쉽게 꺼뜨릴 생각부터 하다니. 끝까지 나쁜 아이네, 너는. ...좀 더 괜찮은 희망을 가져보는 건 어때? 치료가 가능할 거라고 말이야. 실제로도 넌 이 연구소에 온 지 제법 지났지만 저런 꼴이 되지 않고 잘 버티고 있잖아? 네 내면의 붕괴는 내 관할이 아니라 아쉽게 됐지만서도.
사사가와 모토키:... ...이런. 우리 벌레 씨한테 친절한 가이드 노릇을 해주느라 하루가 다 갔네.
네 상태를 보아하니 더 움직이는 것도 못 할 짓이겠어. 안 그래? 우리 이제 그만 쉴까~?
사이온지 카오루:(저와 시선을 맞추는 것을 눈을 깜빡이지도 못한 채 멍하니 바라보다, 무언가 안에서 끓어 오르기라도 한 듯 입을 달싹거렸으나, 아주 찰나일 뿐이였다. 답지 않게 상황을 재듯 다시 기어나올 생각이 없어보이는 주머니에 얌전히 찔러넣은 손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끔찍한 적막의 복도, 그리고.... ....바닥에 질척하게 흔적이 남은 무언가의 액체까지 관찰하고 나자 그제서야 느릿하고,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리에 여태 힘이 들어가지 않는 듯, 벽에 등을 기대어 힘을 주어 억지로 일어서고는 짧게 대꾸했다.)
....난 어디로 가면 돼?
(사이온지 카오루는 멍청할 지언정 눈치를 볼줄 아는, 비겁한 소시민에 불과했다. 저 한마디를 내뱉고 다시 얌전한 척 입을 꽉 다물기까지의 과정은 어쩌면 아주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사사가와 모토키:... ...사이온지 씨.
(순간에는 너를 그리 불렀다.) 나는 아주, 굉장히 많은 편의를 봐주고 있는 거야. ...아주 많은 것들을 양보하고 있다고. 물론 네가 그 사실을 구태여 인지할 필요는 없어. 그래봐야 훌륭하게 네 등을 떠밀던 그 알량한 자존심도 상황에 내몰리면 얌전해질 걸 알고 있거든. 나는 그런 너를 짓눌러 우위를 차지하는 일에도 관심 없고 말이야. ...아주 간단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만이 목적일 뿐이니까. ...
(말을 마치면 다시 허리를 굳게 펴 끙, 신음을 흘리며 몸을 가볍게 풀곤 네게 일어나라는 듯 턱짓했다.) 편하게 생각해~. 결국 어디로도 못 가는 신세는 너나 나나 다름 없으니까. 흐음, 오늘은 어떻게 해야 하나~... 적당히 자료실로 갈까? 귀퉁이에 소파도 있거든. 네가 잠들었던 실험실의 침대보다야 훨씬 편할 걸? 따라와. (그리 말하고는 먼저 자료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이온지 카오루:(낯설게 느껴지는, 타인의 입에서 아주 오랜만에 듣는듯한 제 이름에 무슨 감정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아주 작게 몸을 떨었다. 오랜만? 오랜만인가? 그것 조차 구별할 수 없음을 깨닫는 찰나는 절망적이기 짝이 없었다. 자료실로 걸음을 옮기는 것을 수긍도 부정도 없이 뒤따라 잠자코 움직이다, 문 앞에 다 다랐을때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에 멈춰섰다.)
.... ......넌 네 방으로 안가? 저 끝에 있던 방 말이야.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듯, 어울리지도 않게 소중하게 옆구리의 책을 부여잡으며 물었다. 책을 붙든 팔 위로 스멀스멀 올라오는 기시감에 이제와서 겁먹기엔 너무 늦은 감이 있지.)
사사가와 모토키:물론 난 내 방으로 돌아갈 거야. 그 전에 네 상태를 체크하는 것도 내 업무 중 하나니까. ... ... (태연하게 대꾸하고 자료실을 살펴 소파 쪽으로 턱짓하다 말고 여전히 네 옆구리 한 편을 차지하고 있는 책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도통 알 수가 없단 말이야. 저걸 왜 저렇게 소중하게 챙기는 거람? 그런 눈초리다.) 그거 베개로 쓰면 딱이겠다. 밤새 아주 끝내주는 악몽에 시달리다 아침에는 식은땀에 절어서 시신으로 발견되기 좋아 보이네. 자, 이제 얼른 소파에 앉아봐. 마지막으로 해야 할 게 있으니까.
사이온지 카오루:.....신경 꺼. (고분고분했던 태도 사이로 성질머리가 딱히 나아진건 아니라고 주장하듯 툭 내뱉고는 눈치를 살피다 책을 소파의 머리맡에 내려두었다. 그 뒤로는 딱히 걸릴게 없는지 별 다른 소란 없이 소파의 풀썩 앉아보였다.)
사사가와 모토키:말 잘 듣는 벌레 씨가 몇 분을 못 가네~. 아쉬워라! (하하, 장난스레 웃고 마저 제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사사가와는 흰 가운 안주머니를 뒤적거리다,
이내 작은 약병과 주사기를 꺼내듭니다.
사사가와 모토키:서얼마~. 그 나이 먹고 주사를 무서워한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 그럼 곤란해. 난 달래줄 생각 없단 말이야. (작은 약병에 바늘을 꽂아 넣고 적당한 양의 약을 주사에 채워 넣으며 마저 덧붙였다.) 넌 아직 보균자니까, 유전자를 억제하는 약품을 주사할 거야. 표본실에서 봤으니 더 길게 말하지 않아도 대충 이해하지? 만약 소파 위보다 유리병 속에 들어가기를 소원한다면 지금 말하고~.
사이온지 카오루:(아무 말 없이 순순히 팔을 내밀었지만 위로 치켜떠 올려다보는 눈 안에는 저새끼 말 본새는 진짜...... 정도의 의미가 담겨있는 듯 했다. 그걸 굳이 소리내어 말 하지 않는 지금으로 보건데, 방금의 경험에 그가 얼마나 겁먹어있는 상태인지도 가늠 할 수 있었다.) ....피곤해, 실랑이할 생각 없으니까 빨리 볼일 끝내고 네 방으로 가. ...한두번 한 것도 아니지 않나? 난 기억도 안나지만.
그는 웃는 낯으로 곧 당신의 팔 한 곳을 소독 솜으로 닦아내고,
그 위에 주삿바늘을 꽂아 넣습니다.
잠시 따끔한 감각이 퍼졌지만 크게 아프진 않습니다.
사사가와 모토키:옳지, 마음에 드는 대답이야. 거기까진 생각이 미치는 모양이네. 이것도 방으로 돌아가면 연구일지에 잘 적어넣을 테니까 자랑스럽게 생각해도 좋아. (끝까지 누군가의 바람처럼 입을 다물진 않더란다.)
사사가와는 바늘을 빼고 거즈를 덮어 붙입니다.
약병과 주사기를 정돈하고 나면 다음으로 꺼내든 것은 밧줄입니다.
...
다시 봐도 분명 밧줄입니다.
그가 망설임 없이 곧장 당신의 손목을 뒤로 묶습니다.
얼마나 단단하게 묶었는지, 힘껏 흔들어봐도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사사가와 모토키:있지, 사이온지 씨?
난 기본적으로 나만 믿는 주의거든. 이것도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 된다면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낸 기념으로 친절하게 설명해주겠는데, 그냥 나 외의 모든 것들이 못미덥다는 뜻이야. 당연하잖아? 뇌에 벌레가 든 보균자를 무슨 수로 믿겠어. 난 내 눈이 감겨 있는 동안은 편하게 쉬고 싶단 말이지. 새벽 동안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얼마나 골치 아파~... 생각만 해도 짜증이 절로 나네. 안 그래?
하지만 네가 제법 얌전했다는 건 사실이니까. 칭찬도 거짓은 아냐. 믿어줬으면 해~? (네 손을 묶느라 옆구리에서 떨어져 나간 책은 불필요한 친절이라도 과시하듯 네 무릎 위에 얌전히 올려두었다. 베개 삼아. 악몽 꾸면 어떤 꿈이었는지 꼭 말도 해주고. 그런 말도 남겼더란다.)
사이온지 카오루:....... ...... 윽, (약에 취한것인지, 아직 잠에 취한 탓인지. 분간도 가지 않을정도로 잠긴 목에서 바싹 마른 신음 소리만을 내며 밧줄로 감긴 둔한 몸뚱이를 움직이려 노력했다. 다리가 묶인 것은 아니기에, 허리에 힘을 주고 몸을 일으켜 당연스러운 순서라는 듯이 커터칼이 버려진 곳으로 다리를 뻗어 주워들려는 시도를 했다.)
몇 번은 시도가 어긋나 실패했지만, 다행히 주워들 수 있었습니다.
사이온지 카오루:(겨우 주워든 커터칼을 바라보다, 소파의 작은 틈에 끼워 등을 돌려 밧줄을 끊어내려는 시도를 했다.)
단단히 묶이긴 했어도 재질이 두텁진 않았는지 금방 잘려나갑니다.
약간의 뻐근함이 남은 손목이 겨우 자유로워집니다.
사이온지 카오루:(근육이 굳어 부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손목을 두어번 움직여 본 뒤에야 느리게 숨을 내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분명 지금이 여름인지, 겨울인지도 분간하지 못할 장소일 터인데, 차갑게 내려앉은 새벽공기가 어쩐지 입을 틀어막고 몸 전체를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누가 들을새라 조심스레 발을 내딛고는, 가장 먼저 제 근처에 나뒹굴던 예의 그 검은책을 챙겨들고는, 휴지통에 쳐박힌, 조각난 자료들을 의문스럽다는 듯 살펴보았다.)
조각들을 얼추 모아 모양새를 맞추어 보자,
이내 한 장의 일지가 완성됩니다.
사이온지 카오루:............사사가와. (사사가와 모토키. 하루 사이 좋으나 싫으나 끈덕지게 얽혀 알고 있는 이름이였다. 이것도 몰라볼 정도로는 먼청하지 않으니 다행인가? 새벽의 침묵탓인지, 아니면 진작에 몸에 스며들어 익숙해진 절망과 공포탓인지. 저도 깜짝 놀랄정도로 무던한 투로 내뱉어졌다.) .....이 새끼도 실험체였단거야? (하지만 보균자는 나 뿐이라고 했다. 살아남은 유일한 연구원과 유일한 실험체. 같잖게 제 목숨줄을 그 놈이 틀어쥐고 있는 상황. 거지같아도 지금 자신이 알고있는 정보는 그게 다였다. 그것조차 온전한 사실이 아닐수도 있다는 정보를 담은 이 종이 쪼가리에 어쩐지 머리가 깨질듯이 아파와서 못본 듯이 잘게 찢어 도로 휴지통에 쳐박아 두었다.)
....뭔 상관이야, 어차피 이제 나랑.... .....(복잡하게 머리를 굴리는 것 따위에 재능이 있었다면 기억도 온전치 못한, 이런 버러지같은 역할을 맡고 있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정말로 이젠 아무래도 좋았다. 거슬렸지만, 적어도 지금 의미있는 정보는 아니라고 멋대로 판단하고는 자료실의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밖으로 나온 복도도 전등이 죄 꺼져 있어 사위가 어둡습니다.
목을 죄는 정적만이 바닥에 낮게 깔려 있습니다.
...
단 한 군데만 제외하고요.
복도 끝,
홀의 귀퉁이에 동떨어져 마련된 방의 문틈에서 희미하게 빛이 샙니다.
분명 사사가와가 사용하는 방이었습니다.
아직 잠들지 않은 걸까요?
사사가와에게 깨어났다는 사실을 들켰다가는 또 무슨 봉변을 당할 지 모릅니다.
궁금하다면 최대한 조심해서 가보는 편이 좋을 겁니다.
사이온지 카오루:.... ......내가 미쳤냐? 들켜서 또 무슨 꼴을 당하려고? ........ .......젠장. (들리지 않게 작게 욕을 내뱉고는 발걸음 소리를 줄이고 불이 새는 곳으로 향했다. 혹여나 그림자가 지지 않게 벽으로 바싹 붙어 움직이는게 퍽 우스웠다. 어쩌겠는가, 그놈이 경고한 2연구실의 위치따위 모르니까.... 괜히 여기저기 들쑤시다 걸려서 험한 꼴 당하는 것보단 저놈의 상태부터 살피고 행동하는게 나을거란 생각을 도출해낼 정도의 지능은 있는 놈이였다, 나는.)
방문은 한 뼘 정도가 겨우 열려 있습니다.
안에서 빛이 새어나오고 있고, 틈으로 내부 풍경을 엿볼 수 있습니다.
사사가와는 책상을 마주보고 있습니다.
그는 의자를 뒤로 하고 무엇인가를 맹렬히 노려봅니다.
시선이 닿는 곳, 책상 위에는 표본실에서 보았던 뇌가 든 유리병이 놓여 있습니다.
유리병은 여전히 산으로 가득 찼고, 뇌는 가시를 뒤집어 쓴 채입니다.
그가 장갑을 고쳐 끼고, 도구를 이용해 뇌를 밖으로 꺼낸 뒤,
...
대뜸 도구의 날을 세워 뇌를 난도질하기 시작합니다.
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는 얼핏 희열마저 묻어납니다.
나른하게 찢어 웃던 눈동자가 아닙니다.
기이한 기분이 듭니다.
한참이나 뇌를 난도질하던 그가 덜컥 행동을 멈춥니다.
산과, 피와, 질척질척한 액으로 범벅이 된 도구를 집어 던집니다.
난도질한 뇌 중 절반은 쓰지도 않고 다시 염산통에 담궈버립니다.
느적느적하게 조각이 난 뇌들은 책상에 어질러진 채.
...
이번에는 책장에서 약통 하나를 꺼내듭니다.
손바닥에 몇 개의 흰 알약을 덜어내고,
물도 없이 그것을 몽땅 삼킵니다.
그는 이제 책상 앞을 떠나 반대편 벽에 놓인 침대로 향합니다.
그리고는,
마치 바깥 정원에 덩그러니 선 바짝 마른 나무처럼,
그런 한 그루의 시신처럼, 몸을 무너뜨려 침대에 파묻힙니다.
...
정적이 이어집니다.
약에 취해 겨우 잠에 빠진 걸까요.
혹,
사사가와의 방을 둘러보고 싶은 호기심이 있다면,
그 기회는 아마 지금뿐일 겁니다.
사이온지 카오루:.........미친새끼. (이런 것을 보고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지 않은 것 만으로도 장족의 발전이였다. 발전이고 나발이고 그보다는 저딴것에 새삼스레 놀랄정도로 이 빌어먹을 건물이 멀쩡하지 않았다는 거지만. 마른 침을 삼키고 그가 잠든 것을 불규칙해진 숨소리로 재차 확인 한 후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좆까, 넌 여기 쳐박혀서 약이나 쳐먹고 뒤지던 뇌하고 대화를 하던 하라지. 난 적어도 밖에서 뒤져야겠으니까. ...... ......)
...............약? (무슨 약? 걸음을 멈추고 작게 읊조렸다. 저거 지금 약을 먹고 잠든거지? 수면제? ....환각제? ....제기랄.) 머리를 습관적으로 벅벅 긁고는 다시 걸음을 돌렸다.저것만 확인하고 튀는거다, 그래도 늦진 않으니까. 찜찜하기 짝이없는데 어쩌겠어?)
사이온지 카오루:........(수면제였잖아. 환각제를 먹는게 자기가 아니라는건 딱히 거짓말은 아니였군. ...애초에 이게 다 그 종이 쪼가리 때문이잖아. 그냥 나갔으면 될걸 괜히 밟혀서. 무시가 안되나? 학습 능력이란게 정말 없는 벌레새끼냐 나는? 이제 와서 이 놈이 실험체였던, 무슨 약을 쳐먹고 자던 나랑 무슨 상관이야? 설마 그게 정말이라고 해도, 둘중 하나는 뒤질 운명인게 뭐가 바뀌나? 아니지.)
(별 것 없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나가려던 때, 유달리 정신 사납게 붙어있는 종이 더미 탓에 책장으로 무심코 다가갔다. 아, 그래.... 사람은 잘 바뀌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제 맘대로 따라주질 않는 몸뚱이를 저주하며 눈을 질끈 감고 책장을 살폈다.)
사이온지 카오루:.........? (눈살을 찌푸려 종이 뭉치를 펼쳐들고는, 코 앞까지 가져와 한 문장 한문장씩 두어번은 더 읽고나서야 간신히 이해가 되었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혹여나 다른 이가 깨어날까 숨을 죽이며 달뜬 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썩 좋은 기분은 아니네. (누군가가 미치기 전의 모습을 옅보는건 결코 유쾌하지 않았다. 아무리 되는대로 살아왔다지만 그정도의 악취미를 가진 인간은 아니니까. 결론은... 저 놈은 처음부터 미친놈은 아니였단거다. 결국 별 것 없는 수확이였다. 원래 미친놈은 둘 중 하나 아닌가? 미쳐갔거나, 원래부터 미쳐있었거나. 그리고 저 놈이 정말 실험체 "였을 수도" 있었다는 가정 하나. 위험을 감수하고 살핀 것 치고는 빈약하기 짝이 없는 정보였다. 그런데도 어쩑지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였다. 웃기지도 않지만 이 건물엔 수맥이라도 흐르나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빌어먹을 다리가 왜 방 밖을 빠져나가지 않고 다른 곳으로 자꾸 향한단 말인가?)
(고개를 돌려 책상으로 다가갑니다.)
책장과 연결된 구조의 원목 책상입니다.
개인용 노트북 한 대가 놓여 있습니다.
아마 예견했겠지만,
비밀번호가 걸려 있어 사용은 어려워 보입니다.
책상 위에는 무언가로 날카롭게 찍어댄 흔적들이 여럿 남아 있습니다.
사이온지 카오루:.......(꺼림찍하게 찍힌 자국들을 손으로 한번 흝고는 작은 탁상으로 향합니다.)
사이온지 카오루:... ........(그놈의 메스가 다 여기 모여있었군, 확 그냥 다 들고 튀어버릴까, 따위의 생각을 이어가다 발견한 핏자국에는 여지 없이 몸을 굳혔다. 손으로 긁어 보려는듯 두어번 툭 건드린 시도가 순간 무색하게 느껴져 눈을 한번 감고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향하려 할 때였다. ....전화기가 있네.)
이 건물을 돌아다니며 마땅한 연락 수단을 본 적이 있나요?
...
없습니다.
아마 곳에 존재하는 유일한 연락 수단은 이 전화기 뿐일 겁니다.
그렇다면 이 전화기는 바깥 세상과 연결이 되어있는 걸까요?
사사가와는 분명 달에 한 번은 정부에서 식량을 보급해준다고 했었죠.
어쩌면 도움을 청할 수도 있지 않을까?
사이온지 카오루:.... .......(침착하자, 네가 섣부르게 몸 굴렸다가 좆되본게 어디 한두번이야? 생각 좀 하고 살아, 넌 벌레가 아니고 사람새끼잖아, 그렇지.....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곤 갈등했다. 전화기를 한 번, 여전히 고른 숨을 내쉬고 있는 방의 주인을 한 번, 살겠다고, 사람처럼 살아 나가 보인 후 끝을 내겠다는 이중적인 희망으로 악착같이 기어나온 제 몸뚱이를 한번 .... ....... ...........모르겠다. 답이 뭔지 모르겠어, 사실 이 말도 맞지 않나? 사이온지 카오루는 생각을 길게 하던, 짧게하던 어찌됐던 다양한 방법으로 망해왔다. 그 운이 쌓이고 쌓여 종극에는 이 꼴인것이다. 그러니.... ....늘 그렇듯 똑같이 행동했다.)
.........후, (그가 아직까지, 그리고 한동안 얌전하게 잠들어 있을 수 있는지 부터 판단하려는 듯 침대로 조심스레 다가가 살피기 시작헀다.)
겉보기에도 제법 좋은 재질의 침구입니다.
위에는 이불도 덮지 않고 쓰러져 잠든 사사가와가 있습니다.
숨소리 한 줌조차 들리지 않습니다.
...꼭 마르지 않은 송장 같네요.
사이온지 카오루:...... ...........(그래, 제발 쳐 자라, 얌전히....되도록이면 이대로 평생. 그게 이 놈한테도 저한테도 득일것이다. 당분간 미동이 없을거라고 판단 한 후 숨을 잔뜩 죽이고는 다시 전화기를 들었다. .....어디에? 어디로 걸지? 막상 떠오르는 곳이 없었다. 경찰? 오기나 할까? 집? ...........나나쨩은? .......아.)
(딱히 걸 곳이 바로 생각나지 않아 기껏 전화기를 들고 멍청하게 서있었다.)
수화기를 들어보지만 신호음은 가지 않습니다.
어떤 특정 번호를 입력해야만 연결되는 일방적인 통신기 같습니다.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던 희망이었을까요?
아니면, 정말 어쩌면 한 줌이라도 아프도록 쥐고 있던 희망이었을까요.
애석하게도 수화기는 지독한 정적만을 안겨다줍니다.
사이온지 카오루:................제기랄. (이 방에 들어온 이후부터 애써 숨을 죽여가며, 속이 까맣게 타도록 삼키고 있던 욕설을 나직하게 내뱉었다. 눈썹 위의 흉터가 우글거리며 일그러진다 싶더니 저녁의 짓무른 눈가 위로 짧게 물줄기 하나가 이어 떨어졌다. 그게 전부였다. 희망이 사라진 지금은 절망 역시 최대한 짧아야했다. 빈 곳을 쓰잘데 없는 것으로 가득 채워봤자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머리를 비워야했다. 몸을 움직이는게 멍청한 이에게는 차라리 더 도움이 되어왔다.)
(방 밖으로 걸어나가려던 찰나, 옷장 옆의 작은 문을 발견했습니다. 또다른 입구라는 생각에 지나치지 못하고 옷장으로 다가갑니다.)
사이온지 카오루:.......모....리,카와. (그러니까, 이 인간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이미 죽은 놈인가? 뭐가 됐던 저 싸이코를 미치게 만들고, 겁먹게 만든 유일한 놈인건 확실했다. 뭐...이미 뒤졌으니 이딴걸 보관하고 있는거겠지? 눈썹을 한번 휘어 보이고는 자연스레 카드키를 목에 걸어 챙겨들었다. 그러고보니. 연구실도 그렇고 이 곳의 상당수는 아마 이딴 귀찮은 절차가 아니면 열리지 않을 것이다. 출구라고 별 다를 것 없을것이고... 떠올리는게 좀 늦긴 했지만 챙기고 난 지금이야 ...뭐든 도움이 되겠지.)
(옷장 문을 조심스레 닫고는 진즉 눈에 들어왔던 수상쩍은 문을 살폈다. 그러니까 이 문도...그냥 열리진 않는건가?)
문은 잠겨 있지 않습니다.
사이온지 카오루:............(열리잖아, 홀린 듯 순순히 열리는 문을 사람 한명이 들어갈 정도의 틈으로 만들어보였다.)
안쪽은 간이 욕실인 듯합니다.
구석에는 샤워부스와 세면대, 변기가 있지만,
그보다도 눈에 띄는 것들이 있습니다.
...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진득한 피 냄새가 진동합니다.
거울이 산산조각 나 파편이 온 사방에 흩어져 있고,
샤워부스의 유리마저도 몽땅 깨져 있습니다.
바닥에는 핏자국인지 무엇인지 모를 것이 말라 굳은 채 흩뿌려져 있습니다.
가장 강렬하게 시선을 잡아 끄는 것은
욕실 전체를 가로지르듯 자리 잡은 붉은 스프레이 자국입니다.
꼭 피를 닮은 붉은색 스프레이가 욕실을 뒤덮듯 사방을 정신없이 채웠습니다.
사이온지 카오루:........................이제 볼 일 없는 사이에 솔직히 까놓고 말 하자. 너같이 그림으로 그린듯한 또라이는 난생 처음이야. ...... ......다신 보지 말자고, 제발. (온갖 붉은 자국들로 진창이 난 욕실을 한번 흝어보다 못볼 걸 봤다는 듯 중얼거리곤 조심스레 문을 닫았다.)
적막 뿐인 방에 나직한 목소리가 울렸지만,
여전히 침대 위 유사 시신은 미동하지 않습니다.
어지간히 독한 약인가봅니다.
이제 어떻게 할까?
사이온지 카오루:(튀어야지)
GOOD IDEA
사이온지 카오루:(챙길것을 모두 챙기고 모든 볼일이 끝난 마당에 미적거려봤자 득될것 하나 없다. 함께해서 좆같았고, 다신 보지 말자고. 여전히 잠든 유사 시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무던한 얼굴로 가운데 손가락을 날려보이고는, 빠르게 방을 빠져나와 복도로 향했다.)
복도도 마찬가지로 쥐죽은 듯 고요합니다.
사이온지 카오루:하...........(그러고 보니까 길을 모르는건 딱히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다. 뭐가 됐던 저 놈이 깨기 전에 이 건물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씨발. 뭘 알아야 나가지. 다급한 눈으로 조용한 복도를 살피다가 눈 앞에 처음 보는 문을 눈치챘다. 분명 낮에 가보지 않은 문이다. 길게 생각할 시간이 없었기에 닥치는대로 열어보기로 했다.)
(문을 열 수 있는지 살펴봅니다.)
바깥으로 나 있는 유리로 된 현관입니다.
전면 유리로 당신의 형상이 비칩니다.
어쩐지 오랜만에 보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열쇠로 잠겨 있지 않아 문은 쉽게 열립니다.
사이온지 카오루:.....!(얼굴에 아주 오랜만의 짧은 화색이 돌며, 열린 문으로 그대로 나갑니다.)
환풍구를 통해 밖으로 나왔을 때 보았던 풍경과 같은 정원입니다.
전체적으로 말라빠진 나무들은 어떤 흔적들이 역력하고,
바닥에 난 마른 풀포기들은 발끝이 닿는 것만으로도 쉽게 부스러집니다.
황폐하기 짝이 없는 풍경 사이를 걷다 보면,
막 나온 건물과는 다른 콘크리트 건물이, 그리고 철문 하나가 드러납니다.
철문은 높다란 벽과 같은 아파트 22층 정도의 높이입니다.
손잡이도 없는 여닫이 문입니다.
마치 밖에서부터 폐쇄된 듯이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콘크리트 건물은 위치상 환풍구가 있던 그 건물인 듯 보입니다.
밖은 지독하게 고요할 뿐입니다.
사이온지 카오루:...........하, 잘 풀린다 했더니, 어쩐지....(굳게 닫힌 것으로 보이는 거대한 철문에 미간을 짚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가, 이내 큰 소리가 나지 않게 철문을 한번 쾅 차댔다. 완전한 출구를 아직 발견하지 못한 채 흘러가는 시간이 느껴져 조급함에 황폐한 정원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혹시 모르잖아, 환풍구처럼 다른 샛길이 있을지.)
사이온지 카오루:.......뭐, 뭐야. (밖에서 나는 소리야 이거 지금? ...........아니, 나무....나무는 밖에 있었으니까.... .....아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거야?!) ....됐어! 이제 와서 돌아가는 것도 헛짓거리라고, 차라리 객사하려고 나온거 아냐? ...잘됐어, 잘된거야... ......(하하, 공포에 잔뜩 먹힌 헛웃음이 정적 속에 울려 퍼지고 침을 한번 꿀꺽 삼켰다. 안이든 밖이든, 정말 무슨 상관이야. 마주치기전에 빨리 자리를 뜨는게 상책이다.)
사이온지 카오루:............(이쯤 되니 아무리 혈기 왕성한 멍청이라도 피가 차갑게 식어간다, 어울리지 않게 얼굴 근육 역시 빠르게 굳어 얼핏 보면 놀랍도록 평온한 이처럼 비춰졌다. 오직, 아직 통증을 느끼는 발과 잘게 떨리는 손끝만이 그가 아직까지는 '정상'의 범주에 아슬아슬 걸쳐져 있다고 증명했다. 정상의 개념마저 흐릿해진지 오래였지만, 그렇게 믿어야만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올라오려는 구토감을 눌러 삼킨 채 떨리는 손으로 난도질 되어 있는 누군가의 연구일지를 들어올려 살폈다.)
듬성듬성 난도질 된 연구 일지입니다.
이음새를 맞추면 얼추 내용이 드러납니다.
사이온지 카오루:..............이거, 전에 봤던 그거잖아. 원본이 있었어? 그럼 왜 굳이 .... ......(그 건물엔 그 놈이랑 나 밖에 없는데. 대체 누가 본다고 구태여 그런 수고를 들여 망쳐놨지? 누가 본다고? .....누구에게 숨기려고? 시선은 이어서 컴퓨터로 향했다.)
사이온지 카오루:..................... (이상한 공간에서 눈을 떴는데도 순간의 공포보다 우선되는 본능이 있었다. 뭐지? 뭐지 이게? 여기가 어디지? .....이건 뭐지?)
(〔KAORU〕폴더를 엽니다.)
폴더는 텅 비어 있습니다.
사이온지 카오루:..............? (눈을 멍청하게 깜빡거렸다. 왜 비어있지?)
............. 아니, 언제 봤다고. .....왜 비어있지? ........응?
(홀린듯이 다른 폴더로 손을 움직였다. 〔파기〕폴더를 엽니다.)
파기 폴더는 각각의 폴더로 나뉘어 있습니다.
〔 뇌 〕, 〔 팔다리 〕, 〔 사망 후 〕 라는 이름의 폴더입니다.
사이온지 카오루:................(사이온지 카오루의 성격이라면, 그 겁 많은 찌질이였다면 진작에 부정탄다며 컴퓨터를 끄고 진저리 치며 이 이상한 공간에서 빠져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어쩐지 잘게 떨리는 손 외에는 미동 하나 없었고, 그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 뇌 〕 폴더를 엽니다.)
나무 뿌리가 흙에 자리잡은 것처럼,
벌레가 뇌를 파고들어 뿌리를 내린 사진들이 몇 장 들어있습니다.
하나 같이 그런 모양새의 사진들뿐입니다.
사이온지 카오루:........?(역하기 짝이 없는 사진에 미간만 살짝 찌푸릴뿐 곧 장 다른 파일로 손을 옮겼다. 대체 이것이 무엇인지 알아볼 수도, 기억도 없으니 어떤 반응을 해야할지도 확실치 않았다.)
사이온지 카오루:.................(요란한 소리를 내며 터져버린 컴퓨터의, 깜빡이며 점멸해가는 마지막 불씨를 한참 바라보다가 어딘가 멍한 표정으로 연구실의 문을 닫고 나왔다.)
(문을 닫고 나온 직후, 어쩐지 벌벌 떨리던 손 끝에 부자연 스러운 힘이 들어갔다. 주먹이 아플정도로 꽉 쥐어지고, 손톱이 손바닥을 아리게 파고들 쯤에서야 자신이 잘게 떨고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그 사실이 못내 두려워서, 고개를 여러번 내젓고는 곧장 다른 방으로 향했다. 나가야한다. 어디로? ....혼자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평생.)
사이온지 카오루:.... ........(내가 여기서 더 갈 곳이 있나? 공포와 절망, 약간의 광기가 서린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눅눅하기 짝이 없는, 악취가 풍기는 건물의 천장을 멀거니 바라보던 음울한 눈이 빠르게 감겼다. 이 문너머에 뭐가 있던, 직감할 수 있다.
난 여기서 나갈 수 없을 것이다.
어딜 가던 누군가와 마주칠 것이다, 저 빌어먹을 흰 건물에는 미쳐버린 연구원이 있고, 문 밖에는 황량한 정원이 있다. 그러니까, 비교적 안전한. ..... ......안전한가? 타인에게도 안전한 곳은, 혼자 있을 수 없는 곳이다. 그 놈은 다시 나를 찾아 낼것이고, 그럼 나는 또 이짓을 .... ......답은 비교적 명료하게 맞아떨어졌다. 이 건물의 사람들은 제 정신이 아니다. 나도 제 정신이 아닌 것 같다. 앞으로 갈 곳은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이 문너머는 아마 .... ......아무도 들어오지 못할것이다, 아무도.)
역겨운 몸뚱이로 잘도 쥐새끼처럼 움직여서 볼 수 있는 건 전부 봐놓고도 내가 정확히 누구인지 가늠조차 못하는 꼬라지를 보아하니 확실히... ... 그래, 역시 벌레 새끼의 지능으로는 한계치였나봐. 내가 아직도 사사가와라고 생각해? ...내가 그새끼를 내 흥미 본위에 따라 죽이고, 단순히 이름만 빌려와 아무것도 모를 너한테 적당히 소개했을 거라는 생각까지는 닿지 못한 모양이지? ... ...아. 그래. 이제 와서 다 무슨 소용이야... ... 다 무슨 소용이냐고.
...아주 개인적으로 말이야. ... ...이 실험에 흥미를 느꼈어. 가마잉 없다는 건 진즉 알았고. 어쩔 수 없잖아? 그게 내 본질이고, 본위인데. ...멍청한 사사가와에게 세포를 강제로 주입시키고 그가 천천히 변모하는 모습을 지켜봤을 땐 짜릿했지. 그만 흥분해서 밤새 웃음이 나와버렸을 만큼이나. ... ...네가 좀 더 얌전히 있어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안 그래?
그 정보값은 굉장했을 거야. 그리고 가장 끔찍했겠지.
... ...
실험과 동시에 내가 목표로 둔 게 뭔지 알아?
모리카와 토츠키:사는 거. 그냥 살아남는 거. 난 뒤지기 싫었거든. 지금도.
...신기하게도 저 빌어먹을 벌레들은 오직 나만은 건드리지 않더라. 감사해야 했는지, 세계는 이미 끔찍한 결말을 맞았으니 오직 나만이 살아있다는 걸 불행으로 여겨야 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 난 살고 싶었고, 살기 위해서 너같은 더러운 벌레 새끼도 사람인 것마냥 환각제까지 씹어 삼켜가면서 버텨온 거야. ...어떻게든 될 줄 알았지. 네가 얌전히만 있어줬더라면.
네 멍청한 짓거리 때문에 발악이 전부 물거품이 되어버렸어.
내가 왜 이딴 곳에서, 너 같은 역겨운 새끼랑 나란히 죽어야 하는데?
... ...맙소사.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사이온지 카오루:............(손과 발이 볼썽사납게 떨렸다. 아니, 이건 정말 손과 발인가? .... ....... ......... 타의가 아닌 자의로 기억을 끊어 어딘가에 버려둘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축복이고, 굉장한 행운이리라, 하지만 사이온지 카오루 라는 인간은 옛날부터 운이라곤 눈 씻고 찾아볼래도 없었다. 남들 다 다니는 학교는 어머니의 부재로 인해 미련만 가득 남긴 채 뛰쳐 나와야 했으며, 당연하게도 그런 놈은 어디에서도 불러주질 않았다. 한참 어린 여동생을 부여잡고 아득바득 살아왔지만, 그래. 결과적으로 내 꼴은 이게 뭐야? 이게 뭐냐고. 아, 정말....)
나나쨩은? (어딘가에서 보았던 다 터져버려 불구가 된 기계마냥 언젠가 했던 말을 멍청하게 반복할 수 밖에 없었다. 뭐야? 뭔데? 저 빌어먹을 놈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건데? 그래서 나나쨩은? 지금 그 애는 어디에 있는데? 난 왜 여기있고? 뭔 개소리야, 내가 왜 죽어? 너랑? 미쳤냐?)
아니, 아니야, 나는..... .....난 정말 그럴 생각이, 모든걸 망칠 생각이, (기억이 엉망으로 섞여 이 곳이 어디인지, 정확이 뭘 하고 있었는지 뚝뚝 끊겨 이어지질 않았다. 갑작스러운 두통에 두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 ....머리를 부여잡고, 두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두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두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두 손으로,
두 손으로,
손으로.............
사이온지 카오루:
나나쨩은 어떻게 됐어?
(어딘가에서 보았던 다 터져버려 불구가 된 기계마냥 언젠가 했던 말을 멍청하게 반복할 수 밖에 없었다. 뭐야? 뭔데? 저 빌어먹을 놈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건데? 그래서 나나쨩은? 지금 그 애는 어디에 있는데? 난 왜 여기있고? 뭔 개소리야, 내가 왜 죽어? ......내가 왜 죽어? 우린 왜 죽어? 날 왜 죽여? 나는 왜 .....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사이온지 카오루:
.......
.....
......
...............
..............................
사이온지 카오루:맙소사, 말도 안되는 일이지. 난 뒤지기 싫어, 지금도.
내가 왜 이딴 곳에서, 너같은 역겨운 새끼랑 나란히 죽어야 하는데?
맙소사, 말도 안되는 일이지... ...........
(한 마리의 벌레가 마지막 인간 앞에서 더듬이를 감싸안고 잘게 떨었다, 제대로 남지도 않은 부스러기를 긁어모아 악착같이 제 주둥이에, 혐오스러운 머리통에 주워넣기라도 하듯, 흉내내고 반복헀다. 내가 왜 죽어? 날 왜 죽여? 나를? 왜? 그 애는 어디있어?
찰나의 시간이 지났다.
순간이 지났다.
사이온지 카오루:마지막 남은 인간은 그냥, 살고싶었다.
남에게 죽기 싫었다.
난 뒤지기 싫었다. 살아 남는거... 지금도.....)
나는...... (넌 벌레새끼가 아니고 사람새끼잖아! 이건 또 언제의 기억이지? 떠오르지 않았다, 벌레의 마지막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벌레는 말을 못하니까. 인간의 애처로운 발악만이 끝까지 자리했을 뿐이다. 벌레는 죽어야 했다. 인간은 살고싶었다. 인간으로 죽고싶었다.)
적어도 이 끔찍한 모형정원에서 제 발로 벗어날 수 없다면,
적어도 아파트 높이의 담벼락 너머에 어쩌면 살아있을지도 모를 피붙이를 볼 수 없다면,
차라리 죽여달라던 스스로의 목소리가 거듭 귓바퀴를 미련처럼 구릅니다.
점성이 섞인 것마냥 느적하게 들러붙었다가, 또 느즈러지듯 떨어집니다.
무엇을 감쌌는지, 무엇으로 무엇을 감쌌는지조차 이제는 쉬이 가늠하지 못할 즈음.
당신의 눈 앞에 가느다란 몸을 세우고 있던 마지막 '인간'이 헛웃음을 삼킵니다.
그는 어떠한 말도 하지 않습니다.
이젠 너무 지쳐버린 낯빛이에요.
당신이 약장에서 보았던 환각제가 몇 알이 남아 있었더라.
그가 삼키고 내버려둔 수면제는 또 몇 알이 남아 있었더라.
마지막 '인간'은 벌레를 바라보지도,
이제는 텅 비어버린 어떤 차원의 균열만이 남은 감금실을 바라보지도,
어둑한 천장을 바라보지도,
벌레가 떠나간 세계를 바라보지도 않습니다.
핏방울이 맺힌 구두코에 시선을 우직하게 내리깐 채 침묵합니다.
이다지도 나약해요.
어떤 종이라 감히 정의할 수 없는 미지의 생물 앞에 인간은.
한 때의 당신이 그러했듯이.
지금의 당신이 그러한 생물이듯이.
어떻게 하고 싶어요?
세계로 향할까요?
당신이 머물 곳 하나쯤은 있을 거라는 택도 없는 희망을 곱씹어 볼까?
아니면 역시 이 모형정원이 당신의 테라리움일까요?
옛날처럼,
지금에 다다르기 딱 몇 걸음 전처럼,
눈앞의 마지막 '인간'에게 약을 먹이고,
나를 사람으로 대해달라 소원하면,
아주 어쩌면. 그래줄 수도 있겠죠.
아니면 역시
죽을까?
벌레니까?
무엇으로 무엇을 감쌌는지조차 모를 일련의 행위들이 역겨우니까?
...
당연하게도 정답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논제입니다.
당연하게도 모든 것이 자유로운 당신의 선택이 될 테고,
당연하게도 그게 곧 세계의 정답이 될 겁니다.
곰팡이가 슨 벽에 등을 단단히 묻은 채 미끄러지듯 주저앉은 마지막 '인간'이
마침내 당신을 바라봅니다.
당신이자, 당신이었던 것이자, 이제는 당신이 아닌 것을 봅니다.
어쩔래?
꼭 그리 묻는 노란 눈이 탁하게 가라앉았습니다.
사이온지 카오루:(탁하게 가라앉은 노란 눈을, 지치고 음울한 분홍빛 눈이 마주 바라보았다. .....아니, 정말 그건 눈인가? 분홍색이였나? 긴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사이온지 카오루는 딱 그만큼 멍청한 이였다.)
사사가와씨, .......내 이름이 뭐였더라?
(눈 앞의 모리카와를 무시하듯 겨우 기억을 더듬어 생각이 나는 이름을 읊었다, 딱히 대답을 바라지도, 답을 몰라 묻는것도 아닌 질문이였다. 대꾸가 오기도 전에 자신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사이온지 카오루야, 벌레새끼가 아니라. 이 멍청한 새끼야. 혼자 남아서 뒤져버려. (아마도 웃었다고 생각했다. 건물에서 눈을 뜨고 처음으로 제대로 웃어보였다고 생각을 했다. 그렇게 생각해야 했다. 그가 어떻게 될 지는 이제 알 바가 아니였다. 대답을 바란것도 아니였다. 그의 의사가 어떻든, 벌레는 저 하늘 위로 날아 올라 쳐박혀 죽을것이고, 인간은 이곳에 남아 홀로 죽을것이다, 사사가와와 모리카와는, 서로 남아 비참하게 뒤질것이다. ....아주 만족스러웠다.)